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유격전
여기, <미성숙한 국가>라는 무서운 제목의 책을 집필한 한 지성인이 있다. 이름은 쉬즈위안(许知远). 기대보다 현대적이고 멋진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물들고 있던 내게 찬물을 끼얹어 준 사람. 작가이자 사업가, 중국과 베이징 상황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드문 사람. 그의 책 미성숙한 국가의 서문을 간단히 살펴보자.
대체적으로 중국은 형편없이 미성숙한 국가다.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마땅히 갖춰야 할 도덕적 원칙과 책임감을 갖추고 있지 않다. 내부적으로는 인권과 시민 사회에 대한 탄압을 통치의 기초로 삼고 있다. 중국의 거대한 경제 규모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일종의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중국을 ‘형편 없이 미성숙한 국가’라고 비판할 수 있는 평론가가 중국에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그를 베를린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쳤다는 박현숙 자유기고가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거물급 언론매체 사장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속물적인 성공을 얻는 대신 시대의 저항자로 남기를 선택'했다. 그를 알면 알 수록 '시대의 저항자'라는 표현이 찰떡같았다. 그는 실제로 타이완, 홍콩, 중국 출신의 혁명가를 다룬 '저항자'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1976년 중국 장쑤성에서 출생한 쉬즈위안은 베이징 대학교 재학 시절 현실을 비판하는 기사를 여러 차례 기고하며 이름을 날린다. 그의 조국 비판은 거침이 없고 나를 오싹하게 만드는 문장 리스트는 끝이 없었다.
이것이 중국의 현재다. 한쪽 끝에는 무지하고 정부에 의해 쉽게 조종당하는 군중 집단이 있고, 또 한쪽의 끝에는 폐쇄적이고 오만하며 아무런 원칙도 없는 정권이 있다. 일반 대중이 구글이나 페이스북도 자유롭게 접속할 수 없는 나라가 자유무역의 창도자가 된다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9p
하지만 이 순간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모습과 통계수치, 눈부신 수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고 있다. 중국은 기이한 형상과 다양한 색채를 가진 사회다. 모든 곳에 탐욕과 부패가 팽배해 있고 사람들은 권력은 원래 이런 것이라고 체념한 듯 인정해버린다. 대학에서도 거대한 기업이나 행정기관과 마찬가지로 사상과 가치가 가장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되어버렸다. 모든 사람이 똑 같은 성공을 갈망하고 있고 얼굴에는 저마다 초조한 눈빛만 가득하다. 23p
오늘날의 중국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한쪽 면에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발전 구역이 있다. 세계 최대의 시장이자 세계의 공장이며 희망의 땅이다. 하지만 다른 한 면에는 쓰레기로 가득한 사회가 있고, 그 사회가 만들어내는 혼란과 정신의 오염은 물질적 성장보다 훨씬 더 놀라운 수준이다. 이 나라가 바로 그 많은 역사책에 그토록 아름답고 우아하게 묘사된 나라란 말인가? 294p
지금 베이징은 세계에서 사람이 살기에 가장 부적합한 도시가 되려고 온 힘을 다 쏟고 있다. 물가는 지나치게 높고 도시환경은 너무나 혼잡하여 쾌적함이라는 조금도 느낄 수 없는 데다 겨울은 너무 춥고 봄에는 황사를 견뎌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망과 불안은 이 도시를 더욱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낡은 건물들을 철거하고 더 많이, 더 높이 건물들을 지으면서 더 넓은 도로에 더 많은 자동차가 돌아다니기를 원한다. 이제 사람들은 모두 미래가 훨씬 아름다울 것이고 어제쯤은 가볍게 던져 버려고 된다고 믿고 있다. 309p
<미성숙한 국가> 중
베이징은 3000년의 역사로도 자신을 증명하는 게 부족하다는 듯이 이처럼 랜드마크를 갈망한다. 중국은 모든 일을 뒤를 향해 바라보는 보수적 성향으로 유명하지만 과거 한 세기 동안에는 아무런 아쉬움 없이 과거를 던져버리고 미래를 껴안았다. 문화대혁명 10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최고위층의 정치에서부터 보통 사람들의 일상 생활까지 사회 전체가 따랐던 논리가 바로 ‘과거와의 단절’이었다.
<나는 내 나라가 낯설다>, 176p
혹시 목숨이 여러 개인지, 아니면 N년차 인생인지 의문이 드는 쉬즈위안은 2006년 언론 및 출판계에서 일하던 지식인들과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단샹콩젠(单向空间)>이라는 인문 서점을 차린다. 서점은 '동펑예술구(东风艺术区)' 안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찾기가 쉽지 않았다. 도저히 서점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골목 끝에서 통창 너머로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서점에서 키우고 있는 고양이 리디아(Lydia)였다. 나는 그날의 첫 번째 손님이었는데 '우리는 세계를 읽는다(We read the world)'라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던 서점 내부로 걸어 들어간 순간은 베이징에서 맞이한 인상적인 모먼트 중 하나다. 단샹콩젠만의 아우라는 건물 전체, 실내 구석 구석에서 뿜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 묘한 짜릿함을 느끼며 서점을 걸었다.
'일방통행로'라는 의미의 단샹콩젠은 독일 언어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책 제목에서 따왔다. 벤야민은 보들레르가 파리에서 그러했듯 도시를 배회하며 사유하는 산책자였다. 쉬즈위안은 거리의 풍경에서 떠오르는 시상과 낱말, 사유를 자유롭게 건져 올렸던 벤야민식 사유가 서점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
1928년 로볼트 출판사에서 출간된 <일방통행로>의 단편들을 통해 쉬즈위안이 매료된 벤야민식 사유를 엿볼 수 있다. 광고판, 벽보, 주유소 등 단편 제목 대부분은 대도시 거리에서 취한 것인데 풍경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찾은 자신만의 사유를 적었다. '거리의 구경꾼이 아니라 거리를 산책하다가 불현듯 찾아온 생각을 기록하는 자'이기에 도시 베를린에 대한 정보는 없다.
쉬즈위안은 당신이 서점에서도 도시를 산책하듯 마음껏 헤매기를 바란다. 그것이 온라인으로 원하는 책을 하루 만에 배달 받을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오프라인 서점에 가는 이유이니까. 서점을 자유롭게 헤매다가 새로운 사유를 발견하고 미처 몰랐던 자아의 욕망이나 불합리한 세상을 문득 깨닫게 될 수도 있다. 도시 산책과 서점 산책은 마음껏 헤매야 비로소 완성되는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그러니 벤야민이 걷던 베를린 거리를 닮은 서점의 이름으로 ‘일방통행로’는 이상하게 완벽하다.
단샹콩젠은 자유로운 사유를 위한 키워드를 끝없이 던져준다. 이곳의 커피 잔에는 ‘독서는 휴대할 수 있는 작은 피난처(阅读是一座随身携带的小型避难所)'라고 쓰여 있었다. 커피를 홀짝이며 머리를 통째로 다른 세계에 담그는 독서라는 행위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피난처가 없는 사람은 어떤 의미로 불행할 것이다.
서점 위챗 공중 계정을 등록했더니 다음과 같은 문구가 떴다.
-너를 환영해, 말로 표현하기 힘든 환상적인 미래를 함께 기다리자! 이곳은 독립적이고 풍부한 영혼을 위한 서식지. (欢迎加入我们,一起等待妙不可言的未来!这里是独立灵魂的栖息地.)
-네가 보지 못한 것을 능가하는 비전을 가져라! (要有一个远见,超越你所未见!)
갑자기 독립적이고 풍부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되어 엄청난 비전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서점의 또 다른 위챗 계정인 ‘단샹리(单向厉)’에서 매일 오전 보내주는 한 편의 글 또한 오감을 자극했다. 나는 그 글을 제대로 읽고 싶어서 중국어를 더 열심히 공부했다.
활자 중독자에게 낯선 도시는 한 권의 두꺼운 책과 같다. '생각하는 일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어딘가를 지나가는 일’이라는 리베카 솔닛의 말을 기억하며 나는 무작정 낯선 도시를 헤맸다. 나를 둘러싼 미지의 세상을 끝없이 두리번거리고 나만의 언어로 해독하느라 하루하루가 매우 짧았다. '누군가를 아무런 희망 없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라고 벤야민이 말했던가. 나 역시 타국에서 자주 길을 잃는 도시 산책자가 되었기에 이 도시를 제대로 알고, 사랑할 수 있었다.
도시를 걷다가 지루해지면 쉬즈위안의 제안대로 서점에서 내 인생을 바꿔 줄 단 한 권의 책을 찾아 헤매는 '사유의 유격전'을 벌인다. 언젠가 만날 나의 진짜 모습을 기다리며. 가끔은 설레고, 가끔은 덤덤하게, 아주 변덕스러운 여행자의 마음으로 책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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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후통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