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99.99999도
예전에 오래 다녔던 통번역 학원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었다. ‘언어 실력의 상승 곡선은 완만한 것이 아니라 계단 형태다. 그러니 왜 이렇게 실력이 오르지 않냐고 한탄하며 조바심 내지 말라. 열심히 매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한 계단 올라가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실력이 지지부진하다고 느낄 때 당신은 계단 바로 앞에 있다.’
사이비 종교의 리더 같은 말씀이지만 참으로 맞는 말이라고 느꼈고 그 말을 신봉하며 (실력이 전혀 늘지 않는 것 같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내 계단의 턱은 유난히 높은 건지 한 계단을 상승할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전 다리가 길어서 평소에 계단을 두세 개씩… 쿨럭)
선생님의 말씀을 믿어도 될까, 하는 초조함이 온몸을 감싸던 시절,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는데 올라가는 것은 계단 형태일지 몰라도 내려가는 건 바로 ‘낭떠러지’라는 거다. 여름 방학을 이용해 고작 3주 동안 서울에 다녀왔는데, 다녀오니 쉬운 한자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오마이갓. 아니, 워더마야(我的妈呀)! 한 학기 동안 줄곧 써온 단어인데도, 막상 쓰려고 펜을 들면 점이 어디에 있었는지, 갈고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너무나 헷갈려서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뻥쿠이뻥쿠이(崩溃), 멘붕멘붕. 쓰읍.
X축에 시간을 들인 만큼 Y축의 실력도 정비례해 올라가면 좋겠지만, 영어 실력은 계단식 그래프를 그리며 올라가더라고요. 아무리 공부해도 실력이 늘지 않아 답답하기만 한데, 질적인 변화는 금세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물을 가열하고 또 가열해도 김만 날 뿐 여전히 물입니다. 그러다 온도가 100도에 도달하면 어느 순간 확 끓어 넘치며 수증기가 됩니다. 양이 쌓여야 질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양질 전환의 법칙이 영어 공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영어 고수로 불리는 사람들은 대게 그 첫 번째 계단을 오르는 순간, ‘이거구나!’하는 희열을 맛본 다음에 공부에 재미가 붙었다고 말합니다.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포기하진 마세요. 원래 어학 공부가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첫 번째 계단을 훌쩍 올라서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영어책 한 권 외워 봤니? 김민석
그래, 100도! 지금 난 99.9999999. 어제도, 그제도. 쩜쩜쩜.
대학생 때 잠시 캐나다에 다녀왔던 것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전력을 다해 ‘언어’를 습득하는 시간이다. 물론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는 완벽하게 ‘심이 엄마’로 돌아가야 하고, 집안일에 바쁘니 시간의 여유는 없는 편이지만 마음가짐 자체가 그렇다. 새로운 언어를 제대로 공부해서, 맛보고 싶다는 열망. 그 열망 하나만큼은 굉장히 뜨거운 상태다.
첫 학기는 그야말로 백지상태라, 습득의 속도도 빨랐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당장 생활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컸다. 아이와 함께하는 6시간을 제외하면 중국어만 생각하면서 지냈다. 블로그와 책, TV, 웹툰 등 한국어로 이루어진 모든 콘텐츠도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노량진 고시촌 분위기를 방불케 했던 두 번째 학기에는 필기와 숙제가 늘어나고 학습량도 많아진 것 같은데 막상 실력은 기대만큼 늘지 않아 초조했다. 중국어를 공부한 지 일 년인데, 난 어디쯤 와 있는 거지? 계단 하나는 오르긴 했나 하는 정답 없는 물음들. 숫자 ‘7(七)’과 ‘9(九)’가 헷갈리는 절망적인 상태로 중국에 왔다가 이제 길거리 간판이나 메뉴판에서 중국어를 조금은 읽을 수 있으니 대단한 발전이라고 자찬하다가, 타오바오에서 물건 설명을 읽어 내리며 ‘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상심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엉망이 되어 있는 거실을 바라보며 나의 중국어 집착의 끝에 어떤 부귀영화가 기다리고 있나 생각해 보았다. (사실 그 생각의 끝에 갑자기 우리 집 변기에 얼굴을 박은 집주인이 있었다.) 부귀영화는 웬걸, 누군가가 바로 떠올랐는데, 우리 반 최연장자 학생이다. 아이들이 벌써 대학생이라 나이는 예순 가까이. 처음 뵈었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놀라움 투성이다. 늘 1-2등으로 먼저 등교해서, 같은 자리에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수업을 들으시고, 수업 중에 모르는 부분은 꼭 짚고 넘어가며 선생님께 깊이 있는 질문도 많이 던지신다. 뒷자리에 앉은 조카뻘의 우리에게도 종종 질문을 주시고, 감사하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신다.
늘 웃음과 여유가 가득한 얼굴로 인사해 주시는 모습, 학교 식당에서 어린 중국 친구들과 섞여 점심을 드시는 모습이 때로 감동적이다. 중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어 중국어를 배운다는 소박한 이유도 그렇다. 남편과 함께 학교에 다니시는데 팔짱을 끼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모습도 아름답고, 심지어 지난 중간고사에는 종합시험 점수 만점을 받으셨다.
그분의 뒷모습을 보며 배움의 가치와 이유는 끝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저 나이가 되어도 저렇게 깨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자문도 함께. 숙제 많다고, 이거 나중에 써먹을 수나 있겠냐며, 왜 늘지 않냐며 투덜댔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자전거를 타고 등굣길을 달린다.
고미숙 작가의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에 보면 이런 아름다운 표현이 나온다. 공부는 그 자체로 존재의 기쁨이자 능동적 표현이라고. 파우스트에는 이런 표현도 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한국에 포기하고 온 무언가를 대체하기 위해서 중국어를 꼭 얻어 가야 한다는 다소 이기적이고 거창한 이유가 아닌 그저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존재의 기쁨이자 능동적 표현’이 되어주는 배움 그 자체에 계속 열려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들로 나를 지탱하고 싶다. 그러니 나는 계속 노력하고, 방황할 테다.
어쨌거나 나는 대체 언제쯤 계단을 오를 수 있는 건지 몹시 궁금한 새벽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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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마라(麻辣)를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