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체로 홍콩을 은유하는 <13.67>
베이징에서 처음 시내 드라이브를 하는데 서울보다 오히려 개성 있는 있는 건물이 많았다. 베이징이라는 도시는 삭막하고, 규격화되어 있을 거라는 또 하나의 막연한 편견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유난히 눈에 띄는 건물이 있었으니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当代MOMA>. 찾아보니 컬럼비아대학교 교수 스티븐 홀이 설계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주거 공간과 사무실, 상업 공간, 호텔, 카페가 있었다. <큐브릭(库布里克)>이라는 매력적인 서점도 함께였다.
영화 마니아라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서점 이름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이름에서 따왔다. 영화를 잘 모르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큐브릭 감독에 대해 한 말은 기억한다. ‘그는 영화 연출 역사상 최고의 거장이며 우리는 모두 이 분의 영화를 모방하느라 허덕였다.’
큐브릭 서점의 본점은 홍콩이다. 2010년 10월에 오픈한 이 서점은 영화, 사진, 예술 관련 책이 많다. 서점 바로 앞에 ‘바이라오후이(百老汇)’라는 영화관이 있는데 이 역시 홍콩에서 왔다. 홍콩에서도 서점과 영화관이 나란히 붙어 있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평일의 영화관을 혼자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영화광처럼 보이는 젊은 청년 한 명이 후다닥 들어와 표를 찾아서 영화관 속으로 사라졌다. 대학교 때 공강 시간을 이용해 신촌 영화관 아트레온에서 ‘혼영’하던 게 불현듯 생각났다. 처음 혼자 영화를 봤을 때 어른이 된 것 같아 괜히 으쓱하던 기분. 영화를 보는 건지, 혼자 영화를 보는 나를 감상하는 건지도 모르게 들떠 있었던 스무 살 초반의 내가 겹쳐졌다.
연두색 책장과 다양한 영화 포스터가 인상적인 큐브릭 서점을 어슬렁거리다 보니 홍콩 대표 작가 찬호께이 소설이 눈에 띄었다. 찬호께이. 내가 처음 읽은 중화권 추리 소설 작가이자 '홍콩인'이다. 보들레르의 파리, 카프카의 프라하, 페소아의 리스본처럼 찬호께이에게 홍콩이라는 도시는 무척 특별하다. 홍콩에서 온 큐브릭 서점에 앉아 홍콩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을 펼쳐 홍콩에 대해 생각한다.
내게는 3개의 홍콩이 있다. 우선 스무 살, 친구와 단둘이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하며 거닐던 홍콩. 그때 내게 홍콩은 쇼핑에 최적화된 곳이었다. 야시장 골목에서 마음에 드는 앤티크 시계를 사고 어제 망설이다 내려놓은 가방을 찾기 위해 골목을 헤매고 시티 투어 2층에서 홍콩의 밤공기를 마셨다. 그때 난 그곳을 도시와 나라, 어느 쪽으로 인식했던가? 기억해 내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별생각이 없던 시절. 그저 장국영을 떠올릴 때와 비슷하게 희뿌연 멋짐이 흘러내리던 그런 곳.
두 번째 홍콩은 베이징에서 만났다. 베이징 생활이 길어지며 홍콩의 역사를 자세하게 알게 되고, 중국인들은 홍콩을 하나의 독립된 공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아직도 생생하다. 역사와 철학, 지리 등 물어보면 막힘 없이 줄줄 읊어 내게 제일 똑똑한 중국인이라는 인상을 주던 구라오스(老师/선생님)가 2019년 홍콩 시위에 관해 이야기할 때 짓던 냉소적인 표정. 이성적이지 않은 시위를 그런 식으로 밖에 진압하지 못하는 홍콩 경찰이 얼마나 무능하냐고 되묻던 말투. 홍콩은 당연히 중국인데 더 강하게 컨트롤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 그의 사전에 '자유'라는 단어, 덩샤오핑이 홍콩인에게 약속한 '일국 양제'는 애초에 없었던 것일까. 당혹스러운 순간은 몇 번 더 있었다. 출생률이 떨어져서 큰일이라며 중국인들은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고 말할 때의 결연함, 중국이 가지고 있던 각종 문제들을 '사람이 너무 많아서(人太多)'라는 원인으로 간단히 귀결할 때의 당혹감. 그는 사람 많은 중국에는 공산주의가 최선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고,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도 종종 내비쳤다. 그의 지식을 존경했지만 그의 사상에 나는 자주 놀랬다.
그리고 '찬호께이'의 홍콩이 있다. 추리 소설에 관심도 식견도 없으니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촘촘하게 짜인 이야기 구성과 여러 겹 덧대어진 반전은 '추알못'인 내가 봐도 걸작이었다. 두꺼운 책을 하루 만에 읽었으니 그의 글은 내게 중화권 추리 소설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려준 셈이다. 코딩을 짜는 것처럼 촘촘한 이야기 구성은 컴퓨터공학이라는 그의 전공과 연결됐다.
2015년 타이베이 국제 도서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그의 대표작 <13.67>은 홍콩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나는 6개의 사건을 관전둬와 루샤오밍이라는 천재 형사가 풀어가는 것이 큰 줄거리다. 책 제목인 <13.67>은 1967년부터 2013년까지 벌어진 여섯 건의 범죄 사건을 의미한다. 역순의 방식을 선택해 이제는 식물인간이 된 관전둬를 2013년에 일어나는 첫 에피소드에 등장시킨 후 1967년의 사건을 향해 나아간다. 홍콩의 특수한 역사와 지역의 매력은 곳곳에 뿌려져 있다. 반전의 반전은 기발하고 홍콩의 모습은 슬프고 아리다. 특히 주인공 관전둬라는 인물의 생은 그 자체로 홍콩을 은유하는 듯 보인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홍콩의 역사를 공부하기로 마음 먹었다. 무지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며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때 내게 다가온 책이 전명윤 작가의 <리멤버 홍콩>이다. 홍콩 가이드 북을 쓴 작가였기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지만, 실상은 처절한 르포였다. 작가는 홍콩에서 목숨을 걸고 시위에 참여하는 지인들과 스냅챗으로 비밀스럽게 정보를 교환하고 자욱한 최루탄 연기를 맡으며 불안한 홍콩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그런 작가에게 ‘영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홍콩인’들은 조금씩 속내를 털어놓는다.
-우리에게 중국은 목에 걸린 생선 가시 같은 거야.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결코 외면할 수 없고 뽑을 수도 없어. 영원히 목에 무언가가 걸린 이물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때도 그랬어. 내가 어른이 되면 홍콩은 중국이 되어 있을 거라는데, 그럼 변하는 거잖아? 지금과는 달라질 미래가 늘 불안했어. 83p
이미 내게 주어졌던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나라의 리더를 국민이 뽑는 일에 목숨을 걸고 시위를 하는 십 대들이 21세기 세련된 도시 홍콩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거리에서 만난 소년이 답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는 우리 세대의 운명이에요.” 소년의 입에서 나온 ‘운명’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왔다. 198p
두 번째로 홍콩에 들렀을 때 거리마다 금은방이 즐비해서 의아했었는데 이 책이 이유를 알려줬다. 중국인들이 와서 금을 싹쓸이 해가기 때문이다. 거리의 수많은 금은방은 홍콩의 경제가 중국에 잠식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2020년 7월 1일, 국가보안법이 제정되며 우리가 알던 홍콩은 사라졌다. 책을 덮으며 내게는 굉장히 슬픈 소설 같았던 이 책의 소개를 다시 읽었다. '지난 14년간 홍콩 가이드북을 쓰며 밥벌이를 해온 작가가 남기는 마지막 홍콩 이야기’. 결연하게 쓰인 마지막이라는 단어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리멤버 홍콩이라는 다섯 글자가 이렇게 슬픈 제목이었다니.
그리고 열네 살 때부터 학민사조를 설립하고 2014년 '우산 운동'의 중심으로 활동해 중국인들에게 매국노라는 엄청난 비판을 받는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라는 찬사를 이끌어낸 '홍콩의 다윗', 조슈아 웡이 있다. '홍콩이 특별 행정구인 만큼 자유 직선제를 통해 행정장관을 뽑아야 한다'라는 단순한 요구 사항을 위해 그는 아주 오랜 시간을 싸워왔다. 즐거워야 할 청소년 시절은 체포와 구금, 구속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그는 자신의 민주화 운동을 기록한 책 '나는 좁은 길이 아니다'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싸운다고 이길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싸우지 않으면 반드시 진다. 197p
그의 믿음처럼 정치란 '타협의 예술'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예술'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앞으로의 홍콩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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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