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의 성당을 서점으로.
从明天起,做一个幸福的人
喂马、劈柴,周游世界
从明天起,关心粮食和蔬菜
我有一所房子,面朝大海,春暖花开
내일부터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지.
말에게 여물을 먹이고, 장작을 패고, 세계를 여행해야지.
음식과 채소에도 더욱 관심을 가져야지.
나의 방은 바다를 마주하고 따뜻한 봄에는 꽃이 활짝 핀다.
베이징에 오자마자 어학당에 다니며 즐겁게 중국어를 배웠지만 고역이었던 일은 학생 신분으로 운동회나 장기자랑(심지어 노래 대회도 있었다) 같은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었다. 부끄러워서 마음 같아서는 결석을 하고 싶었지만 장학금을 노리고 있는 데다 온몸에 모범생 피가 흐르고 있어 이유 없는 결석이 쉽지 않았다. 꾸역꾸역 운동회에 참여해 공원에서는 몸 개그를, 학교 체육관에서는 1분 훌라후프와 엎드려서 오래 버티기 같은 종목들에 참여했다. 그나마 두 번째 학기에는 반 통쉐(同学/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시 한 편을 읽으면 되는 '시 낭송 대회'라 마음이 편했다.
그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시인 '하이쯔(海子)'와 그의 대표작 <꽃 피는 봄날 바다를 향해 서서(面朝大海,春暖花开)>라는 시를 알게 됐다. '내일부터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지(从明天起, 做一个幸福的人)'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시였다. 시를 좋아했지만 중국 시까지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언어 수준은 아니어서 나는 로봇처럼 시를 읽었다. 그때도 나의 모토는 '카르페디엠'이었기에 왜 이 시인은 오늘부터가 아니라 내일부터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부끄러운 시 낭송 시간이 지나고 시인에 대해서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한참 후 이 시가 천재 시인 하이쯔가 자살하기 두 달 전에 쓴 유언과도 같은 시라는 것을 알았을 때 한동안 멍하게 있었던 기억이 난다.
베이징에서 무수히 많은 서점을 만났지만 건축학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을 딱 하나 고르라면 역시 이곳이다. <모판슈쥐 스콩졘(模范书局.诗空间)>. 모판슈쥐의 네 번째 공간이자 '시공간'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이 붙은 이곳은 1907년에 세워진 중화 성공회 성당 옛 터를 개조해서 만들어진 까닭에 유서 깊은 유럽 성당에 방문한 듯한 착각이 든다. 화북 지역에서는 가장 큰 성공회 공간이었으며 1958년 사용이 중단된 이후 창고,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어 왔다. 왕징과 조금 동떨어져 있는 시청취쪽에 위치한 이곳의 문을 열면 끝도 없이 뻗은 천장 아래서 웅장한 기운과 은은하게 번지는 여백의 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평일 오후의 한적하고 조용한 모판슈쥐 스콩졘을 걸으니 마치 성당 예배에 참여한 느낌이었다.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니 지붕과 천장,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벽 등 어디 하나 특별하지 않은 곳이 없다. 영국 국교회를 따르는 성공회 성당이니만큼 영국인들이 건축했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맞배지붕(硬山顶), 팔각 모양 등 중국적 건축 요소 또한 많이 가미되어 있다.
시중 베스트셀러는 거의 없지만 흔치 않은 판본과 고서, 절판본, 오래된 인쇄 기구를 찾을 수 있다. 서점의 왼쪽 공간에서는 각종 공예품을 팔고 있으며, 깊숙이 들어가면 카페가 나온다. 서점의 중앙 부분은 작은 무대처럼 비워둬 크고 작은 문화 행사에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낡은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숨을 쉬다 보니 시간을 건너 1900년대로 넘어간 느낌마저 든다. 어떤 공간을 떠올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의 건축학적 완성도가 아니라 다시 찾아가고 싶은 ‘그리움’이 아닐까. 낙엽이 첫눈처럼 떨어지는 만추의 어느 날, 두꺼운 문을 열고 모판슈지 스콩졘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내 눈에 펼쳐지던 풍경,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사이로 은은하게 들어오던 햇빛과 웅장한 오르간 소리, 그 풍경에 기대 책을 읽던 시간. 그 기억은 내게 언제고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의 순간으로 남았다.
모판슈쥐는 고서와 역사를 특별히 사랑하는 창업자 지앙순(姜寻, 그는 시인이자 출판업자이자 디자이너이자 사업가다)이 1994년 톈안먼 근처 후통 '양매주시에지에(이하 양매죽사가)'에 처음 오픈한 문학, 예술, 연극, 역사에 특화된 독립 서점이다. 동쪽으로는 따즈란, 서쪽으로는 리우창 거리와 이어지는 후통인 양매죽사가는 민국 시대 건물들이 즐비한 데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斜街(기울어진 길)’라는 명칭이 붙었다. 중화민국 시기 이 후통에 7개의 출판사가 있었기에 문화 거리로도 불렸다. 모판슈쥐 바로 맞은편에는 청말 민국 초기 고급 상업 오락 장소였던 청운각(青云阁)이 있다. 이곳에서 캉유웨이, 루쉰 등 당대 유명 인사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술을 마셨다고 한다. 지금 보아도 민국 시대풍의 멋스러운 건물이다. 지앙순이 양매죽사가를 걷다가 이 건물을 보고, ‘그래, 바로 이곳이야!’하고 무릎을 쳤다고 하던데 과연 그럴 만하다.
모판슈지 창립자 지앙순은 모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점은 세계에 존재하는 외딴섬이다. 인터넷 시대에 살아남기 힘들지만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정의를 보고 정세랑 작가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에 나오는 캐릭터 난정을 생각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머리를 다른 세계에 통째로 담그기 위해' 미친 듯이 책을 읽는다.
서점의 존재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답답한 현실에서 도피해 다른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잘 살아가고 있다고 확인 받거나 혹은 위로 받기 위해 종종 시내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외딴섬으로 가곤 하니까. 아름다운 외딴섬들은 도시 곳곳을 지키고 있었고 쓸쓸한 이방인이었던 나는 때로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위로를 받았다. 강유원 작가가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고 비유한 것처럼 나 역시 잊을 만 하면 찾아오는 불행과 우울이라는 병에 맞서며 외딴섬에서 임상기록과도 같은 페이지를 야금야금 먹어 치웠다. 도시 구석 어딘가에서 버티고 또 버텼다. 도시를 판단하는 많은 기준이 있겠지만 병원이 많은 도시만큼 서점이 많은 도시가 대우받는 세상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서점은 도시인의 정신을 책임지는 공간이니까.
'내일부터는 더욱 행복한 사람이 되어 말을 살찌우고, 장작을 패고, 세계를 유랑하고 싶다'로 시작하는하이쯔의 시 <꽃 피는 봄날 바다를 향해 서서>는 '따뜻한 봄날 바다를 마주하며 꽃을 피우기를 바란다'는 시인의 바람으로 끝이 난다. 하이쯔는 어쩌면 그의 바람처럼 바다가 보이는 산해관 철로에 누워 스물 다섯 꽃 같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오늘이 아닌 '내일'의 행복을 꿈꾸고 읊어야만 했던 천재 시인에게 천국 같은 '외딴섬'은 더 멀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