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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음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이 정해져 있지만 우리는 잊고 살아간다. 삶이 치열해서가 아니라 잊고 사는 것뿐이다. 그러다 문득 건강을 잃는 순간이 오거나 갑자기 죽음이 문 앞에 턱 하니와 있다면 어느 누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생에 온기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절망감은 이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철학자 김진명의 [애도일기]를 보면 지하철의 이름 모를 사람들과의 낯선 부딪힘, 회사 앞 작은 카페의 쓴 아메리카노 한잔, 내 차 앞에 껴드는 택시 그 흔한 인생의 배경들도 서럽게 다가온다. 그러다 부정하는 일상들을 뒤로하고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속에서 빛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을 거다.
사이사이 지나가는 천진하고 충만한 순간들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생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그래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중립의 시간이 있다. 그 어떤 불행의 현실도 이 불연속적 순간들, 무소속의 순간들, 뉘앙스의 순간들을 장악할 수 없고 정복할 수 없다. 그래서 불행의 현실들 속에서도 생은 늘 자유와 기쁨의 빛으로 빛난다.
[애도일기 김진명 116 中]
몇 해 전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진단을 받고 꽤 오래 아팠다. 육체가 아픈 것보다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에 몸과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의 병을 받아들이기까지 몇 해를 헛헛하게 보냈다. 늘 나만 불행한 것처럼 보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철학자의 말처럼 시간이 흐르고 생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그래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중립의 시간을 미리 알았으면 어땠을까. 그 중립의 시간을 좀 더 일찍 찾았으면 나는 불행한 현실 속에서 자유와 기쁨을 찾을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닌 것 같다. 난 그럴만한 내공도 부족하고 자가면역질환이 당장 죽음의 문 앞에 서 있진 않기에 지금처럼 여전히 현실을 애써 부정하며 살고 있으니. 여전히 그 귀한 시간을 짜증과 그로 인한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삶은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살아간다. 나는 지금 어떤 시선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안다. 내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도 누구에게나 꽃이 피고 지는 풍경이 반복된다는 것을. 내가 바라본 시선의 끝에도 꽃이 핀다는 사실을.
[불행]
행복하지 아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