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슬픔이 지나가는 샤오종슈팡에서, 시촨과 이윤설

시를 사랑하는 서점, 小众书坊

by 심루이

내 메일 아이디는 오랫동안 ‘Impoem104’였다. 중학생 시절 시를 좋아해서, 스스로 시처럼 살고 싶어서 지은 아이디였다. 홍보실 신입 사원 시절 복사 부탁을 받은 나는 지지직거리는 전화를 부여잡고 내 이메일 주소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몇 번의 문답이 실패하고 부차적인 설명이 필요했다.


-저기… 시 아시죠? POEM. IMPOEM. 제가 시라는 뜻이에요.


5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유머 감각이 남다르던 기자는 "제가 이런 고귀한 분께 복사 부탁을 하다니 죄송합니다”하며 껄껄 웃었다. 나도 시집을 끼고 살던 중학교 시절을 들킨 듯 민망해서 같이 웃었다. 그 와중에 ‘고귀’라는 두 글자가 귀에 맴돌았다. 그러니까 시는 그런 힘이 있었다. 인생을 조금 더 고귀하게 만들어 주는 힘.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같은 하이틴 시부터 황지우 시인의 시까지, 예전의 나에게 시는 든든한 ‘빽’ 같은 거였다. 한 문장을 품고 가만히 곱씹고 있으면 홍삼을 먹은 것처럼 슈퍼 파워가 생겼다.


정신없이 바빠지면서 더 이상 시를 읽지 않았다. 그때 내게 시는 읽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아름답고 추상적인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 시간에 업무 관련 책이나 자기 계발서를 읽자고 생각하는 스스로가 싫어지던 날에는 괜스레 교보 서점 시 코너에서 얼쩡거리다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몇 장 뒤적인 후 책꽂이에 꽂아 두기를 반복했다.


그런 10대와 그런 20대, 그런 30대를 통과한 나에게 황인찬 시인은 시를 읽어준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 '황인찬의 읽고 쓰는 삶'을 통해서다. 설거지를 하면서 그가 읽어주는 시를 듣는다. 황 시인의 목소리는 ‘성시경의 잘 자요’ 수준으로 달콤하고 외모는 유희열과 닮아서 시가 더욱 아름답게 들리는 것 같다. 그가 읽어주는 박소란 시인의 '상추' 마지막 부분 '냉장고에서 묵은 쌈장을 끄집어낸다/상추가 포장된 비닐을 사정없이 찢는다/찢은 비닐을 쓰레기통에 내동댕이치는 나는/행복해질 것인가/상추는 나를 사랑할 것인가'를 들으며 그릇의 물기를 탈탈 털어버린다.


베이징 대표 관광지 난뤄구샹에서 뻗어나가는 후통 중 하나인 '후원은사후통'. 원래 원나라 대사찰 ‘원은사 뒤쪽에 있는 골목’이라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었는데 지금 사찰은 사라지고 현대 중국 최고의 장편 소설 작가로 평가받는 마오둔(茅盾)의 옛집이 있다. 그 옆에 ‘Poetic Books’를 표방하는 서점 <샤오중슈팡(小众书坊)>이 있다.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시집을 만날 수 있는 탁 트인 공간이자 매일 오전 7시 30분에 위챗 공중 계정을 통해 시 한 편과 시인을 소개해 주는 아름다운 서점이다.


이 서점의 공중 계정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마음속에 시가 없다면, 땅 위에 꽃이 없는 것과 같다 (心上没有诗, 就像地上没有花朵).' 시를 읽는 사람보다 읽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은 요즘, 시를 중심에 두는 위험한 도박 같은 서점을 만든 사람은 바로 이분, 펑밍방(彭明榜)이다. 무려 24년 가까이 중국 청년잡지사 등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일했다. 은퇴 후에도 사랑하는 시 바로 옆에서 살고 싶어 이곳을 오픈했다고 한다. 다양한 문학 관련 행사를 열고 있으며 중국 시인들의 사랑방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 많은 독자가 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독자가 왔으면 하는 바람에 매일 스무 명만 찾아줘도 좋겠다며 천진난만하게 웃으실 때 돈이 엄청 많으신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어쨌거나 돈이 많다고 모두 이런 고귀한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인정할 수 밖에.


펑밍방이 서점을 오픈 한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이런 서점을 차릴 생각을 했어요?” 혹은 “어떻게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있죠?”. 강단 있게 시작한 사업인데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조금은 난감한 일이겠지만 펑선생은 그런 질문마저도 어려운 일을 잘 해내가고 있다는 칭찬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역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깊이는 따라갈 수가 없다.


천장이 매우 높고 탁 트인 실내 공간을 가진 샤오중슈팡은 한없이 너그럽게 내 슬픔을 품어줄 것만 같았다. 이곳에서 처음 목도한 풍경은 안경을 추켜올리고 곧 시집에 빠질 듯한 눈빛으로 열중해 시를 읽고 있는 한 어르신이었다. 마치 한 편의 시를 닮은 장면이 실로 생경하면서도 따뜻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런 순간들이 모여 한 줄의 시가 탄생하는 것은 아닐까. AI로 가수 故 김광석의 목소리를 재현하고, AI 의사가 나오는 21세기에 여전히 시를 읽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서점을 서성이며 그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무리 무모한 나라도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일이 중국 시를 읽는 일이었다. 시 구절 구절 안에 있는 우주를 나의 짧은 중국어가 해독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니 욕심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시를 닮은 이 공간에서 중국 시인 시촨(西川)을 만났다. 시촨은 베이징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하이쯔, 뤄이허와 함께 '베이징의 삼검객'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그가 쓴 '深浅'라는 시를 살펴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不必请求那些粉红色的耳朵, 它们只接纳有道理的声音.

...

星月、山冈,允许一头大熊啼哭, 但在城里,你一悲伤就像货币一样贬值.

...

或穿过漂着垃圾味的街道, 敲开一户户人家收回你过早散发的诗篇

大人物的心理疾病是否值得模仿, 再完美的冷嘲热讽也意味着思想乏力.

...

从此孤身一人把破旧的自行车骑得飞快

并且不必在废墟间再数一遍脚趾

可能的话,就从大海上跳过去

不可能的话,就甘愿淹死在大海里.


몇 번을 읽어도 정확한 의미는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슬픔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황인찬 시인의 말처럼 '시를 읽는 일은 다른 존재의 슬픔을 알아차리는 일'이기에, 어쩌면 대부분의 시는 슬픔에 관한 것일지도. 우리는 남의 슬픔을 읽으며 나의 슬픔을 덜어내는 것일지도.


한국으로 돌아와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의 저자 조승원 작가의 강연에 참석했다. 스스로를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을 추앙하는 '하루키스트'라고 칭하며 그의 글에 언급된 술 이야기를 잔뜩 하던 그는 갑자기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를 읽어야 한다고 했다. 술과 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조합처럼 여겨지긴 하지만 다소 낯선 전개에 당황하고 있을 무렵 그는 또 갑자기 좋아하는 시인의 유고 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가 읽은 부분은 2020년에 작고한 이윤설 시인의 유고 시집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 책 날개에 적혀 있던 문장이었다.


내가 온 것이 안 온 것보다 낫다.

인간으로 살아봤고 꿈을 가져봤고 짝도 만나봤고

죽어서 먼지가 될지 귀신이 될지 우주의 은하수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온 것이 안 온 것보다 낫다.

허나 다시 오고 싶지는 않다.


‘온 것이 안 온 것보다 낫지만 다시 오고 싶지는 않’은 시인의 마지막 마음이 내게 닿아 문득 울고 싶어졌다. 그저 우리는 우연히 이곳에 와서 우연히 살아남았고, 또 우연히 떠나는 것일 뿐. 나는 이 시집의 수록시 '오버'의 문구를 가슴 속에 품고 지냈다.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기로 했다 오버, 행복하자면 못할 것도 없다 오버'. 시인의 문장처럼 '행복하자면 못할 것도 없는데, 마음 속의 지옥을 꺼내서 햇볕을 쪼여도 되는데, 지금 자리에서 멸망해도 되는데' 뭐가 그리 어렵고 두려운 건지.


가끔 슬픔을 온전히 누리는 삶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른답게 적당히 말고 충분하게 슬퍼하며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 내 인생 한 켠에 슬픔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에 대해서. 짧은 중국어 탓에 오래 마음에 닿지 못하고 맴돌기만 했던 시촨의 문장들을 유려하게 번역해 보면 이렇다.


분홍색 귀들에게 부탁할 필요 없다

그들은 경우 있는 소리만 받아들이므로.

...

별과 달, 산등성이가, 큰 곰 한 마리의 울음을 허락하지만

그러나 도시에서, 너의 슬픔은 마치 화폐만큼이나 가치가 없다.

...

혹은 쓰레기 냄새 풍기는 거리를 지나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네가 너무 일찍 뿌렸던 시들을 수거하라.

거물들의 심리적 질병은 모방할 만한지

아무리 완벽한 조롱이나 풍자 역시 사상의 결핍을 의미한다.

...

이제부터 홀로 낡은 자전거를 나는 듯 빨리 달린다

또한 폐허 속에서 다시 한 번 발가락을 셀 필요 없다

가능하다면, 바다로부터 뛰어 건너라

뛰어 건너지 못하면, 기꺼이 바다에 빠져 죽으라.


내가 ‘너무 일찍 뿌린 시’들은 지금 무엇이 되었을까? 시를 읽는다. 당신의 슬픔을 읽는다. 우리는 더 유연하고 건강한 존재가 된다.

2021-06-17-12-18-30.jpg
2021-06-17-12-22-22.jpg
2021-06-17-12-17-13.jpg
2021-06-17-12-18-22.jpg
2021-06-17-12-19-32.jpg
2021-06-17-12-23-50.jpg
208212251_2_20201124122116978.jpg
창업자 彭明榜
2021-06-17-12-34-13.jpg
2021-06-17-12-37-24.jpg


---

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keyword
이전 06화쇼핑몰과 중국문학의 등대, 시시푸슈뎬과 모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