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엔 우리 반대로 만나요
1.
해암쌤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기에 나는 종종 자상한 아빠를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자랐다. 하지만 아빠가 도드라지게 강한 분야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편지. 한창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 무뚝뚝한 아빠 말투에 상처받아 아빠랑은 편지로만 대화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더랬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는 박준 시인의 문장을 떠올리면 아빠는 억울할 것이다. 아빠는 '사랑하는 그 일'을 누구보다 자주 했으니까. 생의 변곡점마다 아빠는 단단한 당부들이 담긴 편지를 써서 건넸다.
유려한 아빠의 필체와 그 사이에 흐르는 사랑은 오래 기억할 만한 것이었다.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며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는 대부분 사진으로 남기고 버렸지만 아빠의 편지만은 남겨두었다. 언젠가 아빠의 글씨체를 담은 종이를 만져보고 싶을 것 같아서.
2.
결혼식 주례는 아빠가 직접 쓴 편지를 읽는 것으로 대신하겠다고 선언했다. 처음에는 부끄럽다고 손을 내 저으시던 아빠는 기대보다 훨씬 긴 편지를 준비했다. 식장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주례사를 읽던 아빠의 모습은 눈물 탓에 뿌예졌다.
-맑은 영혼과 밝은 성격을 가진 아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아이, 꿈과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랑스럽고도 자랑스러운 나의 딸, 우리의 HOPE.
(중략)
집안의 가구처럼 당연한 존재로 여기지 말고 서로 대등한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 아무리 화가 났을 때에도 말을 함부로 쏟아내지 말아라. '감사할 줄 알면 풍요로워지고, 감사할 줄 모르면 빈곤해진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항상 마음에 새기면서 조금만 일에도 감사하며 살아라.
아빠 주례사 중
아빠의 편지 안에서 나는 늘 희망이고, 사랑이다. 눈물로 번지는 신부 화장을 고려해 볼 때 아빠의 주례사는 권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권한다. 아빠의 주례사는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아빠의 편지가 됐으니까.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책장에 꽂힌 그 편지를 읽는다. 어느 대문호의 글보다 내 마음을 울리고, 안정시킨다.
그러니 아빠가 편지에 써준 이 진리-서로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말을 함부로 쏟아내지 말아라-가 사실 우리 결혼 생활을 지탱해 준 전부였는지도 모르겠다.
3.
아무리 짧은 편지라도 쉬이 쓰이지 않는다. 온전한 마음으로 한 사람을 생각할 때 비로소 시작되어 완성되고 건네지는 것이 편지니까.
그러니 편지를 쓴다는 건 상대방의 마음과 입장을 진심으로 헤아려 보겠다는 다짐 같다. 최근에 읽은 것 중 가장 인상적인 편지는 김신지 작가가 친구 인숙에게 쓴 편지다. 집에 누가 올지 몰라 밥솥에 늘 밥을 넉넉하게 지어두는 마음 넓은 친구 인숙, 다른 이의 말에 따르면 학자로 살았어야 할 인숙, 홀로 천자문을 익힌 인숙.
인숙은 사실 작가의 엄마다. 작가는 스물다섯의 엄마, 동시대에 태어났다면 어쩌면 좋은 친구가 되었을지 모르는 상황을 상상하며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모르고 읽었을 때는 낯이 조금 간지러웠고, 그 친구가 엄마라는 것을 알고 다시 읽을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천장으로 목을 꺾어야 했다. 나의 엄마가 엄마가 아니고, 나의 아빠가 아빠가 아닐 때의 삶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엄마가 영영 엄마가 아니었다면, 아빠가 영영 아빠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 자유로운 삶에 대해서도.
그런 상상의 부재 앞에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주장은 무색하다. 나도 편지를 써보기로 했다. 새하얀 종이를 앞에 두고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던 가난한 청년과 학구열이 누구보다 높았지만 장녀라는 이유로 끝내 배움의 기회를 양보해야 했던 소녀를 떠올린다. 희망을 품기보다는 절망하는 편이 쉬웠을, 그럼에도 의무와 책임만이 가득했던 버거운 현실 속의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첫 문장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아빠의 젊은 날을 복기하는데 김연수 작가의 <지지않는다는 말>에서 읽은 문장이 생각났다.
-우리 아버지의 삶 앞에서는 이 인생,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나도 금세 이런 마음이 되었다. 혹독한 가난과 아버지의 병환, 장남으로서의 무게와 철없는 동생들이 줄지어 있던 아빠의 혹독한 삶을 겪어보지도 않고 아빠는 왜 그리 인생의 멋과 여유를 모르고 살아가냐, 낭만적이게 좀 살 수 없겠냐 등의 훈수를 뒀던 스스로를 떠올리니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게 된 것이다. 아빠가 고통을 딛고 찾은 풍족을 나는 벅차게 누려온 것뿐이었는데.
반성문을 닮은 편지는 아직 완성되지 못했고 어쩌면 오래 고쳐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새하얀 A4 용지 앞에서 편지가 가진 힘은 생각보다 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속해서 고쳐나갈 의지가 있는 편지라면 그 힘은 더욱 강력할 것이다. 아빠가 이해되지 않을 때, 아빠를 이해하고 싶을 때, 나는 그 편지를 꺼내 수정할 것이다.
4.
오늘은 모든 요리 초보들의 영혼의 요리, 카레라이스를 하는 날이다.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모두 다 넣고 끓인 후 카레 가루를 풀고 계속 끓인다'라고 한 줄로도 정리할 수 있는 요리이지만 간단한 요리일수록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스타일은 육수를 넣기 전 양파를 올리브유와 다진 마늘에 달달 볶는 것. 토마토가 있다면 같이 넣어서 푹 끓이는 것. 토마토가 없으면 마지막에 토마토케첩을 살짝 떨어뜨리는 것이다. 새콤달콤한 끝 맛이 살아난다.
카레는 재료 선택에 자유와 관용이 있는 메뉴다. 해산물이든, 고기든, 야채든 심지어 과일이든, 무엇을 넣어도 잘 어울리니까. 카레라이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요리지만 함께 먹을 상대가 좋아하는 식재료를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지와 닮았다.
아빠의 카레라이스에는 해산물을 듬뿍 넣는다.
5.
얼마 전 뉴스 피드에서 성남 흉기 난동 사고로 엄마를 잃은 딸이 엄마가 좋아하던 커피에 붙여 둔 포스트잇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글귀는 짧았다.
-다음번에는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 만나자 꼭!
내리사랑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었다. 자식이 생겨보니 알게 됐다. 부모에 대한 마음이 아무리 커도, 자식에 대한 사랑을 이기기가 어렵다. 이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마다 마음이 저릿해진다.
오랜만에 아빠에게 축하도, 감사도 아닌 목적 없는 편지를 쓴다. 평범한 날에 받은 편지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됐다.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내가 부모로, 아빠가 자식으로, 우리 반대로 만나요.
-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당신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