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의 스트레스와 불안에 맞설 정신의 비타민을 제공하는 幽默书店
세상에 딱 하나의 감각만을 남겨야 한다면 그것은 ‘유머 감각’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현상이나 대상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익살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감각’인 유머. 유머가 아예 사라진 세상과 사람들, 혹은 관계를 생각해 보라, 얼마나 끔찍한지.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어른으로 늙어갈 수만 있다면, 크게 불행하지는 않을 것 같다. 배우 박정민의 표현처럼 내비게이션에 ‘쥐구멍’이라고 치고 그곳으로 사라지고 싶을 만큼 부끄러울 때, 자아가 더 이상 쪼그라들 수 없을 만큼 자존감이 사라졌을 때(나이 마흔에도 이런 순간들은 자주 찾아온다), 세상 돌아가는 꼴에 실망해서 분노할 기력조차 없을 때, 나를 구렁텅이에서 꺼내 준 건 선후배, 친구들의 관용과 농담이었으니까. 김금희 작가가 그랬지. 농담은 일종의 보슬보슬한 양말 같은 것이라고. ‘우리의 보잘것없고 시시한 날들을 감추고 보온하는’ 소중한 것이다.
유머 감각이 아주 뛰어난 서점 사장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모르긴 몰라도 숀과 가장 비슷할 것 같다. 숀 비텔(Shaun Bythell)은 2001년 11월 위그 타운에 있는 서점 ‘더북숍’을 인수해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중고 서점의 주인이 됐다. 한때 그는 의심의 여지 없이 책을 사랑해서 책방 주인이 되었지만 서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과 온라인 서점의 공습으로 분노에 휩싸인다. 강력한 라이벌인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을 총으로 쏴서 서점 벽 한쪽에 걸어 두기까지 했으니까.
그 분노의 이야기들을 엮은 텍스트가 '숀 비텔의 서점 일기(The Diary of a Bookseller)'다. 그는 '서점 주인은 성마르고 편협하고 비사교적'이란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유사한 모습으로 서점을 운영하며 매일 서점 일기를 써내려 간다. 일기의 마지막은 그날의 매출과 찾아온 손님의 수로 마무리되는데 그 숫자가 고개를 갸웃할 만큼 작아서 '0'이 하나 빠진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책장을 계속 넘겼다. 책을 읽어내려 갈 수록 그 숫자가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런 문장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침에 너무 춥고 축축해서 난로에 불을 지폈다. 11시까지 5명의 손님이 서점 문으로 들어왔고, 그중 한 명도 뭘 사간 사람은 없었다. 73p
서점 주인들은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책을 사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던데 과연 그런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머를 잃지 않고 서점을 운영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유머의 대가인 그는 인내심에서도 재능을 발휘한다. 영국 남부에 사는 어떤 남자가 스코틀랜드에 있는 서점을 인수할 생각이라며 전화를 걸어와서 이것저것 물었을 때 그는 그 말을 듣는 즉시 “지금 제정신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기 때문이다.
숀 비텔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중국인이 있었다. 게다가 더 용감했다. 베스트셀러만 갖다 놓아도 적자를 면치 못할 오프라인 서점에 웃기는 이야기들을 모아 <요우모슈뎬(幽默书店)>이라는 곳을 냈으니까. 안 가볼 도리가 없다. 작은 독립 서점을 갈 때마다 나를 감싸는 제일 큰 설렘은 이 서점에서는 과연 어떤 책을 만날까 하는 기대감이다. 언어가 짧은 이방인이다 보니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각 서점만의 시선이 담긴 추천 도서를 기대하게 된다. 요우모슈뎬은 그런 설렘이 제일 컸던 서점이었다. 요우모슈뎬을 만든 책방 주인이 권하는 책은 분명 뻔할 리 없을 테니. 그러니 ‘책방이란 ‘장소’보다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며, 책을 사러 가는 것보다 가게 주인을 만나러 간다’던 <앞으로의 책방>의 저자 기타다 히로미쓰처럼 유머 서점을 향해 가던 내 심정도 비슷했다. 그 공간을 만드는 어떤 사람을 조우하러 간다.
요우모슈뎬은 예상과는 달리 시끌벅적한 거리가 아닌 조용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들어가니 즐거운 기운이 가득했는데 과연 여느 서점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제일 먼저 ‘开心是每个人的刚需'라는 슬로건이 눈에 들어왔다. '즐거움은 모든 이들이 언제나 원하는 것' 정도로 해석할 수 있으려나. 코믹 잡지 <喜剧世界>와 찰리 채플린의 얼굴을 표지로 한 책도 연이어 찾을 수 있었다. 중앙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진열대에서도 그 해의 가장 괜찮은 코미디를 선정해서 그러 모은 작품집과 유머 교본 집들이 있었다. 유머를 책으로 배울 수 있다고는 당최 생각할 수 없지만 그런 책을 읽고 있는 것만으로 당신은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점에는 앞에 서면 모습이 익살스럽게 뭉개지는 거울이 몇 개 놓여 있어서 아이는 신기해했다. 책뿐 아니라 그림과 소품들도 많았다. 유머 서점은 여러 가지 이벤트와 활동을 진행하는데 우리가 간 주말에는 각자의 개성을 살려 ‘웃긴’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요우모슈뎬의 주인은 10년 전 종팡링(钟芳玲) 여사가 쓴 서점 시리즈를 읽고, 세상에 다양한 서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본인도 언젠가 서점을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5-6년 후, 갈수록 삭막해지는 세상에 대한 심한 스트레스로 사람들은 현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유머를 찾았고 사랑 받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쏟아졌다. 그 즈음 ‘현대인들의 스트레스와 불안에 맞설 정신의 비타민을 제공하는 서점’을 내자는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요우모슈뎬은 2021년 6월 8일에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중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숫자가 6과 8(6은 순조롭다는 뜻의 ‘流’와 8은 돈을 ‘벌다’의 동사 ‘发’와 같은 발음이다)이기 때문에 그 날을 디데이로 잡았다. 과연 유머가 넘치는 시작이다.
요우모슈뎬은 책을 파는 가게로 만족하지는 않을 듯하다. 다른 독립 서점이 그렇듯 자신만의 특색을 내세워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토크쇼, 즉흥 공연, 코미디 영화 관람, 개그 페스티벌 등을 계획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건 다양한 세대를 대상으로 진행하겠다는 유머 소양 교육.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고, 중요한 일을 계획 중이라고 생각했다.
요우모슈뎬의 위챗 모먼트에서는 숀의 서점일기와 조금 결은 다르지만 아름다운 서점 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서점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과 서점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담긴다. 작가와 출판업계 사람들, 취재를 위해 오는 이들, 혹은 그저 책과 유머가 좋아서 들리는 독자들의 이야기다.
서점에 가기 전부터 예상했던 일이지만 초록색 티를 입고 있는 요우모슈뎬의 직원들은 어찌나 친절한지 계속 말을 걸었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 스트레스 따윈 없어서 좋겠다 싶지만 오산일 것이다. 어쩌면 분노를 계속해서 조절하고 유머 감각을 키워야 하는 첫 번째 부류가 매일 책 먼지와 불확실한 미래로 불안감에 싸인 독립 서점 직원일 수도 있다. 최근 <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라는 후속 책을 집필한 스코틀랜드의 숀 비텔처럼.
나는 유머를 사랑하는 이 서점의 주인장이 곧 제2의 ‘숀 비텔’이 될 가능성에 대해 내내 생각했다. 책의 종류도 많지 않은 데다 베스트셀러는 거의 없어 보이는 이 서점이 적자를 면할 수 있는 희망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해의 유머집을 살 독자는 15억 명 중 몇 명일까. 다행스럽게도 이 서점은 중국 국영 서점인 ‘신화 서점’ 산하에 있는 테마 서점이었다. 든든한 자본이 뒤에 있었군. 역시 유머 감각을 유지하는데도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조금 슬퍼졌지만 이 서점이 몇 달 뒤 공기처럼 사라질 염려가 없어져서 마음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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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마라(麻辣)를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