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톄셩의 나와 디탄
두 다리를 못쓰게 된 후 첫 몇 해는 일도, 가야 할 길도 찾을 수 없었다. 갑자기 거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휠체어를 굴리며 늘 이곳으로 왔다. 이곳은 한 세계에서 도피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였다.
스톄셩, <나와 디탄>
앞으로 남은 모든 행복들을 저당 잡힌 것만 같은 큰 불행이 닥쳤을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라는 질문을 처음 스스로에게 던져본 건 그의 글을 읽었을 때였다. 문화대혁명 당시 진행된 하방 운동(간부들의 관료화를 막기 위해 혁명의 정신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벽지 농촌이나 공장에 보내 가혹한 육체 노동을 시켰던 중국 20세기의 정치 운동)의 후유증으로 스무 살 스톄셩은 갑자기 하반신 불구가 되었다. 감당하기 힘든 불행을 맞닥뜨린 작가의 휠체어 바퀴가 향한 곳은 집 근처 디탄(地坛) 공원이었다. 이후 15년 간 디탄 공원은 그에게 '생명이자, 계절이자, 벗이자 모든 것'이었다.
용허궁 근처에 있는 디탄 공원은 베이징 남부의 티엔탄(天坛) 공원과 대칭을 이루는 곳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티엔탄이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이라면 이곳은 땅의 신에게 제를 올리는 곳이다.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제단으로 면적만 천안문 광장의 6.8배인 티엔탄 공원에 비해 디탄 공원의 규모는 소박하고 조촐하다. 그런 연유로 디탄 공원은 관광객보다는 산책과 계절을 즐기는 동네 주민들이 많다. 유명한 관광지인 용허궁 근처에 있어 낙엽 구경을 하러 종종 들렀던 공원이었지만 스톄셩의 <나와 디탄(我与地坛)>을 읽은 후 그곳은 불우한 한 작가의 삶을 살린 기적 같은 공간으로 변했다.
젊음과 열정이 불타오르던 가장 찬란한 시기에 평생 한으로 남을 장애를 짊어지게 된 작가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의 주업은 병드는 것, 부업은 작가(职业是生病, 业余在写作)’라는 문장으로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그의 수필에는 치명의 괴로움과 고통이 절절히 표현되어 있다. 그는 디탄 공원과 자신 사이의 숙명적 기운을 느끼며 매일 그곳으로 간다. 공원의 모든 풀밭과 길 위에 휠체어 자국을 남기며 어느 계절, 어떤 날씨, 어느 시간에나 그곳에 머물렀다. 책 초반의 아래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이 글을 담담하게 쓰기 위해 그는 어떤 시간을 건너야만 했을까.
-가끔 나는 디탄과 나 사이에 어떤 숙명의 기운을 느낀다. 이 오래된 공원이 나를 만나려고 그 자리에서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 400여 년을 기다린 것 같은. 내가 태어나기를 기다렸고, 또 가장 왕성하게 꽃을 피울 나이에 갑자기 두 다리를 못 쓰게 되기를 기다린 것 같은 느낌 말이다.
15년 전 어느 오후, 나는 휠체어를 타고 공원에 들어갔다. 공원은 혼이 나간 가련한 영혼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두었다. 태양은 절대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그 길을 따라 움직이며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붉어지고 있었다. 공원 가득 퍼진 조용한 햇빛 속에 혼자서 쉽게 시간을 보고, 나 자신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별 생각없이 공원으로 들어간 그날 오후부터, 그 공원을 오랫동안 떠나본 적이 없다. 나는 그곳의 의미를 금방 이해했다. 소설에도 쓴 것처럼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이 대도시에 이렇게 조용한 장소는 마치 하느님이 사람들을 위해 고심해 마련해놓은 선물 같았다. 9-10p
-15년 동안 공원은 그곳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 의해 제멋대로 단장되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 누가 와도 바꾸지 못하는 어떤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제단의 돌문 사이로 떨어지는 태양의 고요한 빛이 넓게 퍼지는 그 순간, 땅 위에 있는 울퉁불퉁한 모든 것들이 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모습. 공원이 가장 적막하고 쓸쓸한 시간에 한 무리의 제비가 높이 노래를 부르면 그 소리로 온 천지가 처량해지는 광경. 12p
정신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디탄 공원의 어느 모퉁이에서 그는 인내심을 벗 삼아 죽음이라는 사실과 존재의 이유를 골몰한다. 결국 그는 깨닫게 된다. '죽음은 급하게 바란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오게 되는 기념일'이라는 것을. 반정부 인사로 낙인 찍혀 매일 뛰는 것밖에 할 수 없던 공원 친구와 다짐한다. '일단은 죽지 말고, 조금 더 살아가보자고'. 맨 처음 아무 희망 없이 피난처에 도착했던 불후했던 영혼은 공원의 위로를 동력 삼아 조금씩 절망을 벗고 드디어 삶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의 글 속에는 매일 공원으로 향하는 아들이 행여나 나쁜 마음을 먹지는 않을까 맘 졸이는 어머니가 있다. 운명의 공격에 정신이 혼미해져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그는 자신의 괴로움에만 천착해 부모의 고통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귀신에 홀린 듯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아들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서야 당신의 절절했던 사랑을 깨닫는다. 아들이 아닌 자신이 하반신 불수이기를 진심으로 바랬던 어머니, 골목에 숨어 휠체어 위 아들의 뒷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던 어머니, 오랜 시간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두꺼운 안경을 쓰고 온 공원을 돌며 정신 없이 아들을 찾던 어머니. 철없는 아들의 이유 모를 반항심이었을까. 자신을 찾는 어머니를 알고 있으면서도 공원 풀 숲에 몸을 숨기고 일부러 인기척을 내지 않던 날도 있었다. 공원 곳곳에 휠체어 자국과 함께 남겨진 어머니의 발자취 위에 죄스러움과 그리움이 소복하게 쌓인다.
-나는 책을 내려놓고 생각했다. 이 넓은 공원에서 어머니는 아들을 찾으려고 이 숱한 길을 얼마나 초조하게 걸었을까? 그 오랜 시간이 흐르고서야 처음 깨달았다. 공원 곳곳에는 내 휠체어 바퀴 자국뿐 아니라, 휠체어가 지나간 자리마다 어머니의 발자취도 함께 남아 있음을. 21p
-작은 공원 속 조용한 숲에 앉아 눈을 감고 생각했다. 하느님은 왜 어머니를 이렇게 일찍 데려갔을까...... 오래 오래 그렇게 있다가 나는 답을 들었다.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해서 더는 볼 수가 없어 데려갔다고. 나는 위로 받은 것 같았다. 눈을 뜨고 바람이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가는 것을 보았다. <자귀 나무> 중
죽음이라는 기념일은 그에게 조금 이르게 찾아왔다. 스톄셩은 51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삶을 마감한다.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 것처럼, 그때 디탄에서 보낸 시간에 가끔 의문이 든다. 나는 디탄에 있었나? 아니면 디탄이 내 안에 있었나? 지금 나는 허공에 그어진 경계선을 본다. 그리움을 안고 그 선을 넘어 들어가면, 넘기만 하면 깨끗하고 순수한 기운이 훅하고 들어올 것 같다. 나는 이제 디탄에 없다. 디탄이 내 안에 있다. 249p
나는 공원 바닥에 아직 남겨져 있을지 모르는 휠체어 바퀴 자국을 찾으며 디탄을 걷다 공원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빨간 벽돌이 아름다운 카페 <我与地坛_THE CORNER>로 갔다. 카페 이름은 작가의 책에서 따왔다. 들어가자마자 책꽂이에서 스톄셩의 수필집을 발견할 수 있다.
그곳에서 조금 더 걸으면 크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서점 <용허슈팅(雍和书庭)>이 있다. 창가에 앉아 디탄 공원의 붉은 담장을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다. 베이징에서 수많은 서점에 다녔지만 이름에 뜰, 마당을 의미하는 '庭'이라는 글자를 사용한 곳은 많지 않았다. 정원을 닮은 이 서점은 작가의 사인이 담긴 '서명본'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서점이 구비해 둔 수백 종의 서명본은 독자로서 매력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서점은 독서 구역과 활동 구역으로 나뉘어 지는데 독서회와 작가와의 만남 등 크고 작은 행사를 많이 진행한다. 정문 앞 작은 칠판에 적혀 있는 용허슈팅만의 추천 도서 목록은 사진으로 기록해 두었다.
나만의 도시 공간 리스트에서 제일 중요한 곳은 절망이 나를 덮칠 때 숨을 수 있는 공간이다. 스테셩을 품어주던 디탄 공원처럼. 그 시간이 온다면 나는 그곳에 몸을 의탁한 채 그의 유쾌한 결론을 생각할 것이다. 어차피 반드시 오게 되는 기념일에 대한 집착은 미뤄두고 일단은 죽지 말고 조금 더 살아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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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