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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Mar 06. 2018

거북이 달린다

거북이처럼 느려도 멈출 수 없는 아버지의 이야기

감독 이연우 출연 김윤석, 정경호, 견미리, 선우 선


굴욕에 가까운 삶을 살던 시골 형사가, 신출귀몰하기가 홍길동 저리가라인 탈옥수 (송기태/정경호)를 잡아 인생 역전에 성공하는 이야기, 거북이 달린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 형사 조필성은 별다르게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 뒷돈을 넣어주는 것을 받아 챙기며 불법적인 성매매 업소를 단속하며 평화롭기 그지 없는 나날을 보낸다.
 
조필성은 마을에서는 형사라고 조금 대접 받지만 - 집에 들어가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들볶이며 무시 당하기 일쑤다. 한마디로 그는 굴욕적인 삶을 살아가는 남자다.  형사로서의 직업 의식도 그닥 크지 않은 듯 보이는 조필성(김윤석)은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장갑 뒤집기에 여념이 없는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을 두고 있지만 생계에 대한 고민도 책임도 없는 듯 툭하면 사고를 쳐서 아내의 속을 썩인다.

영화 거북이 달린다 스틸컷

인생 한방을 노리는 그는 투전꾼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베팅하기 바쁘고, 아내가 어렵게 모은 돈을 들고 나가 소 싸움 대회에서 큰 돈을 따지만, 그 돈을 탈옥수 송기태에게 빼앗기고 만다. 통장이 없어진 걸 안 아내는 노발대발하고. 이 일로 어린 딸아이에게까지 체면이 구겨질대로 구겨진 조필성은 송기태를 뒤쫓는다.


영화 거북이 달린다 스틸컷

영화 추격자에서 전직 형사였던 중호를 움직였던 것이 '돈'이었다면, 이 영화 속에서도 시골 형사인 필성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다. 처음에 그는 돈을 되찾기 위해 송기태를 뒤쫓고, 그를 잡으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에게 된통 당하고 손가락까지 절단 당하는 사고를 겪게 된다.

이후 그는 땅에 떨어진 형사의 권위와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그를 뒤쫓는다. 결과는? 그는 고생 끝에 송기태를 잡는데 성공하고 의기양양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도 되찾는다.
 
누구나 인생의 대역전극을 꿈꾼다. 자신에게도 멋진 한방이 찾아와줄 것이라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살아간다. 필성은 집 밖에서는 형사로서 어느 정도 지위와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 그는 비리를 일삼으며, 술을 퍼먹고 다녀 주위 둥료들에게 평판도 좋지 않다.
 
필성을 욕하는 이는 등장하지 않지만, 필성이 수갑에 손과 발이 묶인 상태로 경찰서를 찾아가 '송기태'를 봤다고 말했을 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분위기가 이를 반증한다.
 
필성은 가정에서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는 빚이 있고, 당장 높은 대출 이자를 해결할 능력이 안 된다. 이는 가정에서 그를 힘없는 가장으로 만들었다. 아버지의 힘은 돈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그는, 높은 대출 이자를 감당할 능력이 안 되는 그는 한 순간에 무능력한 아버지로 전락한다. 가정에서 그는 힘을 쓰지 못한다.
 
그래도 어딜가나 형사라고 대접해주는 것이 그나마 그의 자존심을 세워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송기태를 만나 그에게 제압 당한 후 "형사가 맞냐"는 말을 듣고 굴욕을 느낀다. 그때부터 굴욕적인 삶을 당연시 여기며 이를 인생의 일부로 당연시 받아들여왔던 필성은 변하기 시작한다.
 
도장을 찾아가 필살기를 배우고,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 권총까지 구입한다. 송기태를 붙잡고 나서야 필성은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지게 된다. 제대로 된 형사의 자리. 제대로 된 아버지의 자리. 제대로 된 남편의 자리를 말이다.
 
이 땅의 아버지들은 '굴욕'을 견디며 '생계의 책임'을 떠안지만 사회는 힘없는 아버지는 기억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버지의 힘은 곧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성이 존경 받아 마땅할 아버지의 모습으로 마땅히 존경 받는 것은 어떤 통쾌함을 선사한다.


돈이 힘이 되어버리는 시대에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힘을 되찾은 사내의 이야기. 느리지만 천천히, 이 땅의 아버지들은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멈추지 않고.


그것이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이 지닌 진정한 힘이 아닐까. 굴욕을 견디면서도, 무시 당하면서도, 힘이 없어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도 -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것. 거북이와 같은 집념으로 삶을 이어나가고, 가정의 울타리를 지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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