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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23. 2021

화제 전환에 요긴한 '뚜에일러(对了)' 카드

‘나는 누구, 지금 어디’의 순간 꺼내 쓰는 마법의 카드.

삶이 바뀌는 인생의 전환점은 언제일까요? 언제든 나의 인생을 바꾸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먹은 바로 그 순간입니다. 간절한 마음은 꾸준한 실천으로 이어지고, 꾸준한 실천은 반드시 삶의 모양새를 바꿔놓거든요. 영어를 잘하는 비결은 인생을 바꾸고 싶다는 간절함입니다. 


김민석, <영어책 한 권 외워 봤니?>


언어의 93%가 보디랭귀지로 전달된다는 서양학자의 통계가 있었는데 이 통계를 몸소 실천하는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베이징 생활 일 년 반이 지나자 드디어 조금씩 들리고, 말문도 트이기 시작했다. 흥분한 나는 ‘나와 대화해 줄 중국인’을 사방팔방 찾아다녔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오면 항상 집 앞 놀이터에서 한 시간씩 뛰어놀았기 때문에 주변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중국인은 주로 손주를 보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어르신들은 대체로 젊은이들보다 발음이 부정확했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심이와 비슷한 또래 아이를 보는 어르신을 찾으면 하이에나처럼 기회를 엿보다 말을 걸었다. "손주 정말 귀엽네요"라는 칭찬으로 시작해 본다. "아이는 몇 살이에요?"라고 물으며 정보를 파악한다. "어머 우리 아이도 그 나이예요, 친구네요"라고 심이와 연결고리를 만들어 본다. 아이 보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며 어르신들의 노고를 추켜 세우고, 나의 엄마도 한국에서 손주 보느라 개고생 했는데 우리의 베이징행 덕분에 자유를 얻으셨다는 스토리로 이어간다. 지금은 몸은 편해지셨지만 손녀를 너무 그리워해서 상사병에 걸리셨다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그 마음 내가 잘 알지’라는 안타까운 표정을 만날 수 있다. 그런 작업을 통해 단지에 안면을 튼 어르신들이 많았다. 엄마들은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중국 여성들은 대부분 일을 하는 워킹맘이기 때문이다. 안면을 트더라도 교류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어쨌거나 놀이터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익숙해졌지만 맨날 비슷한 이야기만 하니 언어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았다. 다음 공략한 장소는 단지 안에 있는 헬스장. 평일 오전, 지루해서 질색하던 러닝머신 위에서 가자미눈으로 말을 걸 만한 사람을 살폈다. 아쉽게도 평일 오전 헬스장을 점령한 이들도 대부분 어르신이었다. 인상 좋은 어르신 몇 분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도 하게 되었는데 어르신들의 관심은 정치나 역사일 때가 많아서 그것도 난감했다. (당시 교도소에 있던) 박근혜 대통령이나 북한 이슈에 대해서 묻곤 하셨는데 그건 한국어로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라 이야기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역사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야기의 결론이 자꾸 ‘한국과 중국, 일본이 원래 다 한 나라였다’고 마무리됐다. 뭐라 대꾸도 못하고, 하하 웃으며 또 줄행랑. 


심이가 국제 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아이 친구를 봐주시는 중국인 이모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학교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노려서 꼭 수다를 떨었다. 호탕한 성격에 잘 웃는 이모님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물론 대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의 순간이 찾아오고 귀를 닫고 멍 때리며 입꼬리만 올라간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그때 나는 매일 이모님과 나눌 대화 주제를 정해서 관련 단어들을 미리 찾아 대화를 만들어 보곤 했었다. 주로 평소에 궁금했던 중국의 문화와 음식, 드라마 같은 주제를 목록 별로 정리해 두고 매일 하나씩 선택해서 써먹었던 것이다. 이모님과 정다운 인사를 나누고 날씨 이야기를 한두 마디 건네다 갑자기 생각난 듯이 놀라는 척을 하며 준비한 대사를 쏟아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열정적이고도 풍부한 연기력의 내가 귀엽기 짝이 없다. 이모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선보이며 등짝 스매싱을 날리실 것 같다.


사실 당시 나의 중국어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오고 너무 많은 것들이 빠져나갔다. 모르면 4성으로 발음해버리는 버릇이 생겨서 무엇보다 성조가 이상했다. 나는 분명히 제대로 발음하고 있는 것 같은데 중국인들은 난생처음 듣는 단어라는 표정을 종종 지었다. 성조 따윈 누가 만든 거야. 제2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던 고등학교 시절, 팔은 남성형, 다리는 여성형 등 단어에 성별이 있고 그에 따라 앞에 붙는 관사와 형용사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었는데 같은 병음과 성조를 가진 ‘다른’ 단어들이 즐비한 중국어의 세계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 나는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을 다 부러워했다. 아파트 단지 보안요원도, 놀이터의 꼬마 아이도, 백화점 매니저들도 어찌나 부럽던지.




어쨌거나 나는 나의 중국어 실력을 아랑곳하지 않고 언어 교환 앱 ‘헬로우 톡(Hello Talk)’을 통해 즉석 만남을 추진했다. 그곳에는 한국과 한국어, 한국 여자에 관심 있는 중국인들이 많았다. 열렬하게 여자 친구를 찾는 남학생들을 제외하고, 관심사와 연령대가 비슷한 여자 회원들을 검색했다. 프로필에 소개된 관심사가 잘 맞다 싶어 사는 지역을 클릭해 보면 비행기를 타고 무려 세 네 시간을 가야 하는 광저우나 하이난에 살고 있었다. 이 거대하기 짝이 없는 땅덩어리 같으니라고.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집 근처에 사는 중국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심지어 심이와 비슷한 나이의 딸아이를 키우고 있어 공통 화제도 많을 것 같았다.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날, 처음 소개팅하는 여대생처럼 설렜다. 실제로 만나보니 배려심 깊은 귀여운 친구였고, 한때 호기심으로 한국어를 배웠지만 지금은 학습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 그러니 오로지 중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최적의 언어 파트너였다. 대화는 즐거웠지만 깊어지진 못했는데 모두 내 언어가 짧았던 탓이다. 베이징 호구나 중국 시댁 문화 등 심도 있는 주제로 들어가면 절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때 나의 마법과도 같은 주문은 ‘뚜에일러(对了)’였다. 영어로 ‘By the way’, 한국어로 ‘그나저나, 그건 그렇고’. 야심 차게 시작한 대화가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질 때 뽑아 쓸 수 있는 마법의 카드다.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는 척을 하며, 뚜에일러 카드를 쓸 최적의 시기를 노린다. 틈을 발견하면 ‘뚜에일러’를 외치며 최근 보고 있는 중국 드라마나 다가오는 주말 계획 등 쉬운 주제로 전환한다. 구질구질했지만 내겐 꽤 든든하고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물론 뚜에일러 카드를 너무 자주 남발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단지 내 얼어 버린 호수위에서 스케이트와 썰매를 타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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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마라(麻辣)를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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