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도시 오타루에서 반나절
필름카메라 같은 도시에 도착하다
아사히카와에서 출발해 한때 나의 인생영화 <러브레터> 촬영지, 오타루에 왔다. 영화 <러브레터>와 <윤희에게>의 도시, 오르골과 르타오의 낭만 도시. 우리에게 허락된 반나절은 메르헨 교차로에 있는 너무나 오타루스러운 오르골당 본점에서 시작된다. 먹음직스러운 스시오르골을 비롯해 만 오천 여개의 오르골을 만날 수 있는 곳. 조성모님의 '가시나무' 뮤직비디오에서 이영애 배우가 일하던 곳. 마치 성당을 연상시키는 성스러운 공간의 청명한 오르골 소리가 여행자의 감각을 깨운다. 오르골당 본점 앞에는 15분마다 증기를 배출하는 증기 시계가 있으니 놓치지 말자. 1912년에 지어진 세계에 2개밖에 없는 증기시계다.
오르골당 본점 맞은편 사카이마치 우체국 시계광장도 많은 창작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스팟이다. 조성모님 <가시나무> 뮤직비디오에서 남자주인공 김석훈이 일하던 우체국이자 이수영님 <꽃> 뮤비에서 하지원 배우가 가방에서 인형을 내려놓는 곳,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 2>에서 이청아님이 눈길에서 자전거를 타던 곳이다.
오래된 필름카메라 같은 도시, 어딜 찍어도 시간이 멈춘 듯한 감각이 느껴지는 도시. 거기다가 새하얀 눈까지 겹쳐지니 그리울 게 없는 사람도 그리움에 취하게 된다. 잠시 머물렀을 뿐이지만 이곳이 왜 그렇게 많은 창작자들의 사랑을 받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오타루를 거꾸로 읽으면
다양한 디저트와 소품샵이 있는 오타루 번화가 사카이마치도리를 걷는다. 이 거리에는 오타루의 자랑인 '르타오'가 많다. 홋카이도에서 제일 유명한 치즈 케이크를 만드는 르타오(LeTAO)는 오타루를 거꾸로 읽은 발음에 프랑스 느낌을 더해서 탄생한 브랜드. 3층에 전망대가 있는 <르타오 본점>을 비롯해 디저트뿐 아니라 파스타와 수프카레를 즐길 수 있는 <르타오 파토스>, 프로마주 데니시 전문점으로 데니쉬 페이스트리와 치즈의 만남에 집중한 <프로마주 데니시 데니 르타오>, 다양한 초콜릿을 만날 수 있는 <누벨바그 르타오 쇼콜라티에>, 포장 전문점 <르타오 플러스>, '역(Eki) 바로 앞'이라는 이름 그대로 JR 오타루 역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에키모 르타오> 등 여길 가도 르타오, 저길 가도 르타오다.
르타오를 만든 회사는 돗토리현에 본사를 둔 '코토부키 스피릿츠(Kotobuki Spirits)'라는 제과 전문 그룹. 르타오 창업자인 카와고에 토구오는 1990년대 후반, 새로운 도전을 위해 홋카이도 오타루를 방문한다. 당시 오타루는 운하를 중심으로 관광객은 많았지만 대표할 만한 '디저트 브랜드'가 없었다. 카와고에는 오타루의 이국적인 거리 풍경에 반해 이곳에 승부수를 던지기로 한다.
1998년 문을 연 르타오가 처음 판매한 평범한 초콜릿과 과자는 큰 반응이 없었다. 카와고에 CEO와 개발팀은 '오직 오타루에서만 먹을 수 있는, 세상에 없던 치즈케이크'를 목표로 연구를 시작해 결국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낸다.
르타오의 목표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맛'으로 단순히 과자가 아니라 오타루에서의 추억을 파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사카이마치도리
사카이마치도리에 있는 이카 타로 혼포에서 오징어구이를, 오비히로의 유명제과점 류게츠 오타루 지점에서 팥맛 아이스크림을, 거리 가판대에서 멘치 까스를, 1905년부터 시작된 가마에이 어묵공장에서 갓 나온 어묵을 먹었다. 눈에 보이는 맛있어 보이는 것들을 맥락 없이 마구 먹어보는 것.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묘미를 만족시키는 사카이마치도리.
조금 걷다 보면 오타루 랜드마크인 운하 근처다. 줄지어 있는 메이지 시대 창고 건물을 뒤로하면 '운하를 따라 걷다 보면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시간이 현재인지, 아니면 수십 년 전의 어느 오후인지 모호해지는 순간이 온다'라고 토로했던 하루키의 문장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운하 크루즈를 타고 있는 여행자와 눈이 마주쳐 서로 손을 흔들었다. 낯선 이에게 손을 흔들다니...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들을 여행은 해내게 한다. 여행의 낭만이란 이렇게 소소한 것.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