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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Nov 08. 2018

카포티

인간의 이중성과 위선에 관하여

어느날, 친한 친구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그 책은 이 영화의 토대가 된 '인 콜드 블러드'였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트루먼 카포티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됐고, 그가 인 콜드 블러드 이후에 책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 콜드 블러드로 처음 카포티의 문장을 접했지만, 그의 문장이 좋다고 느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 콜드 블러드'로 유명해지기 전에 쓴 작품을 접하고 난 뒤였다.
 
그가 인 콜드 블러드 이전에 쓴 작품 역시 찾아서 본 것이 아니라 우연히 접하게 됐다. 언니가 트루먼 카포티의 작품집 '차가운 벽'을 샀는데 그 책을 빌려준 것이다. 차가운 벽을 읽고, 트루먼 카포티의 문장을 사랑하게 됐다. (특히 심리 묘사가 탁월했던 차가운 벽이나, 문장이 아름다웠던 '다이아몬드 기타'를 읽고 카포티의 문장에 반하게 됐다. 인 콜드 블러드랑은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트루먼 카포티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이 영화 '카포티'를 통해 알게 됐다. 차가운 벽의 책 표지에는 젊은 시절의 트루먼 카포티의 사진이 실려 있다. 담배를 손에 끼운 채 어딘가로 시선을 던지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표지 사진이 무척 매혹적으로 느껴졌지만, 동시에 그의 사진 속 손동작이 너무나 섬세해서 어딘가 게이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그의 손짓이 그토록 섬세했던 것은 그의 문장에서 드러나는 그의 예민한 성격이 고스란히 나타난  포즈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게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은 이내 떨쳐 버리게 됐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카포티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카포티의 문장은 차가운 편이다.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해내고 있지만, 인 콜드 블러드를 읽었을 때처럼 그의 문장이 차갑다고 느꼈다. 하지만, 어떤 작품들은 놀랍도록 따뜻했다. (특히 영화로 만들어진 크리스마스의 추억 (개인적으로 차가운 벽에 실린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같은 소설은 무척 따뜻하다.)
 
카포티는 영화 배우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의 각본을 직접 쓴 것은 물론 직접 영화판에 배우로 뛰어 들어 왕성한 활동을 했다. 나는 어렸을 때 무척 인상 깊게 본 추리 영화가 있다. '5인의 탐정가'라는 작품인데, 당시에도 오래된 영화라서 화질은 엉망이었지만, 영화광이었던 사촌 오빠가 TV에서 방영해준 것을 녹화해둔 것을 얻어서 봤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약간 공포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웃긴. 블랙코미디 추리 영화였던 것이다. 그 영화에 카포티가 나왔다.
 
갑자기 생각나서 그 영화에 관련된 정보를 살펴보다가 그 영화에 카포티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내가 카포티를 읽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좀 든다.  아무튼, 카포티는 내게 차가운 문장을 지닌 '작가'로 각인되었고, 이 영화를 보며 그런 나의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이 영화는 '인 콜드 블러드'를 집필하며 살인범을 만나고, 그들과 인간적 유대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자신의 작품의 주인공으로 이용하는 카포티의 이중성. 위선적인 모습을 그린다.


카포티에겐 캔자스 주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 사건은 좋은 소재의 글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카포티는 자신의 예상대로 이 작품을 통해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을 출간한 이후에 더는 글을 쓰지 않았다. 그가 인 콜드 블러드를 집필할 당시, 사형을 선고 받은 범인들의 형 집행이 연기되자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신경쇠약까지 앓았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일화다. 그가 신경쇠약을 앓은 이유는 책의 결말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포티는 '진실'한 이야기를 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작가로 그의 소설은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 픽션을 다룰 때도 그랬으니, 논픽션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카포티와 함께 취재를 다녔던 하퍼 리(앵무새 죽이기의 저자)는 그런 카포티의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당시에 무명이었던 하퍼 리가 앵무새 죽이기로 유명해진 후 더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카포티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것이 그녀에게도 정신적으로 적잖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살인범들은 카포티가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라 믿었고 그에게 의지하려 했지만, 카포티는 그들을 외면했다. 카포티가 처음에 그들을 만나 변호사까지 선임해주며 그들에게 호의적으로 대했던 것은 책을 잘 쓰기 위해서였고, (그러자면 그들이 죽지 않아야 했으니까) 사형이 선고된 후 집행유예가 됐을 때는 태도가 돌변한다. 카포티는 도움을 요청하는 그들을 차갑게 외면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빨리 죽지 않아 책의 결말을 쓰지 못하게 되자 극도의 신경 쇠약에 시달리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거기에는 어떤 잔혹함이 있다. 카포티는 심지어 형이 집행되기 전 자신들을 만나러 와 달라는 (사형 당일) 살인범을 만나기까지 한다. 살인범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카포티를 친구로 생각했던 것이다. 카포티는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보지만 그들에게 사죄하지 않는다. 살인범들 역시 유가족들에게 사죄의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카포티가 이후에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수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에게도 이 책을 집필하며 겪었던 일들은 '트라우마'로 남았던 것 같다.
 
카포티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어떤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물론 이 책은 큰 성공을 거두어서 이후에 책을 더는 쓰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면서 카포티 역시 그들에게 어떠한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인 콜드 블러드를 읽으면 그런 느낌도 적잖이 느껴진다. 이 영화는 책의 제목이었던 인 콜드 블러드가 책 속에 등장하는 살인범들 보다는 카포티 자신을 향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언젠가 무릎팍 도사에 배우 황정민이 출연해 '정말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만, 슬픈 일을 겪으면 그러한 경험이 자신의 연기 생활에 도움이 되겠지. 연기의 폭을 넓혀주겠지'하는 생각을 하며 약간 기쁘기도 했다는 취지의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을 때의 그 모습이 떠올랐다. 너무나도 슬픈 사건이고, 잔혹한 사건이지만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기자나 작가에겐 좋은 소재나 글감이 되기도 할 것이다. 카포티의 모습은 자신의 직업에 너무나 충실해 어떤 측면에서 보면 냉혹하기 짝이 없게도 보이지만, 그가 집요하게 매달리고 추적한 끝에 '인 콜드 블러드'라는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 책을 통해 '범죄자'의 내면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보고 이해하려는 시도들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나서 범죄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카포티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들을 어떠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도구로 활용한다. 그러면서 인간다움을 잃어가기도 한다. 인간성의 상실을 경험한 카포티가 인간을 이해하는 작업인 '소설 쓰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런 데 있지 않을까? 카포티의 내면을 따라가는 영화로 보기엔 약간 부족한 감도 없잖아 있지만, 카포티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어떻게 보면 그의 인간적인 면모도 다루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카포티에 의한, 카포티를 위한' 카포티에 관한 영화가 아닌가 싶지만, 영화 속에서 카포티를 연기했던 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실제 카포티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이미지가 카포티랑은 좀 안 맞는 느낌. 카포티는 좀 갸름한 인상인데... 카포티보다는 맷 데이먼을 더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그 점이 조금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 배우의 연기도 정말 좋았고. 재미있게 봤다.
 
살인 사건에 치중해서 본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카포티의 팬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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