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슈쥐에서 왕천과 베이다오를 떠올리다

역사, 후통, 탑 그리고 서점

by 심루이

이것은 북위 39도 54분 27초와 동경 116도 28분 17초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이것은 내가 영원히 떨쳐버리지 못하는 정(情)이다. 이것은 서기 1045년에 옌두지청에서 건립되었고, 요대에는 제 2의 수도였다가 금대에 와서 제 1의 수도가 되었다. 원대에는 정식으로 이곳이 수도로 정해졌고, 명/청대의 수백 년간은 천년 고도로 자리매김하였다. 이것의 이름은 바로 베이징청(北京城)이다.


왕천, <펜으로 그린 베이징>


십여 년 전 출장으로 잠시 들린 적이 있지만 내게 베이징은 미지의 도시였다. 생활인이자 이방인의 신분으로 다시 그곳에 당도하기 전까지 아무런 호기심도, 매력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암흑의 도시. 한 도시를 열렬히 사랑한다는 것도 한없이 막연한 개념이었다. 오랜 시간 살아온 서울마저 내 일상의 배경일 뿐,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했다. 낯선 도시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표류하기로 작정해서일까. 그런 내게 도시는 아주 조금씩 자신의 속살을 내비쳤고, 나도 조금씩 그곳에 물들어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도 없이 도시를 걷고, 뚜렷한 목적지 없이 땅을 밟았다. 일생 동안 그곳을 사랑해 온 사람들의 시선을 빌려 그곳을 바라봤다.


한 도시를 아주 오래,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은 어떤 일일까?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베이징을 너무 사랑해서 골목이든 고도의 풍경이든 가리지 않고 그린 작가 왕천(王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손에 펜 하나를 들고 수년간 베이징 곳곳을 탐험해 <펜으로 그린 베이징>을 펴냈다. 책을 넘기다 보면 자신이 가진 재주를 이용해 사랑하는 도시를 기록한 그의 정성과 마음에 탄복하게 된다.


그가 걷고 스케치하고 사랑한 수많은 후통(베이징의 뒷골목) 중 하나가 좐타후통(砖塔胡同)이다. 원대에 형성된 이 후통은 골목의 동쪽 입구에 벽돌로 지은 탑이 있다고 해서 '좐타후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베이징에 있는 삼 천 여개의 후통 중 가장 오래되어 ‘후통의 뿌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원나라 때 세워져 7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좐타후통의 벽돌탑은 원나라 초기 승려인 ‘만송행수(万松行秀)’의 유골을 안치한 곳으로, 8각 7층의 구조로 지어졌다. 1927년에 원만송노인탑(元万松老人塔)이라는 글귀를 새겨 넣었고, 1986년에 재건한 후 시청취의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탑을 품은 곳에 아름다운 서점 <정양슈쥐(正阳书局)>가 있다. 좐타 후통에서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거처하던 공간을 지나 처음 이 서점을 만났을 때는 뭉클한 감동이 있었다. 후통과 탑, 역사, 서점... 사랑하는 것들이 한꺼번에 다가올 때의 벅참이라고나 할까.


압도적인 공간을 만나면 누가 이런 곳을 만들었는지 꼭 찾아 본다. 최소 환갑이 지난 연륜 있는 학자에게서 나올 법한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서점의 창립자는 나와 비슷한 연배의 빠링허우(八零后_80년대 이후 출생자)다. 2009년에 문을 연 정양슈쥐는 원래 옛 상점거리인 따자란 거리에 있었다. 정양슈쥐의 창립자 최용(崔勇)이 2014년 이 공간을 인수했다. 그는 지난 몇 년간의 청춘을 베이징 역사와 관련된 오래된 물건들을 모으는 데 쏟았다. 그의 노력 덕에 다른 서점들과 달리 정양슈쥐에는 고서적, 옛 사진, 지도 등 예전 베이징 문화와 관련된 책과 물건이 가득하다. 베이징의 멋이 넘쳐나는 이곳에서 나도 1936년 프랑크 돈(Frank Dorn)이 그린 베이징 지도를 하나 구입했다. 정양슈쥐는 2018년부터 출간에 참여했는데 주로 예전 베이징 사진 같은 진귀한 자료들이다. 그러니 이곳은 단순히 서점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과거와 현재의 베이징을 품은 문화 공간’ 정도랄까. 


베이징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북쪽의 섬'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인 '베이다오(北岛)'를 빠뜨릴 수 없다. 베이징에서 자란 그는 1978년 동인들과 시 전문지 '오늘'을 창간하는 등 문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톈안먼 광장에 대자보로 널리 읽혔던 시구 ‘비열함은 비열한 사람의 통행증/고상함은 고상한 사람의 묘비명’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 구절 중 하나다. 그는 1989년 톈안먼 사건에 연루돼 오랜 시간 망명 생활을 하다 아버지의 깊은 병환으로 13년 만에 고향 베이징으로 되돌아온다. 돌아온 기쁨도 잠시, 너무나 변해버린 베이징을 목도하고 충격을 받은 베이다오는 자신이 겪은 예전의 베이징을 글로써 재건하리라 다짐한다. 그 책이 예전 베이징에 관한 나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준 <베이징, 내 유년의 빛>이었다. 그의 글은 한여름의 햇살처럼 반짝이다가 가끔은 녹아버린 첫 눈처럼 슬프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가 남긴 베이징 흔적이 있어서 꽤 다행이라는, 이런 작가를 가진 베이징이 굉장한 행운의 도시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나는 그의 문장을 지반 삼아 베이징 구석구석을 씩씩하게 걸었다.


햇빛이 거리를 두 부분으로 나눈 여름 후통에서 그의 이 문장을 생각했다.


-여름날의 햇빛이 거리를 두 부분으로 나눴다. 그늘진 곳은 물처럼 시원하여 나는 사람들을 따라 이리 저리 물고기처럼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을 바꿔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쪽으로 가서 고독하고 오만하게 자신의 그림자를 밟고 섰다. 머리가 온통 땀에 젖고 이어서 몸 전체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목적지에 이르면 나는 막대 얼음과자를 사서 내 자신을 위로했다. 21p


냄새나는 공중 화장실에 들어갈 때면 이 문장을 떠올리며 숨을 참았다.


-우리는 류하이 후퉁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쑹수가에서 북쪽으로 모퉁이를 돈 다음, 다신카이 후퉁을 가로질러 길가 공중변소에서 소변을 보았다. 변기에 절어 있는 소변 냄새가 지독해 눈을 뜰 수 없었다. 우리는 마치 물 속에서 숨 참기 연습을 하는 것처럼 숨을 쉬지 않고 있다가 공중 변소를 나와 한참을 가서야 간신히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꽃향기가 폐부 깊숙이 밀려들어 왔다. 온통 홰나무꽃이었다. 어젯밤에는 비가 내렸는지 작은 물웅덩이들이 하늘과 나무 그림자를 함께 반사하고 있었다. 35p


후통에서 심이와 비슷한 아이를 보고 이 부분을 꺼내 읽었다.


-나는 넓은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른의 세계에는 일종의 생략된 안정감이 있었다. 고개를 들지만 않으면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가슴 아랫부분이었다. 너무 못생긴 것 때문에 슬퍼할 필요도 없었고 인간 세계의 희로애락에 마음이 흐트러질 필요도 없었다. 일단 빽빽한 인파의 흐름 안으로 들어서면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도 통하지 않았다. 힘들게 몸부림을 쳐야만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겉에 철판을 덧댄 대문은 자신의 변형된 얼굴을 닫아버리고, 유리창 속에 겹겹이 비치는 사람들 그림자는 무수한 담배 꽁초만 밟고 지나갔다. 22p


삼천 여 개의 후통이 생선가시처럼 퍼져 있는 베이징은 걷기 좋은 도시다. 유현준 교수에 따르면 도시가 매력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골목 대신 복도가 들어서기 때문인데 베이징은 비록 성벽은 부쉈지만 골목은 남겼다. 유 교수가 바라보는 골목과 복도의 가장 큰 차이는 하늘이 있느냐 없느냐다. ‘우리에게서 머리 위의 하늘을 빼앗은 대형 아파트 단지’가 아닌 거주민들의 빨래가 만국기처럼 펄럭거리고 파란 하늘이 있는 골목을 걷는다. 그곳에 도시의 이야기와 사람들의 감정이 넘실거린다.


창안가, 시단, 중산공원... 나는 베이다오의 글에 큰 빚을 지고 많은 공간을 찾았다. 지금의 베이징과 그의 베이징을 동시에 걸으며 혼자였으면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도시의 정서를 배워갔다. 순박하고 꾸밈없던 예전의 베이징, 후통의 홰나무 꽃향기와 사합원, 그의 아름다운 문장들로 묘사된 베이징의 소리와 냄새들. 한 도시가 가질 수 있는 정서는 어떤 빛깔일지 고민하는 이방인에게 그의 문장은 좋은 지도이자 벗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챕터 제목은 '아버지'다. 톈단공원에서 두 팔을 벌린 채 웃고 있는 사진으로 기억되는 아버지의 첫 모습부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서로 건넨 부자의 마지막까지 담겨 있다. 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중국에 세 번 돌아올 수 있는 잔인한 운명을 가진 사람이었고, 곧 아버지의 마지막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는 마지막을 예감하며 이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아버지가 있는 방향을 향해 조용히 기도를 드린다.


왕천은 ‘베이징 자체가 살아 있는 중국의 고건축 박물관이자, ‘베이징의 풍경’은 이미 문화와 심미적 품성이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정서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유명한 작가 주요섭에게 '베이핑(베이징의 옛 이름)'은 '아름답고 평화스럽고 아늑하고 고전적이고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곳'이었다. 대부분의 생을 베이징에서 보낸 작가 라오서는 '내 마음에는 베이핑이 있지만 나는 그곳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나지막이 고백했다.


많은 이들이 이토록 사랑한 베이징이라는 도시는 과연 어떤 곳일까?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곳. 과거의 느낌과 정의가 시시때때로 희미해 지는 곳. 옛 것과 오늘의 것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곳. 베이징을 향한 그들의 애정을 퍼즐 삼아 나의 베이징을 짜 맞추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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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왕천이 그린 좐타 후통 (오) 1924년의 모습

# 좐타 후통은 중국의 대문호 '루쉰' 작가와도 인연이 깊다. 1923년 7월 루쉰(본명 저우수런)은 바로 밑의 동생 저우쭤런에게 '다시는 뒤채로 오지 말았으면 한다'는 절교의 편지를 받고 같은 해 8월 2일 좐타후통 61호(현 84호)의 새 집으로 이사했다. 이전 집에 비해 크기가 너무 작아서 생활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최고의 중드로 꼽히는 <금분세가(金粉世界)>의 원작자 장한수는 전탑골목 43번지(현 95번지)에 거주하며 인생의 여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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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후통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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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슈쥐에 사는 냥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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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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