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pixabay>네가 있는 도시에는 하루쯤 해가 떠오르지 않아도, 네 주위 사방 백리는 세상 어느 곳보다 향기롭게 빛날 거라는, 그런 너를 나는 절대로 잊거나 버릴 수 없다는 믿음 말이다.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너의 착한 눈망울과 여윈 팔목과 맑은 살갗을 '아픔'과 '그리움'이 아닌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인 이은봉이 그의 시집을 통해 내게 묻는다. "무엇이 인간인 너를 키우냐"라고. 그래, 무엇이 인간을 키울까? 아직도 한참은 모자라고 좁은 식견이지만 사람은 물론 죽음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사랑. 그 사랑이 인간을 키우는 것은 분명할 듯하다. 사랑을 자양분으로 하는 성장이 아무리 큰 고통일지라도 나는 감내할 자신이 있다. H. 나는 아직도 너의 방금 감은 머리칼에서 나던 어느 들판 풀꽃의 향기를 잊지 않았다. 아니, 잊지 못했다.
- 나, 아직도 너의 향기를 잊지 않았다 中 -
[작가들의 연애편지. 홍성식 시인]
편지. 두 글자 만으로도 충분히 나에게 설렘을 가져다준다. 글은 말보다 더 진하게 진심을 담아 보낼 수 있으니 연서야 말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교환일기도 쓰고 여럿차례 편지를 나누면서 그때만의 고민과 감정들을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공유하고 그 답장을 기다리는 순간이 기대되고 좋았다. 편지를 쓰는 순간은 선물을 고를 때처럼 오롯이 그 대상에 집중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종종 친구들의 연애편지도 써 주고는 했는데 소소한 일상의 감정과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유치하게 써 내려갔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연인이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요즘은 메신저로 1초 만에 확인한다. 그 마음을 확인하는 게 워낙 순식간이라 그 감정마저 짧은 마음은 둔갑되기도 쉬운 것 같다.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애태우던 마음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그 기다림도 사랑의 한 부분이란 것을 안다. 뒤돌아 보면 편지의 내용도 기억에 남지만 답장을 기다리는 그 기억과 그때의 감정도 많이 남는다.
사랑을 자양분으로 하는 성장이 아무리 큰 고통일지라도 나는 감내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 홍성식 시인은 끝내 부치지 못한 연서를 간직했다. 소설가 김훈은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랑의 경계가 무너져 버려도 그 안에서 사랑을 키워가는 감정은 내 것이니 그마저도 즐거운 일이 아닐까.
오랜만에 줄이 그어진 편지지를 놓고 조명을 켜 본다. 편지 쓸 때는 왠지 환한 형광등보다는 주광색 노란 불빛이 제격이다. 앉아서 생각해 보니 요즘은 손으로 글씨를 써 본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가끔 필사할 때를 제외하곤. 그래서인지 글씨도 낯설게 느껴진다. 사진이든 글이든 기록으로 남기는 순간은 또 다른 '순간 속의 순간'으로 기억되어 나의 자취가 된다는 사실이 참 좋다. 앞으로 종종 나에게든 타인에든 편지를 써야겠다.
[편지]
안부, 소식, 용무 따위를 적어 보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