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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ul 18. 2017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

자신이 불치의 병에 걸려 살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노년의 여성. 그녀는 그런 사실을 숨긴 채 남편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고. 기차 안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눈물을 흘린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을까? 그녀는 자주 만나지 못했던 아들 내외를 만나러 가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지만 자녀들은 부모의 갑작스런 방문이 썩 내키지 않는다.
 
그녀는, 자식과 손자와 함께 가족 사진을 찍는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가족 사진을 촬영하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보며 이렇게 쉽게 찍을 수 있는 가족 사진 한장 조차 대부분 남기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커홀릭인 큰 아들은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시간도 보내고 시내 구경도 시켜드리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날은 하루종일 회의가 있는 날. 며느리도 시간이 없다며 곤란해하고 동성애자인 딸 역시 오빠가 구경시켜 드린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서로 부모와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을 꺼려한다.
 
그런 자식들에게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바라는 것은, 건강 뿐이다. 사랑 후에 남겨지는 것들은 어쩌면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쌓아올린 추억인지도 모른다. 그런 추억들 조차, 오늘이라는 시간,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에 저당 잡혀 쉽게 만들지 못하고 설 자리조차 잃는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언제까지고, 내 곁에 있어줄 것만 같은 사람이 있다. 가족이 그렇고, 연인이 그렇다. 그런 생각으로 그들을 오랫동안 대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소홀해지게 된다. 그러나 죽음은 파도처럼 어김없이 삶을 덮친다. 파도는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고요한데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내 곁에 없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높은 빌딩 숲 안에서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 속에서 나의 시간만이 정지한 듯한 느낌. 그 정지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느낌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의 무게이다. 함께 살을 맞대고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부부라면 - 그 무게를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만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아내가 거짓말처럼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후, 혼자 남겨진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들을 만나기 위해 일본행 비행기에 탑승하고.. 아들을 만나지만 워커홀릭인 아들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회사와 집만을 오고갈 뿐이다. 집에 돌아오면 일에 지쳐 골아떨어지기 바쁜 아들.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돌아누운 아들의 등허리를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을까.


할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걸 알면서도 생전에 일본에 그렇게 오고 싶어했고, 부토 무용수가 되고 싶어했던 아내를 위해 조금만 더 이곳에 머물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후 할아버지와 비슷한 상처와 상실감을 가지게 된 어린 부토 무용수 '유'를 만나게 된다. 부토는 일본의 무용극으로 그림자 극으로도 불리는 것.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부토 무용수인 '유'는 부토는 그림자가 추는 춤을 말한다면서 자신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춤을 추는 것이라며, 그림자는 살아있지도 않고 죽은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으니 누구나 부토를 출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좋았던 장면은 어린 부토 무용수에게 아내가  생전 자주 만들었던 음식인 양배추 말이를 설명하는 장면. 그리고 어린 부토 무용수가  양배추 말이 요리를 몸으로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할아버지도 어린 부토 무용수를 따라하고, 몸을 굴려서 두개의 양배추 말이라고 말하는 장면. 왠지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양배추 처럼 누워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행복해보였다.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고, 뭔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듯한 부토 무용수와 할아버지는 특별한 우정을 만들어가게 되고 나이를 초월한 친구가 된다. 할아버지는 부토 무용수인 '유'와 함께 아내가 생전에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후지산을 보러 간다. 그러나 안개에 감싸인 후지산은 부토 무용수가 말했던 것처럼 부끄러움이 많은지, 쉽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낯선 음식에 탈이라도 난 것인지, 며칠 앓아눕게 되고 열에 들뜬 몸으로 일어나 창문을 열고 거짓말처럼 눈앞에 나타난 후지산을 보게 된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후지산을 본 후, 허겁지겁 얼굴을 하얗게 화장하는 할아버지. 아내가 평소 즐겨 입었던 기모노를 입고 후지산 앞에 있는 강가에서 할아버지는 춤을 춘다. 물에 비친 그림자를 아내라 여겼던 것일까? 부토를 추고 싶어하는 아내를 이해하지도 못했고 좋아하지도 않았던 할아버지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야, 아내의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그토록 이해하고 싶었던 아내를 부토를 추면서야 이해하게 되고 부토를 추고 난 후, 숨을 거둔다. 자신의 슬픔을 유일하게 이해해주었던 유에게 일본으로 오기 전에 현금으로 바꿔두었던 전재산을 남기고 말이다. 숨을 거둔 아버지를 일본식으로 장례를 치뤄주는 아들.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를 끝내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린 부토 무용수 유는 할아버지가 행복했을 거라고, 이젠 행복할 거라고, 말한다. 딸의 친구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자식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걸, 타인이 이해했던 것이다.
 
왜 곁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조차 우리는 자신을 다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까.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일 수록 -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때때로 자신을 숨기는 것일까.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보면서 몇번이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싸가지 없는 자식 놈들을 보면서, 할아버지가 혼자 짊어진 상실의 아픔을 바라보면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나 고독하고 아프고 외로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게 하지 말아야지, 내 곁에 있는 누구라도. 외롭게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사람을 외롭게 하는 것은 큰 죄라는 것을...이 영화를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 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 받은 것임을. 알면서도 우린 잊은 채로 또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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