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쯤은 돼야 늙은 축에 들지
1.
부모가 '늙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확 느낄 때가 있다. 내 부모의 얼굴에서 조부모의 얼굴을 처음 찾았을 때가 대충 그렇다. 올해 엄마가 칠순이지만 백세 시대니 엄마, 아빠는 여전히 젊다고 생각했다. 두 분이 함께 마라톤 풀코스를 몇 차례 완주하셨을 만큼 건강하게 지내오셨던 터라 내 엄마, 아빠는 더 천천히 늙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빠는 어떤 문을 열어버린 것처럼 갑자기, 아주 갑자기 기력 잃은 할아버지가 됐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똑 닮아가고 있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엄마, 아빠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필립 로스는 <아버지의 유산>에서 다섯 주 만에 만난 아버지가 갑자기 허약한 노인으로 변해버린 것 같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고 적었다. 그가 아버지를 묘사한 것을 몇 번이고 읽었다.
시력을 잃은 눈의 아래쪽 눈꺼풀이 축 처지며 눈꺼풀 안쪽을 드러냈고, 그쪽 뺨은 밑의 뼈를 발라낸 것처럼 생기 없이 늘어졌고, 입술은 이제 수평을 유지하지 못하고 얼굴을 가로질러 대각선을 그리며 아래로 끌려 내려왔다.
입이 아래로 처지는 바람에 발음이 새서 전화 통화에 어려움을 겪는다. '전날까지만 해도 자신처럼 보이던 게 이제는 누구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의 문학적 재능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로 묘사가 너무 적나라하고 생생해서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의 문장들은 어쩌면 나의, 아니 모두의 미래다.
2.
미국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가 된 최초의 한국인 정신과 의사 이유진님이 쓴 <죽음을 읽는 시간>에는 거울을 보지 않는 노인이 등장한다. 그는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무려 몇 년간 거울을 보지 않았다.
-제 얼굴을 보고 싶지가 않아요. 언젠가부터 거울을 보면 낯선 노인이 앞에 서 있는 거예요. 이게 누군가 싶고 거울을 보면 너무 우울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거울을 싹 다 치워버렸죠. 어차피 혼자 사니까 뭐라 할 사람도 없고요. 사진을 안 찍은 지도 몇 년 됐어요.
그는 피부암을 앓고 있었다. 거울만 봤어도 일찍 암을 발견할 수 있었을 거라고 저자는 안타까워했다.
그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언젠가부터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아빠.
-너네끼리 찍어, 아빠가 사진 망쳐.
그 마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3.
영화 은교의 대사처럼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니 이 육체적 노화를 어떻게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커다란 숙제다. 정답은 없지만 곁에 함께 나이 들어가는 마음이 잘 맞는 이가 있다면 그 과정이 조금은 수월할 것 같다. 현재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로 큰 위안이 되기 마련이니까.
얼굴의 주름을 닮고 싶은 롤 모델을 찾고, 계속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사랑받고, 영양이 높은 음식을 조금씩 먹는다. 유난히 스트레스를 주는 부분이 있다면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본다.
머리가 많이 빠진다고 스트레스를 받던 엄마는 친구들과 단체 가발을 맞췄다. 처음 가발을 쓴 엄마를 본 순간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러운 노화 앞에서 가발까지 쓰는 건 평소의 엄마답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잘 어울린다고 빈말을 건넸다. 가발을 쓰고 즐거워하시니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첫인상과는 다르게 가발은 갈수록 엄마에게 어울렸다. 풍성한 모발에서 나오는 엄마의 자신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도 나중에 머리 빠지면 저 가발 가게에 가야겠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지금 엄마의 가발은 완벽하게 조화롭다.
4.
노화 방지 음식으로 유명한 두부, 마늘, 올리브오일을 활용해 두부조림을 한다. 두부는 우리 식구들이 제일 좋아하는 식재료다. 찌개용, 부침용, 연두부, 순두부 등 가리지 않고 항상 냉장고에 채워둔다. 출출할 때 연두부에 간장 소스를 뿌려서 숟가락으로 퍼먹는 것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다.
생마늘을 좋아하지만 익혀야 노화를 방지하는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 함량이 증가한다고 한다. '실제 익힌 마늘은 생마늘에 비해 항산화 물질 활성도가 많게는 약 50배 높고,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 함량은 각각 7배, 16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라는 류의 기사들을 요즘은 유심히 본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오일을 충분히 두르고 물기를 뺀 두부와 편 마늘을 올린다. 노릇노릇 굽다가 그날의 취향에 따라 간장 혹은 고추장 베이스로 양념을 만든다.
5.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라는 책은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단체로 노화 방지 시술이라도 하는 것인가 하는 반항적인 자세와 끝내주는 프랑스식 피부 관리법이라도 얻어 보자 하는 간사한 마음으로 읽다가 깨닫게 된 사실은 노화를 받아들이는데 사회 분위기 또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 층 위주로 빠르게 돌아가며 잡지에 '일흔다섯이 되면 갈 데까지 간 것이다'라는 카툰이 실리는 미국과 비교해 볼 때 64년생의 줄리엣 비노쉬, 43년생의 카트린느 드뇌브가 여전히 만인의 우상인 프랑스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 한 마디로 나이가 들수록 섹시하고 매력적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위에 널렸다는 얘기다. 확실히 유럽에서 만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다. 저런 색의 옷을 입으시네? 할 정도로 파격적인 옷들도 멋스럽게 소화한다.
책이 인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사람들은 대체로 예순다섯에서 일흔 사이에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마흔 다섯살부터 쉰 살 사이의 만족도가 가장 낮고, 그러다가 일흔 살에 이를 때까지 꾸준히 높아진다. ('행복의 길로 새롭게 접어드는 쉰 살 생일'은 확실하게 축하하도록 하자.)
또한 프랑스 사람들이 세상에서 노화를 가장 적게 걱정한다고 하는데 다들 나이가 들어야 여유와 지혜가 생기고 존재 자체의 기쁨이 높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 중 3분의 1 정도가 여든은 되어야 '늙었다'라고 생각한다고 하니 늙은 나이에 대한 기준도 우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마흔 생일을 보내며 이제 늙어가고 있군,이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여든까지 남은 40년의 인생을 어찌하면 더 매력적이고 섹시하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내게 건강검진을 받고 온 아빠의 날벼락 같은 한 마디.
-70이 넘으면 수면 내시경을 못해서 일반 내시경으로 했어.
-그래요? (늙는다는 거 진짜 요상하네.)
일반 내시경 트라우마가 있는 나는 70이라는 나이가 한층 더 두려워졌지만 뭐 어떤가. 우리는 모두 함께 늙어가고 있으니, 가발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니, 프랑스행 비행기 티켓은 언제나 구할 수 있으니, 그걸로 됐다.
-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당신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