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표는 나 자신이 되는 것
<마즈런슈뎬(码字人书店)>의 위챗 계정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서점은 사람과 책, 사람과 사람, 사람과 이야기의 기묘한 만남이다.(书店是人和书、人和人、人和故事的奇妙相遇)
중국어를 배우다 보니 중국인들이 생각보다 '기묘'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중국 발음으로 '치미아오(奇妙)'. 여러 번 내뱉다 보면 발음에서도 뭔가 기묘함이 느껴진다. 이 작은 독립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수완(苏皖)은 서점을 '사람과 책, 사람과 이야기의 기묘한 만남'이라고 정의했다. 실로 맞는 말이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들릴 때마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라는 앙드레 지드의 문장을 떠올린다. 내가 매번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 한 개의 문장은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고 믿는다. 세상에 그것만큼 기묘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尚8文化’ 단지 안에 위치하고 있는 이 서점에 가보기로 했다.
1997년에 선보인 ‘尚8文化’은 베이징 시에서 문화 예술 산업 발전을 위해 만든 공간으로 현재 디자인, 미디어, 예술, 애니메이션, 책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마즈런슈뎬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었던 건 바다의 색을 닮은 새파란 책장과 웨딩드레스. 젊고 활기찬 신혼부부가 이 서점의 시그니처인 파란 책장을 배경으로 웨딩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서점에서의 웨딩 촬영이라, 멋진 아이디어다.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도 서점에서 촬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공간을 찬찬히 둘러본다.
카메라 셔터 소리 말고는 내 발소리에 내가 놀랄 정도로 조용한 공간이었다. 시끌벅적한 대형 서점에 어느새 길들여진 내 몸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가 이내 풀어진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롯이 책만을 위한 공간, 친구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눈치 보이는 그런 공간에 익숙해진다. 귀에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피아노 연주 소리, 모두가 각자의 책에 파묻혀 다른 세상을 거닐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서점, 바로 마즈런슈뎬이다.
이 매력적이고 기묘한 공간을 알고 싶다면 공간을 만든 수완이라는 사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이 서점을 알게 된 건 우연이지만, 그녀가 이 서점을 차린 건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서점에 가기 전에 수완이 이 공간을 만들면서 쓴 글을 몇 번이고 읽었다. 글의 문장이나 질감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잡지사 편집자, 홍보와 커피회사까지 두루 거쳤던 그녀는 비로소 세 번째 ‘本命年(출생한 해의 띠)’을 맞이해 자신의 글을 쓰고 싶어 진다. 그리고 2018년 가을,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마즈런슈뎬을 오픈한다. 연극, 영화, 시 등 예술 서적을 주로 다루는 서점이다.
서점을 준비하며 그녀는 무수한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서점을 차리는 것이 '인생의 꿈'이 아니라, '인생의 질문'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그녀. 서점 소개 글 속의 그녀의 문장을 잠시 빌려보자.
开书店不是我人生的理想,它是我人生的疑问。
서점을 여는 것은 내 인생의 꿈이 아니라 물음이었다.
我究竟是个怎样的人?我喜欢的到底是什么?
너는 대체 어떤 사람이야? 네가 좋아하는 것은 대체 뭐야?
我的耐心专心恒心有多少?我可以努力到哪里?
너의 인내심은 어느 정도야? 넌 어느 정도까지 노력할 수 있어?
当所有难以割舍的选项都摆在面前,到底什么才是我最重要的?
네 앞에 결코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선택들이 있다면 네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뭐야?
我到底在追求什么?!
네가 추구하는 것은 대체 뭐야?
这些问题在开书店的过程中一一摊开,它们那样直白,让我不能躲闪。
서점을 여는 과정 중에 이런 질문들은 속속들이 나타났다. 질문들은 그렇게 담백했고, 나는 외면할 수 없었다.
이 질문을 읽는 것만으로 서점을 열기까지 순탄하지 않았을 과정이 그려졌다. 하지만 누구나 인생에 한번쯤은 스스로에게 꼭 던져야 할 질문의 대답을 찾아가며 그녀는 이 공간을 준비했다. 정답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매일이 대답이 될 뿐. 좋은 책 역시 정답은 아니다. 수완도 이야기한다. ‘좋은 책은 정답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有一种好书可能不是答案,而是一把钥匙, 可以帮你打开新世界的大门)’라고. 마음이 조급해질 땐 가끔 정답을 찾으려고 책을 읽었고, 내가 원하는 정답이 빨리 찾아지지 않으면 성급하게 실망을 하기도 했던 예전의 내 모습을 반성한다. 책은 결코 정답을 던져주지 않았다. 마음껏 헤매며 생각할 수 있도록 할 뿐이다.
그렇게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그녀의 목표는 고객들이 책을 사서 바로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서점 어딘가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이다. 심지어 그녀는 서점의 모든 책이 당신에게 구입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런 책들은 그냥 서점에서 읽으면 된다. 그렇게 읽고 서점에 두고 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당신의 책이다. 책을 사더라도 펼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책이 아니라 그저 무쓸모한 종이 뭉치에 불과한 것처럼.
베이징의 독립 서점들은 많은 활동들을 기획한다. 주로 독서회나 저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인데 마즈런슈뎬은 예술에 특화된 서점인 만큼 오픈 후 독립 영상 다큐멘터리 상영이나 음악회 등 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나는 이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 오픈한 이 서점에서 최근에 알게 된 중국 여성 작가를 떠올렸다. 싼마오(三毛). 본명은 천핑.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싼마오는 <사하라 이야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에세이를 썼다. 그녀는 1943년 중국 쓰촨 성에서 태어나 타이완으로 이주한 뒤 유복하게 자랐지만, 천편일률적인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힘겨운 청소년 시절을 보내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받았다. 스물네 살부터는 세계 각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초적인 스페인 남자 호세와 결혼해 서사하라 사막에서 산다. 사막에서 겪은 기상천외하고 시트콤 같은 일상을 적은 글이 <사하라 이야기>다. 읽다 보면 실소가 터진다. 나도 베이징이라는 낯선 땅에서 씩씩하게 살았지만 그녀는 '어나더레벨'이다. 희한하기 짝이 없는 이웃들, 죽을 뻔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빛나는 유머와 유쾌한 삶의 태도를 잃지 않는다. 감탄과 존경심이 절로 생긴다.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 주로 서양 음식을 요리하던 싼마오는 타이완 친정에서 당면, 김, 동고버섯, 돼지고기 육포 등 귀한 식료품을 보내주자 남편 호세를 위한 작은 중국 반점을 열었다. 첫 메뉴는 당면 닭고기탕. 당면 닭고기탕을 입에 퍼 넣더니 깜짝 놀란 호세가 묻는다.
-이건 뭐야? 중국 스파게티인가?
젓가락으로 당면 한 가닥을 집어 올리며 싼마오는 대답한다.
-이건 봄에 내린 첫 번째 비야. 높은 산에 내린 비가 한 줄기 한 줄기 얼어붙으면 고산족이 잘 묶어서 등에 지고 내려와 한 묶음씩 팔아 곡주와 바꿔 마셔. 무지무지 귀한 거야!
결혼하고 나서도 멋대로 살겠다고 작정해서 그런가, 허튼소리가 술술 흘러나왔다고 했다. 그 뒤로도 그들은 종종 봄비를 먹었고 그녀의 허튼소리는 끝날 줄을 몰랐다.
싼마오는 사하라 사막이 전쟁에 휩싸이자 카나리아 섬으로 이주한다. 그때의 경험을 녹인 또 다른 작품이 <허수아비 일기>다. 누구보다 당당하게 시련과 편견에 맞서고, 이웃을 돕고, 즐겁게 살아가던 싼마오의 삶은 생각보다 짧았다. 그녀는 남편 호세를 잠수 사고로 떠나 보내고 타이완으로 돌아와 생활하던 중 수술을 받으려고 입원한 병원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다. 고작 48번의 계절을 보낸 뒤였다. 그녀의 마지막을 들었을 때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그녀의 발랄한 문장들과 삶에 대한 긍정이 눈에 밟혔다. 씩씩하고 거침없는 싼마오의 마지막이 왜 해피엔딩이 아니었는지... 아내가 아니라 늘 '자신'이 되기를 택했던, 무수한 여성들의 멘토가 될 수 있었던 그녀의 시간들이 아쉽고 아쉬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글은 여전히 남았다. 갑갑하거나 막막해질 때 그녀의 글은 소화제가 된다. '까짓 것, 그냥 내 맘대로 살아도 되잖아'하고 용기와 배짱을 툭 던져준다.
서점을 나서며 마즈런슈뎬의 수완도 분명 싼마오의 글을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이 되어 즐겁게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당당함이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화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으로 귀결된다. '인생의 목적은 사랑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나는 오랜 시간을 들여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싶은 세계에서 자기 자신이 되는 세계로 걸어간다. 싼마오처럼, 혹은 수완처럼.
수완이 적은 서점 소개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것이다. '나는 실수할 수 있고, 이 서점도 완벽하지 않지만, 꿈의 길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꿈이 시작된 곳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我会犯错,码字人书店也不完美,可在理想之路上,我只有竭尽所能努力奔跑,并且永远记得梦开始的地方). 꿈이 시작된 곳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 나는 그것이 누군가 꿈에 가질 수 있는 가장 멋진 낭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삶이 감각의 수면 위로만 지나가는 게 아니라, 내면적인 깊이로 이해되며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결국 자기만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라고 정지우 작가가 말했던가. 자신만의 언어로 계속 이 공간의 존재 의미와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그녀의 세계는 깊고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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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