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만난 최고의 한식
1.
완전히 사랑에 빠져 버린 도시의 다음 도시로 출발할 때는 미묘한 감정이 든다. 네가 아무리 멋져도 나는 쉽게 애정을 주지 않겠어!류의 아주 유치한 방어적인 마음이랄까. 코르도바를 거쳐 그라나다에 도착했을 때도, 네르하에서 말라가로 떠날 때도 그랬다. 그때 우리는 네르하 파라도르에서 하루 더 묵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기에 그 아쉬움이 말라가를 향한 기대를 쪼그라들게 했다.
내가 왜 말라가를 2박 했을까...라고 세 번 정도 춘에게 푸념하니 어느새 말라가에 도착해 있었다. 말라가는 스페인의 위대한 화가 피카소가 태어난 도시다. 호텔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가보니 역시 말라가는 조용한 네르하와는 180도 달랐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데 카니발 주간인지 도시 전체가 들썩거렸다. 거리마다 사람들이 공연과 퍼레이드를 하고 있어서 흥이 많은 심이의 엉덩이도 함께 흔들거렸다. 특히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참여하고 있는 퍼레이드는 끝없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우리에게 종이 쪼가리를 한가득 뿌렸다. 영화 세트장 혹은 롯데월드 어드벤처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어서 정신이 없었다. 말라가는 방어적인 나의 마음을 먼저 눈치채고 마치 나를 홀리려고 작정한 사람 같았다. 이렇게 신나는 도시에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금사빠인 우리는 또 금세 말라가에 젖어들었다. 특히 심이는 보는 재미가 있는 축제의 도시 말라가를 좋아했다. 말라가가 사람이라면 놀기 좋아하고 흥이 넘치는 셀러브리티가 아닐까. 이베리아반도 9개의 도시 중 가장 활기차고 생기 넘치는 도시가 바로 말라가였다.
2.
말라가 여행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피카소 미술관과 한식당 '우리스시'에 가는 것. 어쩌다가 스페인 여행의 목표가 한식당 투어가 되어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먹는 한식보다 맛있다는 '우리 스시' 후기는 심이를 흥분시켰다. 축제의 현장을 뚫고 우리스시에 도착해 매운탕과 김치찌개, 회덮밥을 시켰다. 바로 옆에는 현지인들이 스시를 먹고 있었다. 매운탕을 한 입 먹자마자 만화 주인공처럼 눈이 번쩍 뜨였다. 희끗한 머리를 가진 무뚝뚝한 한국 셰프님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대체, 무슨 사연으로 말라가의 작은 공간에서 이렇게 (끝내주는) 한식을 만들고 계신지 궁금했다. 한국에 가서 사업을 크게 하셔도 될 것 같은데... 권유할 순 없었지만 그가 엄청난 내공을 가진 고수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나오는 길 위에서 오랫동안 퍼레이드와 공연을 구경했다. 특히 열심히 분장을 하고 춤을 추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인상적이었다. 말라가에는 65세까지는 모두 퍼레이드에 참여해야 하는 법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아니라 얼굴에 익살스러운 분장을 하고 아이들과 청년들에 섞여서, 엉덩이를 흔드는 일을 자율적으로 하고 계신 거라면 더욱 부러울 일이었다.
8명의 남성으로 이루어진 합창단의 노래는 무척이나 흥겨웠다. 사람들이 모두 가사를 알아듣고 30초에 한 번씩 폭소를 터트리는데 우리만 알아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또 피어올랐다.
3.
두 번째 날은 가장 번화한 거리, 가장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 가장 유명한 바 등 말라가의 대표 선수들과 함께 했다. 우선 말라가에서 가장 번화한 곳은 라리오스 거리(Larios)다. 자라, 망고, 오이쇼(oysho) 등 스페인 대표 브랜드의 큰 매장들이 위치해 있는데 1890년 때부터 영업한 아이스크림 가게인 까사 미라(Casa Mira)도 있다. 스페인 전통과자 투론맛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지조 있는 심이는 늘 먹던 망고맛을 주문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말라가에서 가장 유명한 타파스 바 중 하나라는 까사 로라(Casa Lola)로 향했다. 오후 세 시, 까사 로라는 낮술을 먹는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낮술을 마시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이 나라는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밖에서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을 20분 정도 구경하며 어슬렁거렸더니 내부로 들어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베리코 스테이크와 연어, 참치 타파스를 주문하고 식전주인 베르무트(Vermut)를 마셨다. 베르무트의 어원은 향쑥의 독일명에서 왔는데 포도주에 브랜디를 섞고 각종 향료나 약초를 넣은 술이다. 어릴 때 먹던 감기약 느낌이 살짝 도는 것이 매력적이다. 춘이 특히 이 술을 좋아했다.
4.
피카소의 작품은 바르셀로나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그의 고향 말라가에서 본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피카소는 자신의 고향에 미술관을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 유언으로 탄생한 것이 말라가 미술관이다. 이곳에는 피카소의 초기 작품들이 많아서 우리가 평소에 알던 그의 초현실주의 화풍과는 결이 다른 작품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이와 피카소 위인전을 몇 개 뒤적였는데 새삼스레 다시 놀랐던 것은 그의 이름이었다. 그의 풀네임은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 로스 레메디오스 시프리아노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루이스 이 피카소(
Pablo Diego José Francisco de Paula Juan Nepomuceno María de los Remedios Cipriano de la Santísima Trinidad Ruiz y Picasso). 이렇게도 긴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니. 또 하나는 꽤 오래 살았다는 것이다. 미술계 거장들은 왠지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그는 무려 91세까지 장수했다.
할아버지가 된 피카소 인물 사진을 여러 장 살펴보니 '여든 즈음에야 그림다운 그림을 그렸다'는 중국 화가 치바이스가 떠올랐다. 93년이라는 짧지 않은 삶을 산 치바이스도 세상을 뜨기 석 달 전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근현대 회화 작품 중 최고가를 경신하며 본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도 82세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여든 즈음에야 그림다운 그림을 그렸다'라는 그의 말이 마냥 엄살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이제 마흔이 되었으니 더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며 생의 불안정성을 탓했던 스스로가 문득 부끄러워졌다.
요즘 내 고민의 많은 부분은 아이와 관련된 것이지만 사실 내 미래조차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흔 살까지 건강하게 사는 행운이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지금 전반전도 채 마치지 않았다. 여든 살에 화룡정점이 찾아오는 인생에 대해서 생각한다.
5.
별 고민 없이 AC호텔(AC Hotel Málaga Palacio by Marriot)로 숙소를 정했는데 대성당 바로 옆이라 위치가 좋았고 숙소 컨디션은 평범했다. 호텔 꼭대기에 누구나 들릴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데 말라가 시내와 대성당을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자금 부족으로 미완성으로 마무리된 말라가 대성당은 탑 한쪽을 완성하지 못해 '외팔이 여인'이라는 뜻의 '라 만키타(La Manquita)'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이 성당 안에 17세기 목조 조각의 거장 페드로 데 메나가 참여한 성가대석의 조각이 유명하다.
우리는 말라가의 핑크 스카이 아래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했다. 말라가와 피카소, 스페인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그런 이야기들을. 요즘 초등학교 삼학년들이 좋아하는 게임과 영상, 혹은 그들의 고민에 대해서.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에 대해서. 맥주는 몇 학년부터 마셔야 합당한가에 대해서.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나는 다섯 번째 도시에서 비로소 여행의 진짜 의미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아름다운 도시에서 함께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라 이 도시가 아름다운 것이라고. 위대한 건축물과 작품들을 더 많이 보고 느껴야 하는 마음을 내려 두고, 일상에서는 오래 바라볼 수 없었던 가족들의 눈을 오래 바라보고, 더 오래 손을 잡자고.
이 시간의 방점은 스페인이 아니라 '우리'에 찍혀야 한다는 깨달음이 말라가의 핑크스카이와 대성당의 조화로운 풍경 위로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 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당신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