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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Apr 01. 2022

못 말리는 샹차이(香菜) 사랑

뚜어뚜어팡샹차이! 

한 사람의 음식 기호는 태아기에 형성되는 고유의 비밀번호인지도 모른다. 아주 친한 몇 사람만이 그 비밀을 읽어낸다. 


천샤오칭, <궁극의 맛은 사람 사이에 있다>, 102p


나는 샹차이(고수_香菜)를 좋아한다. 정말 정말 좋아한다. 원래는 '괜찮아, 굳이 열광적으로 찾아 먹진 않지만' 정도였다가 베이징 생활을 하며 샹차이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세제 혹은 화장품 냄새가 나서 싫다는 엄마를 비롯해 샹차이를 싫어하는 한국인들이 많은 모양이다. 오죽하면 여행 책자에 ‘호텔을 어떻게 갑니까?’와 비슷한 비중으로 ‘고수 빼주세요’라는 문장이 상세히 안내되어 있을까. (프랑스어권에선 "성 꼬히엉드흐, 실 부 쁠레(Sans coriandre, s'il vous plaît)", 인도 (힌디어)로는 "다니야 께 비나 디지에(धनिपा के बिना दीजिए)", 일본어로는 "파쿠치 누키데(パクチー抜きで)라고 한다) 


한국인들의 ‘고수 싫어’ 문화는 중국인들에게도 꽤 알려졌다. 내가 “샹차이 완전 사랑해! 완전 맛있어!”를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면 중국 친구들은 신기해했다. 어떤 종업원은 고수를 많이 달라는 내게 ‘너 한국인이지? 한국인은 고수 싫어하던데 신기하네’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기반한 TMI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샹차이 문화를 나누며 중국인들은 깻잎을 못 먹는 경우가 많고 깻잎 향을 샹차이보다 훨씬 강하게 생각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느끼한 중식에 곁들여 먹는 샹차이는 김치처럼 상큼하고, 땅콩소스 장과 함께 하는 샹차이는 참기름처럼 고소하다. 남들이 양 꼬치에 열광할 때 나는 슬며시 샹차이 두부 꼬치를 먹었고, 촨촨훠궈의 쇠고기 할라피뇨 샹차이 꼬치는 내 최애 메뉴다. 각종 누들, 마라탕에도 듬뿍 넣어서 먹는다. 삼겹살 쌈과 함께 먹어도 맛이 조화롭다. 


그러니 한국인들이 중국어 회화를 할 때 거의 제일 처음 배우는 문장이 “부야오썅차이(不要香菜_샹차이 빼 주세요)”인데 나는 “뚜어팡샹차이(多放香菜_샹차이 많이 넣어주세요)”를 먼저 외웠다. 샹차이를 싫어하는 지인들과 함께 식사할 때를 대비해 “샹차이는 따로 담아 주세요”라는 문장도 어디서나 술술 나오게 연습했다. 


마장(땅콩 소스)을 기본으로 하는 훠궈 소스를 만들 때 나의 샹차이 사랑은 화룡점정이 되는데 소스 바에서 샹차이를 대야에 퍼 담는 수준으로 가져와 냠냠 해치운다. 그걸 바라보던 친구 왈,  


-그 정도면 땅콩 소스에 샹차이를 넣어 먹는 게 아니라 샹차이에 땅콩 소스를 발라먹는 수준 아니냐?

-그지? 말 그만하고 네가 가서 좀 더 담아 올래? 아까 너무 많이 담아서 눈치 보인다.

-샹차이만으로도 배가 차겠어, 아주. 




만두 집에서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그날도 ‘왜 이렇게 만두 종류가 많은 거야’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메뉴 판을 정독하고 있는데 ‘香菜饺子’라는 메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만화 캐릭터처럼 다이아몬드 눈을 반짝이며 시켜봤다. 먹어 봤더니 버섯과 고수가 속(馅)으로 들어간 만두였는데 원가 절감 차원 때문인지 샹차이가 메인이었다. 90%가 샹차이, 10%가 버섯으로 이루어져서 거의 밀가루 반죽에 맨 고수를 싸 먹는 맛이었다고 할까? 아무리 샹차이 마니아인 나였지만 고수는 다른 음식과 조화될 때 진정 꿀맛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차이 만두는 두 번 다시 시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즐겨보던 웹툰 <역전! 야매요리>의 정다정 작가가 고수 향을 ‘이틀 굶은 암사자 입 냄새’라고 언급한 것을 보고 배꼽을 잡았더랬다. ‘어나더레벨’ 수준의 맛 표현이라 깊이 각인되어 이후 샹차이를 먹을 때마다 굶주린 암사자가 떠오르곤 했다. 어쨌거나 다섯 살부터 샹차이를 먹어 온 심이는 샹차이에 대해 편견이나 거부감이 없고, 심지어 샹차이 만두도 맛있다고 좋아했다. 결론은 역시 먹다 보면 맛있고, 익숙해지면 잘 먹는다 일지도. 아니면 말고.  


출처: 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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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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