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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Apr 20. 2022

거리에서 종이 돈을 태우는 이들을 만나면

한없이 투명한 이방인의 삶

가끔은 생각이 나기도 하겠지만, 내가 없어서 특별히 당혹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약간 과장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외국에 오랫동안 나가 있는 다는 건, 나 자산의 사회적 소멸을 미리 경험해 보는 의사(擬似) 체험을 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윽고 슬픈 외국어>


베이징에서 유행처럼 퍼지던 ‘새우 훠궈’를 먹으러 가던 길이었다. 새우만으로 배가 불러 터질 수 있다는 아름다운 사실을 처음 알려 준 메뉴를 먹을 생각에 신이 났다. 아이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고 있는데 멀리 불길이 보였다. 대로 한가운데에 웬 불꽃과 연기람? 화재가 났나? 조급한 마음에 급히 가까이 가보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태우고 있었다. 한낮에? 대로에서? 이게 무슨!


자세히 보니 종이돈이었다. 다이소 소꿉놀이 세트에 나올법한 비주얼이라 더 어리둥절했다. 바닥을 살펴보니 동그란 도넛 모양을 한 뭉텅이 재들이 곳곳에 징검다리를 만들고 있었고, 몇몇은 더 이상 진지할 수 없는 얼굴로 계속 ‘종이돈 불꽃샷’을 날리고 있었다. 멈춰 서서 범상치 않은 이들의 손놀림을 지켜봤다. 한낮의 도시 풍경치고는 너무 낯설었지만 의아하게 지켜보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었다.


바이두가 알려줬다.


‘寒衣节’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겨울옷의 날’쯤 되겠다. 조금 더 알아보니 귀신을 기리는 ‘三大鬼节’ 중의 하나로 (청명절(清明节), 중원절(中元节)이 나머지 두 개의 ‘鬼节’다.) 죽은 사람을 추모하며 종이 돈이나 종이 옷을 태우는 날이라고 한다. 날짜는 날씨가 추워지는 매년 10월 초하루. 따뜻한 옷을 사 입으라고 ‘노잣돈’을 보내는 의미로도 해석하고, ‘送寒衣(겨울옷을 보내다)’라고 표현한다.


보통 조상의 무덤가나 강가에서 진행하는 의식이며 도시라면 그들에게 더 잘 닿을 수 있도록 사방이 잘 통하는 사거리에서 종이돈을 태운다고 했다. 왜 굳이 거리 한복판에서 돈을 태우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세상에서 춥지 않도록 옷을 보내준다고 생각하니 조금 이상하지만, 왠지 뭉클해졌다.


사진 출처: 바이두




수제 맥주 브루어리 <京A> 위챗 계정을 열심히 본다. 매주 새로운 맥주를 부지런하게 선보이고 재미있는 이벤트들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날의 소식은 이발 이벤트. 펍에서 이발을 하면 공짜 맥주를 주는 희한한 이벤트였다. 이발과 맥주의 조합이라?


살펴보니 음력 2월 2일, ‘龙抬头(용대두)’라는 중국의 전통 명절을 기념한 이벤트였다. 직역하면 ‘용이 머리를 드는 날’이다. 중국인들은 이날을 하늘에서 구름과 비를 장관하는 용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고개를 드는 날이자 한 해의 농사일이 시작되는 중요한 날이라 여긴다. 고대 중국인들은 이날 용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병충해의 소멸과 풍년을 기원하기도 했다. 용의 이빨을 닮은 물만두, 용의 수염을 닮은 국수를 먹기도 한다.

또한 헌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의미로 이발을 한다. 머리카락을 자르면 용의 좋은 기운을 받아서 일 년 동안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음력 1월에 머리카락을 자르면 외삼촌이 돌아가신다는 미신이 있어서 2월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가 머리를 깎는 중국인들도 많다. ‘正月不剃头,剃头死舅舅(정월에는 머리를 깍지 않는다, 외삼촌이 돌아가시거든)’ 원래 ‘思旧’였던 것이 비슷한 발음의 ‘死舅’로 변형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다. 어제 집 앞 미용실에 사람이 미어터졌던 것도 다 그런 연유에서였다.


징에이이발소(京A理发店)에서 맥주 잔을 들고 있는 파란 눈의 웨스터너들을 후기 사진에서 확인했다. 마음을 열고 생경한 문화를 즐기는 여유와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헬로우톡에서 알게 된 중국 친구 ‘京京’과 김밥을 말기로 했을 때, 그녀는 양 손 가득 요거트 두 박스를 들고 우리 집으로 왔다. 무겁게 왜 두 개나 샀냐고 의아해 하는 나에게 그녀는 ‘好事成双’ 카드를 들이밀었다. 중국인들은 좋은 일이 연이어 일어나기를 기원하면서 짝수로 맞추는 걸 좋아한다. 최근 본 중국 드라마에서 백주 두 병을 사 들고 여자 친구 집에 처음 인사 가던 남자 주인공이 생각났다.


2022년 2월 22일에 혼인 신고가 급증했다고 하던데 비슷한 연유일 테다. 중국에서 숫자 '2'는 ‘好’의 상징인데다 '사랑'(愛)과 동음이의어로 여겨지는데 그날은 2가 6번이나 들어간 날이자, 음력 호랑이해 22번째 날, 게다가 한 주의 두 번째 날인 화요일이니 굉장한 길일이다. 이런 믿음에 힘입어 항저우의 한 부부는 22일 2시 22분에 결혼식을 시작했고, 허난성에서는 1만 6000건의 혼인 신고가 이뤄졌다. 친한 친구들의 결혼기념일이 모두 같은 기묘한 경험을 겪을지도 모르겠다. 


참, 결혼을 축하하려거든 반드시 빨간 봉투에 축의금을 넣어야 한다. 흰 봉투는 죽은 사람에게 사용하는 거라나 뭐라나. 이러니 낯선 나라에서 건방지고 이상한 이방인으로 살지 않으려면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 건가요.




새우 훠궈로 배를 두둑이 채우고 신나게 돌아오는 길. 여전히 길 위에는 종이돈을 태우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중국 친구가 고인을 추모하는 의식은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용히 일러주었다. 아뿔싸. 신성한 의식이라 그런 것이겠지. 얼른 전화기를 넣었다. 문득 <이윽고 슬픈 외국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급한 무능력한 이방인에 관한 문장이 떠올랐다. 


외국에서 지내는 것의 메리트 중의 하나는 자기가 단순히 한 사람의 무능력한 외국인, 이방인에 불과하다고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약자로서 무능력한 사람으로서, 그런 식으로 허식이나 군더더기가 없는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혹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져보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귀중한 경험이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든다.


이 세상은 내가 모르는 것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꼰대가 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니 하루키상의 말처럼 무능력한 이방인이 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귀중한 경험이다. 오늘도 나는 길 위에서 기꺼이 ‘군더더기 없는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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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마라(麻辣)를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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