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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Oct 22. 2023

간단하고 행복한 식단 미니멀리즘

요리는 자유다

1.

<퇴사하겠습니다>로 인기를 끈 일본 작가 이나가키 에미코는 <먹고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본인만의 놀라운 식단을 공개했다. 밥, 된장국, 반찬 하나의 미니멀한 식단. 된장 안에 들어가는 야채와 반찬에 살짝 변화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매일 똑같다. 그녀의 요리 시간은 5분에서 10분 사이. 


집에 들어온다-물을 끓인다-된장국 건더기와 된장을 국그릇에 넣는다-쌀겨 된장에서 채소를 꺼내 자른다-물이 끓으면 그릇에 붓는다-나무 밥통에서 밥을 푼다 끝. 추가적으로 고기나 생선을 굽고 양배추나 튀김두부 등 말린 채소를 된장과 함께 볶기도 하지만 모든 요리가 너무나 단순하고 간단하다. 


먹고사는 일은 고단하거나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고 행복한 일이어야 하기에 그녀는 식단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오늘 뭐 먹지?라는 고민이 사라진 이후 그녀는 삶의 즐거움과 진짜 행복을 찾았다. 무엇보다 약간의 변주만 주는 그 음식들이 정말 맛있다고 한다.  


스스로 음식을 할 줄 아는 자만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그녀에게 식단 미니멀리즘은 자유와 연결된다. 그녀는 말한다. 남자도, 아이들도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묵묵히 된장을 풀어야 한다. 매일이 아니어도 좋다. 하지만 자기 힘으로, 자신의 밥상을 차려낼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요리할 힘을 잃는 것은 자유를 내팽개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그간 아부지의 조리교실에서 꽤 많은 재료를 활용했지만 내가 진짜 제안하고 싶은 식단은 사실 이런 것이다. 밥, 두부, 호박 등이 들어간 된장국(일본식 된장이 더욱 간편하다), 채소&버섯볶음과 김치 정도의 아주 간편하지만 건강한 식단. 이런 메뉴라면 아빠가 언제든 자신감을 가지고 가스레인지를 켤 수 있다. 자극적인 맛은 가끔의 외식으로도 충분하다. 


2.

매일 같은 것을 먹어야 한다면 내 선택은 역시 양배추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항상 양배추가 있다. 출출할 때 쌈장에 찍어 간식으로 먹기도 하고, 국에도 넣고, 내 최애 음식인 떡볶이에도 넣고, 어디에 넣어도 잘 어울리는 만능 식재료. 양배추를 생으로 씹으며 아삭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까지 좋다. 


양배추 된장국을 자주 끓인다. 육수에 된장과 양배추를 넣고 그냥 끓이기만 하면 된다. 10분 만에 한 끼가 완성된다.  


3. 

10년 전 출간된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는 내 인생을 바꿔준 책이다. 정리와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인가 싶어 단순하게 읽기 시작했다가 시간, 관계, 물건, 인생을 총망라한 작가의 통찰력이 기가 막혀서 단숨에 인생책으로 등극했다. 로로는 이야기한다. 소유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는 사회, 단순하게 사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회는 가난하다. 돈이 없는 것만 가난이 아니고 정신적 가치가 부족한 것 역시 가난이며 언제나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한다면 당신은 평생 부자가 될 수 없다. 캬 


뼛속까지 맥시멀리스트였던 나는 이 책을 반복해서 읽으며 비우면서 채우는 삶, 인생에서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깨닫게 됐다. 또한 소유가 아닌 경험에 방점을 찍는,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의 테두리도 만들었다. 마음, 관계 맺기 파트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1초도 허비하지 말자'는 문장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자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소식과 요리의 즐거움에 대해 다룬 2권은 에미코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늘어난 당신의 위장을 되돌려 좋은 음식을 적당히 먹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며, 자신이 먹을 음식을 직접 준비하며 요리하는 동안 우리는 독립성을 되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생을 음미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것은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깨우치는 일이다. 


1년에 한 번 모든 식재료를 완전히 비워내는 유대인의 전통을 소개하기도 한다. 날을 잡아 '마루청 사이에 낀 빵 부스러기 말고는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재료를 비우고 다시 시작한다니 아름답지 않은가. 마치 다시 태어나는 날을 기다리듯 기존 재료들을 처치하고 그날이 오면 유통기한이 지난 소스들과 식재료들을 거침없이 싹 비운다. 


1년에 한 번 모든 것을 비우는 것보다 내게 맞는 더 좋은 방법을 고안했으니 한 달의 첫날, 냉장고의 식재료를 비우는 것이다. 1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새로운 재료를 사거나 외식을 줄이고 치열하게 냉털(냉장고 털기) 작업에 임한다. 냉동실에서 언제 얼렸는지 모르는 카레와 미역국을 꺼낸다. 식재료 낭비를 줄이는데도 꽤 도움이 된다. 


4. 

한 번도 요리를 하는 것이 자유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선배님들의 깊은 가르침에 박수를 치며 묵묵히 된장을 푸는 아빠에게 이야기한다. 


-아빠가 풀고 있는 건 단순한 된장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랍니다.  

---

-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당신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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