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정확하게 상상하기

덜 외로운 죽음 준비

by 심루이


1.

중국 작가 뤼후이의 에세이집 <세상이 몰래 널 사랑하고 있어> 마지막 부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리안은 혼자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구급차 한 대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내며 리안의 옆을 쏜살같이 지나쳐갔다. 순간, 리안은 머리와 얼굴에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오늘은 운이 지지리도 없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리안이 모르는 게 있었다. 구급차는 갑자기 쓰러진 리안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던 중이었다. 연로한 환자가 버텨내지 못할까 봐 속도를 낸 것이다.


거리의 앰뷸런스를 바라보며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내 부모도, 나도 언젠가는 앰뷸런스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요란한 앰뷸런스 소리를 들을 때면 주먹을 쥐고 더 씩씩하게 걸었다.


2.

강렬한 상실의 예감이 찾아들 때 아디치에의 <상실에 대하여>를 읽는다. 나이지리아 태생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고 맞닥뜨린 상실의 순간과 감정을 아주 적나라하게 써 내려간다. 그녀의 문장은 매우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이다.


멀리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공기가 끈적끈적한 풀로 변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 그녀는 정신을 잃고 울다가 사람이 울 때도 근육을 쓴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쑤셔오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지인들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문자로 알리겠다는 친언니에게 버럭한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진짜가 돼 버리잖아.


그녀는 겉치레에 불과한 지인들의 애도 문자에 분노하고, 우리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분통함을 느낀다. 분노와 부정으로 가득 찬 문장을 읽다 보면 숨이 찰 지경인데, 날 것 그대로의 문장이 이상하게 나를 편안하게 한다.


그녀는 누군가를 잃는 슬픔은 잔인한 종류의 배움이라고 말한다. 배우고 싶지 않지만 결코 거부할 길이 없는 배움. 예습이 무의미한, 남은 생 동안 복습과 아쉬움만 이어지는 배움일 것이라 상상하며 나는 그녀의 슬픔과 함께 했다.


3.

어느 의사도 아직 아빠에게 무언가를 '선고'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현재 뇌수두증과 파킨슨, 협심증과 관련된 추적 관찰을 하고 있다. 정밀한 뇌 검사를 위해 대학병원 진찰을 처음 권유받았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뇌라니. 다른 곳도 아니고 뇌라니. 평생 믿을 건 '우수한 두뇌' 하나였던 아빠의 뇌에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아빠를 지독한 가난에서 구했으며, 매일 읽고 쓰는 아빠의 정체성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그곳, 경상도 남자 특유의 고지식함으로 본인의 신념을 절대 포기하지 않아 우릴 힘들게 한 바로 그 뇌. <아버지의 유산>을 읽으니 미국의 위대한 작가 필립 로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 뇌를 침공하고 있는 종양을 쉽게 확인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이 다름 아닌 그의 뇌, 나의 아버지의 뇌, 아버지가 그 솔직한 방식으로 생각하게 하고, 그 단호한 방식으로 말을 하게 하고, 그 감정적인 방식으로 추론하게 하고, 그 충동적인 방식으로 결정하게 한 뇌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끝없는 걱정들을 만들어내면서 팔십 년 이상 그 고집스러운 자기 규율을 지탱한 신체 조직이고, 사춘기 때 아들인 나를 그렇게 좌절하게 만든 모든 것의 원천이고, 아버지가 막강한 힘을 휘두르며 우리의 목적을 결정하던 시절 우리의 운명을 지배하던 물건인데, 이제 그것은 "주로 우측 소뇌교 뇌각과 뇌교조로 이루어진 구역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덩어리"때문에 쪼그라들고 밀려나고 파괴되고 있었다.


아아, 하느님. 굳이 아파야 한다면 차라리 다른 곳이면 안 되나요,라고 기도하며 울고 싶었다.


4.

오늘은 언제라도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파계란스팸 볶음밥을 만들기로 했다. 가위로 대파를 잘게 자르고 계란을 여러 개 깨서 풀어둔다. 노른자를 살리지 않아도 되니 아빠는 편하게 세로 쪽에 구멍을 내 생계란을 질질질 흘렸다. 스팸은 삐뚤빼뚤 아주 독창적으로 잘라둔다.


파기름을 낸 뒤 계란과 스팸을 넣어 이리저리 휘저으며 스크램블처럼 볶다가 주걱으로 고슬고슬한 밥을 비벼주고 간은 마법의 굴 소스로 한다. 복습이 중요하니 각종 야채를 썰어보는 것도 매주 빼먹지 않는다.


5.

아빠는 이미 유언장 초안을 썼고,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며 본인에게 무슨 일이 닥치거든 절대 무의미한 치료를 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다. 본인이 영면할 공간도 이미 정해두셨다. 아빠는 언제나 계획하고 정리하는데 일가견이 있고 기쁨을 느끼는 편인데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그러한 것인가.


처음에 나는 부모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불편해서 피하려고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죽음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인간에게 꼭 필요한 권리임을. 생을 자유롭게 논하는 것만큼 죽음을 논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덜 외로울 것이다. 나는 죽음을 더 이상 터부시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일상의 화제로 꺼내기로 했다.


간간한 맛을 내는 볶음밥을 먹으며 아빠에게 희망 수명에 대해 물었다. 아빠는 80세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 사회학자인 가스가 기스요씨가 쓴 <백 살까지 살 각오는 하셨습니까?>라는 책을 보면 아빠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90세를 넘길 확률이 남성은 4명 중 1명 이상, 여성은 2명 중 1명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미 100세를 넘긴 장수 노인이 일본에만 약 8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니 아빠에게 앞으로도 15-20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기스요씨 책의 제목처럼 백 살의 소망이 아니라 '백 살의 각오'가 필요한 것이다.


6.

백 살의 각오와는 별도로 상실은 생의 어딘가에서 늠름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픔과 상실을 상상하는 것이 훗날 나의 통증과 아픔을 줄여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예습이 불가능한 학습이기에. 하지만 상상을 통해 무엇을 후회할지 끝없이 스스로에게 반문해 본다.


죽음과 상실을 떠올리면서 생에 더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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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16-03-39.jpg 아부지와 아들


-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당신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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