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한 귀한 마중물
1993년에 문을 연 시시푸는 원래 인문사회과학 서점이었다. 임대료 상승과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폐업할 뻔 했던 상황을 겪었다. 그 뒤로 진웨이주는 서점이 문화가 되어야 하느냐, 비즈니스가 되어야 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2007년 시시푸는 평당 영업액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500-800제곱미터의 소규모 매장만 열고, 서가를 최대한 조밀하게 배치했으며, 개인의 취향이 아닌 데이터에 따라 책을 선정했다.
제일재경주간 미래예상도 취재팀, <미래의 서점>, 50p
서점의 존재 이유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어떤 서점은 깊이 있는 독서를 하는 독서광에게 어울리고, 어떤 서점은 책을 별로 읽지 않는 사람에게 한 권의 책을 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명한 쇼핑몰마다 입점해 있는 <시시푸슈뎬(西西弗书店)>은 후자다. 책에 그다지 관심 없는 많은 이들이 쇼핑몰에서 맛있는 식사와 즐거운 쇼핑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에 들린다. 레드 포인트의 감각적 인테리어로 무장한 시시푸슈뎬은 그런 당신에게 대중적이고, 재미있는 한 권의 책을 권할 것이다.
책에 커피와 문구, 팬시용품 등을 더해 적극적으로 다원화 경영을 꾀하고 있는 시시푸슈뎬도 처음부터 복합 문화 공간을 지향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 인문사회과학 서점이었던 시시푸는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폐업의 위기를 겪고 다양한 혁신을 도모한다. 우선 도서를 일반 상품처럼 취급하기로 하고 책마다 여러 속성의 태그를 달아 디지털 관리 경영 방식을 도입했다. 책을 선정하는 방식도 철저하게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으며 매장에 오는 고객들의 선호와 소비 능력을 분석해 어떤 책을 정면에 배치할지 결정했다. 저자 사인회, 유명회 강연, 독서 모임 등 해마다 1,000회가 넘는 이벤트도 개최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깊이 있는 전문 서적이 적어지고 베스트셀러가 주가 되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서점이 문화가 되기 위한 선제적 조건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기에.
쇼핑몰에 있는 서점을 생각해 본다. 한적한 후통 혹은 하늘 바로 아래에 있어서 그 장소에 있다는 것만으로 특별한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서점들과 비교하면 밋밋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쇼핑몰의 화려한 명품 숍들 사이에서 ‘지성’이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들러리로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랴. 시시푸슈뎬은 서점의 쇼핑몰 입점을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을 독서인으로 바꾸는 전환 사업이라 일컬으며 서점 바닥에 ‘책알못’을 위한 노선도까지 그려놨다. 책에 그다지 관심 없는 이들이 가볍게 들러 한 권의 책을 우연히 만날 수 있도록 시시푸슈뎬은 쇼핑몰 한 켠에 등대처럼 불을 밝히고 당신에게 말을 건다.
중국문학에도 이런 등대 같은 존재가 있으니 바로 중국 문학사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莫言)이다. 중국문학에 처음 관심을 가진 누군가 재미있는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나는 쯔진천의 추리 소설과 더불어 그의 <개구리>를 떠올릴 것이다. 저명한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서가 아니다. 흡인력이 대단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캐릭터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중국의 과거를 알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베이징에서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던 단어는 '소황제(小皇帝)'다. 소황제는 마치 황제처럼 떠받들며 키우는 외동아이를 의미한다. 멀리서 봐도 부모와 조부모로 이루어진 6명의 팀이 한 아이를 감싸고 애지중지하는 것이 느껴졌다. 놀이터에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중국인들은 아이가 몇 명 있는지 물었다. 하나라고 하면 다들 놀라며 한국인들은 아이를 많이 낳던데 왜 한 명이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그들에게 같은 질문을 할 필요는 없었다. 중국은 1978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계획 생육 정책'을 발표한 뒤 사실상 두 명의 자녀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한 자녀 정책'으로 두 자녀 이상일 시 감봉, 벌금, 승진 제한 등의 불이익이 가해졌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두 부부가 모두 외동일 경우, 2013년에는 두 부부 중에 한 명이라도 외동일 경우 자녀 두 명까지 허용했으며, 2016년부터는 조건 없는 두 자녀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니 내가 베이징에 간 2017년 초는 산아 제한 정책이 풀린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그 해 연말이 되자 거리에 임산부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한국에 있을 때 관심을 두지 않던 그 정책의 실상을 내게 알려준 것이 모옌의 '개구리'다. 강력한 번식력을 의미하는 개구리(蛙)를 제목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에는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이 빚어낸 촌극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설은 주인공 커더우가 일본 작가 스기타니 요시토에게 보내는 편지와 연극이 결합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 생육 정책 선봉에 있는 산부인과 의사 고모를 중심으로 이 정책에 무참히 희생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첫째 딸을 출산했지만 아들을 가지고 싶은 욕심에 남편 몰래 둘째를 임신한 커더우의 아내 왕런메이. 그녀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친정에 있는 땅굴에서 숨어 지낸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커더우와 고모는 출세와 당에 대한 충성이라는 다른 이유로 왕런메이를 찾아가 낙태를 종용한다. 임신 7개월의 몸으로 수술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몸이 찢기는 고통 속에서 결국 숨진다.
뱃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도망 다니다 뗏목 위에서 조산아를 출산하고 죽음을 맞는 왕단도 있다. 그녀의 피로 붉게 번지는 호수는 마치 아이를 지키지 못한 엄마의 피눈물 같다.
-뗏목 위에 피가 흥건한 가운데 왕단이 누워 있었습니다. 배만 볼록 튀어나온 조그만 몸뚱이가 마치 분노와 공포에 휩싸인 돌고래 같았습니다. 288p
갖가지 촌극에도 계획 생육 정책에 대한 고모의 신념은 한 치의 흔들림이 없다. 그것은 '위대한 이치'이며 '나라의 기본이 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소설 도입부, 예전 출산 방식을 고집하는 늙은 산파들과 투쟁을 벌이는 등 신여성의 면모를 뽐내던 고모는 결국 그 뛰어난 의술로 2,800명이 넘는 아이의 목숨을 뺏는다. 시간이 흘러 고모는 아이들 인형을 빚으며 사죄를 구하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다 정신이 이상해지고 결국 스스로 밧줄에 목을 매는 얄궂은 운명을 가진다.
과격한 정책으로 아내와 아이를 모두 잃은 커더우도 이 정책의 피해자만은 아니다. 대리모 자격으로 자신의 아들을 낳은 천메이로부터 아이를 잔인하게 뺏기 때문이다. 커더우와 고모 모두 이 정책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다. 잘못된 정책과 충성심, 빗나간 욕망은 많은 이들의 인성을 망가트리고 여러 명의 괴물을 만들어 냈다.
-고모의 얼굴이 한껏 포근해졌습니다. 그래요, 바로 이 모습이에요. 그 애예요. 고모는 갑자기 말투를 바꾸어 인형에 대고 말했습니다. 바로 너야, 꼬마 요정! 빚 받아 가야지! 이 고모 할머니가 저 세상으로 보낸 2,800명 아이 중에 네 녀석이 빠졌어. 이제 너까지 모였으니 모두 모인 셈이구나. 429p
산둥성 출신인 모옌은 이 작품으로 2012년 중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말이 없다'라는 뜻을 가진 필명 모옌은 문화대혁명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잘못 놀려 죽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아버지가 '무조건 말을 줄이라'고 강조한 데서 착안했다. 초등학교 때 문화대혁명을 겪고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그는 폭풍 같은 시기를 보내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개구리를 읽다 보면 산아제한이라는 우울한 소재를 이토록 강력하고 재미있게 끌고 나가는 작가의 재능에 감탄하게 된다. 52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이렇게 술술 읽히다니, '야성과 광기의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다.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모옌은 중국 전통 문학 안에서 포크너, 마르케스와 비견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냈다'라고 밝혔다. 길에서 우연히 지나친다면 대단한 이력의 작가라는 정보를 떠올리기 쉽지 않은 친근한 외모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쓰면서 이미 다음 이야기가 떠오른다는 대단한 이야기꾼. 인터넷에서 자신의 이름을 사칭한 사람에게 원고료를 찾아 가라며 '당신은 재능이 있으니 내 이름을 빌려 글을 쓸 필요가 없다'라는 위트와 관용을 보여주는 이가 모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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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후통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