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롄타오펀슈뎬에서 읽는 위화의 인생

보통의 서점, 보통의 인생

by 심루이

일본의 유서 깊은 책거리 진보초에 위치한 백 년 역사의 인문 서점 ‘이와나미 북센터'에 ‘시바타 신’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그는 85세에도 매일같이 출근했던 진보초의 명물이었다. 시바타 신의 이야기를 3년 동안 밀착 취재한 이시바시 다케후미의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에는 서점을 향한 그의 철학이 한 문장으로 담겨 있다.


-책방은 ‘보통’이면 된다.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해 왔다.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가 내뱉는 ‘보통’이라는 단어는 나를 움찔하게 만든다. 특별한 삶을 영위할 것이라 믿던 유년 시절, 내 사전에 보통과 평범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보통의 존재가 되어 보통의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언제 깨달았던가? 바로 그 순간, 어른으로 가는 길의 문을 열었을 것이다. 보통의 책, 보통의 운명, 보통의 소설, 보통의 인생, 그리고 보통의 서점. 결국 일상과 삶을 지탱하는 것은 모든 보통의 것들일지도 모른다.


전시된 그림을 보고 센스 있는 문구류도 구경하고, 커피와 함께 브런치도 먹고, 가끔 칵테일까지 마시는, 서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복합 문화 체험 공간에 가까운 것이 바로 최근의 서점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공간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가끔 무식하게 책만 쌓여 있던 보통의 서점이 그리울 때가 있다. 여기를 보아도 책이고, 저기를 보아도 책인, 조금은 삭막하지만 본연의 역할을 조금도 잊지 않은 그런 공간. 좀 재미가 없고 심심한가 싶지만 아니, 제일 재미있는 게 책인데 다른 게 뭐가 필요한가 싶은 종로 2가에 있던 <종로 서적>이나 신촌역에 있던 <홍익 문고> 같은 서점 말이다. 대학생 때 신촌역 앞 홍익 문고 안에서 종종 친구를 기다리곤 했었는데 비좁은 공간에 서서 책을 보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몸을 최대한 책장 쪽으로 붙여서 얇게 만들곤 했다. 원하는 책을 찾으려면 여러 층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해서 다리도 아팠다. 하지만 그런 서점만의 투박하고 무뚝뚝한 매력 또한 대체하기 어렵다.


그런 공간이 그리울 땐 중국 미술관 근처 <싼롄타오펀슈뎬(三联韬奋书店)> 본점으로 간다. 마치 예전 홍익 문고처럼 이른 아침부터 돋보기 안경을 머리에 올리고 아침 햇살을 쿠션 삼아 편한 자세로 책을 보는 어르신들이 있고, 다른 서점과는 조금 다른 기준으로 켜켜이 쌓인 책들이 있다. 4만여 종의 책을 구비하고 있는 이곳에는 카페가 없어서 커피 원두의 향은 없다.


싼롄타오펀의 시작은 싼롄서점이다. 싼롄서점은 1948년 설립 이후 각종 인문 서적과 잡지를 발행해 중국 지성인들의 지식 원천이 된 출판사다. 역사가 조금 복잡한데 1932년 쩌우타오펀이 설립한 ‘생활 서점’(인민들의 항일 정신 고취에 힘썼다고 한다), 1936년 리궁푸가 설립한 '독서 출판사', 1935년 첸쥔루이가 설립한 ‘신지서점’, 이 세 출판사가 합병함으로써 싼롄서점이 되었다.


이후 쩌우타오펀의 이름을 따 '싼롄타오펀슈뎬'을 만들어졌고 2014년 4월 중국 미술관 맞은편에 본점 오픈을 시작으로, 2015년에는 칭화대, 2018년에는 싼리툰에 오픈했다. 이 서점의 특별한 점은 24시간 열려 있다는 것인데 베이징런들에게 이 공간은 ‘밤새 꺼지지 않는 등불’이자 모두에게 열린 '심야 책방'으로 자리매김했다. (코로나 이후 영업시간은 조정되었다)


싼롄타오펀을 처음 어슬렁거렸을 때 뭔가 어색한 기분을 느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어색함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음악이 없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첼로 선율이나 피아노 연주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서점에 익숙해져서인지 배경 음악 없이 책 넘기는 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공간은 어색하고, 신선했다. 이처럼 싼롄타오펀은 오로지 책을 중심에 둔다. 서점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이 서점에서 그릇, 그림, 꽃 심지어 드론마저 파는 21세기에 너무나 특별해져 버린 것이다. 싼롄타오펀에도 펜과 노트 등 문구류가 있긴 하지만 5% 정도로 비중이 크지 않다. 베스트셀러보다는 인문, 사회 분야의 도서가 많은 싼롄타오펀의 철학은 서점의 80퍼센트 이상을 책으로 채우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책을 파는 게 아니라 이념을 파는 서점이 되는 것이다. '풍요롭고 소박하고 온기가 있고, 순수하며 정감 있는 서점'이 되는 것이다.


한국에 가장 잘 알려진 중국 작가 중 한 명은 위화(余華)다. 산롄타오펀에 앉아 있으면 위화 소설을 들고 있는 어르신들을 종종 만난다. 장이모 감독의 유명한 영화 '인생'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라고만 막연히 알고 있다가 베이징에서 그의 '인생'을 제대로 읽었다.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난 그의 인생도 한 편의 소설 같다. 대학에 떨어진 위화는 위생 학교에서 일 년간 공부한 뒤 위생원에 배치되어 치과의사가 된다. 사람들이 병원을 치과가 아닌 ‘이빨 가게’라고 불렀을 만큼 당시 치과의사의 지위는 높지 않았다. 어느 날 위생원에서 창 밖을 바라보던 위화는 앞으로 평생 동안 세상에서 제일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의 입 속을 들여다보며 살아야 한다는 처참한 좌절감에 사로잡힌다. 운명을 바꾸기로 결심한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야구장에서 날아오는 공을 바라보며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순간만큼이나 인상적이다.


1983년의 어느 날, 스물 세 살의 위화에게 베이징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북경 문학’에서 온 전화다. 그는 ‘당신의 소설 세 편을 발표할 것’이라던 저우옌루 여사의 당시 목소리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한다. 그렇게 중국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한 명이 탄생했다.


인생, 허삼관매혈기, 형제 등 위화의 작품들은 중국 근대 문학에 큰 획을 그었다. 처음 접한 작품은 '살아간다는 것(活着)'을 원제로 하고 있는 '인생'이었는데 민족해방운동과 내전, 문화대혁명 등 역사의 시간 안에서 기구하기 짝이 없는 운명을 가진 푸구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착한 딸 펑샤와 권력 논리에 의해 현장의 부인을 살리려고 수혈하다 온 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아들 유칭, 푸구이의 전 재산을 빼앗지만 이후 푸구이와 뒤바뀐 운명으로 죽음을 당하는 룽얼, 권력의 중심에 섰지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옛 전우 춘성 등 주변인들의 삶도 녹록지 않다. 그들은 얽히고 설킨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죽음으로 어떤 삶을 용서하기도 하고, 어떤 삶으로 어떤 죽음을 이겨내면서 살아간다. 인물들의 기구한 운명에 무기력하고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동시에 그 운명을 꿰뚫어보고 헤쳐나가며 종내 받아들이는 푸구이에게 존경심마저 느꼈다.


위화는 이 작품 서문에서 '사람과 운명의 우정'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서로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서로 증오하는 가장 감동적인 형태의 우정이다. '사람과 그의 운명은 서로 상대방을 포기할 방법이 없고, 서로 원망할 이유도 없'다. 어쨌거나 어떤 빛깔의 삶이든 결국 이 문장에 이르게 된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명쾌한 진리에.


병원 영안실의 시원한 콘크리트 바닥에서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는 어린 날의 위화(그의 부모님이 의사여서 어릴 때 장례식장에서 살았다고 한다)와 시골 사진관에서 톈안먼 광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청소년 위화, 타인의 도시 베이징에서 유랑하며 소설가로 살아가는 청년의 위화. 위화라는 사람은 그의 작품만큼 매력이 넘친다.


그래서 그의 소설만큼 에세이가 좋고 작품 본문만큼 서문이 좋다. 도서관에서 그의 소설책을 쌓아두고 인간 위화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서문만 쏙쏙 빼서 골라 읽기도 했다. '시대의 저항자'라 불리는 작가 쉬즈위안(그는 단샹콩젠이라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도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심지어 위화 소설의 이탈리아어판, 일본어판, 한국판 등 외국 언어의 서문까지 모조리 탐독했다. 그러고는 가끔 공원 벤치에 앉아 이런 문장을 쓰는 사람에 대해 상상했다고 한다.


싼롄타오펀 같은 보통의 서점들은 보통의 날들을 잘 보내고 있을까? 문득 몇년 째 가보지 못한 홍익문고의 안위가 궁금해져서 검색창을 열었다. 그새 없어졌으면 어쩌지 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아직 네이버 지도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내심 안도한다. 오로지 책으로만 승부했던 무수한 서점이 문을 닫았다. 그것이 오늘날, 서점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신한 이유일 것이다. 늘 새로운 자극을 선사하는 페이지원이나 일본의 츠타야 같은 감각적인 서점을 사랑한다. 하지만 싼롄타오펀이나 홍익 문고 같은 보통의 서점들도 영원했으면 좋겠다.


보통의 서점, 보통의 인생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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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联韬奋书店_본점/싼롄서점의 캐치프레이즈라고나 할까, 생활, 독서, 신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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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 1층,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三联韬奋书店_싼리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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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구조의 산리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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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후통(胡同)를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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