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낭만도시 하코다테

지진이라니요 쓰나미라니요

by 심루이

갑자기 하코다테

홋카이도 여행의 대중적인 일정은 4박 5일로 삿포로를 베이스캠프로 두고 오타루 하루, 비에이 투어를 하루 잡는다. 우리는 조금 더 여유로운 7박 8일. '온천 백화점'으로 유명한 노보리베츠를 추가하고 더 갈 곳이 없나 이리저리 훑었다.


그러다 발견한 레트로 도시 하코다테. 다들 이 도시를 소개하는 수식어로 '낭만'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어 보였기에 관심이 갔다. 19세기 무역항으로 번성했던 도시, 시간이 멈춘 듯 레트로 감성이 뿜뿜하는 도시, 나폴리, 홍콩과 더불어 세계 3대 야경의 도시, 엄청난 오징어 수확량을 뽐내는 오징어의 도시, 햄버거 체인 럭키 삐에로가 있는 도시, 소금으로 맛을 낸 시오라멘의 고향.


하코다테가 나폴리, 홍콩과 더불어 세계 3대 야경이라고 소개한 부분에서는 눈을 의심했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상하이와 싱가포르, 낭만 그 자체였던 포르투를 제치고 3대라니. (3대, 5대, 10대 등 순위 붙이는 것을 참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 하코다테 야경 후기를 몇 개 찾아보니 그 정도까진 아닌데 하는 마음에 기대는 덜해졌지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열망은 더해졌다. 입국 도시를 하코다테로 변경하고 렌터카를 빌려 노보리베츠, 후라노, 비에이, 아사히카와, 오타루를 거쳐 삿포로까지 가기로 했다.

KakaoTalk_20251222_193623640_04.jpg 눈오는 하코다테

지진이라니요, 나 삼재인가

비행기, 호텔, 렌터카 예약까지 끝내고 보니 코스는 완벽했다. 허나 여행의 신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지. 여행 정보를 열심히 찾아보던 출국 5일 전 새벽, 혼슈 아오모리현 앞바다에서 규모 7.5 강진이 발생했다는 속보가 떴다. 일본 기상청은 2022년 12월 '후발 지진 주의 정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이를 발령했다. 규모 7 이상의 지진 발생 후 일주일 이내 추가 대형 지진 위험이 높을 때 내려지는 주의보다. 네이버 카페에서는 여행 강경파와 여행 취소파가 다툼을 벌였다. 일본은 항상 지진 위험이 있는 나라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느니, 이번에는 차원이 다르다느니... 게시물을 읽을 때마다 결심이 왔다 갔다 흔들렸다. 카페 내 일본 지역 전문가에 따르면 홋카이도 중에서도 바다를 끼고 있는 하코다테가 제일 위험한데 그 이유는 쓰나미 가능성 때문이다. 입국 장소를 바꾸면서까지 하코다테에 가려던 나로서는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춘과 짧고 굵은 논의 끝에 떠나기로 했다.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취소 불가 호텔 리스트와 합산 금액을 보니 취소할 배짱이 사라졌다. 걱정이 유난해 스페인에서 소매치기만 살피던 아이 앞에서는 지진의 '지'자도 꺼내지 않기로 약속했다.

KakaoTalk_20251222_193623640_28.jpg 하코다테 아침시장

안녕, 쓰나미

이제 와 고백하건대 하코다테를 걷는 내내 쓰나미를 생각했다. 3분 후 쓰나미가 닥쳐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미친 듯이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만약 지금 쓰나미가 닥쳐온다면... 서울에서 여행 온 한국인 40대 부부와 10대 청소년이 뉴스에 언급되겠지. 이 시기에 무모하게 여행을 갔으니 자업자득이라는 악플이 달리고 기사 하단에 이웃 주민 인터뷰가 실릴지도 몰라. 평소에 조금 더 친하게 지냈어야 했나. 인사는 열심히 한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또 걸어 도착한 곳은 하코다테 외국인 묘지. 기독교, 천주교, 러시아정교 등 여러 종교인의 묘지가 있는 곳이다. 아, 하필 묘지라니. 나의 불길한 생각에 너무나 어울리는 곳이라 헛웃음이 났다. 스산하고 거센 바람과 눈앞에 펼쳐진 회색 바다, 골목을 지키고 있던 새까만 고양이만이 함께였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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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여행코스 (30).jpg 하코다테 아침 산책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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