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by 다른디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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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좋다'라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종종 들었다. 면접할 나이가 되어서는 '프리패스 상'이라 했고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는 '부잣집 맏며느리'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인상처럼 프리패스로 면접에 붙지 못했고 부잣집 맏며느리가 되지도 못 했다. 인상은 아주 지극히 주관적인가 보다. 그 뒤로는 '인상 좋다'라는 말을 귀 담아 듣지도 않았고 잘 듣지 못했다.


스무 살 때였다. 여름 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가 근처의 관광호텔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방 소도시라 하루 종일 있어도 손님이 별로 없었다. 어느 날은 스님이 들러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를 내어드리니 나더러

"인상이 참 좋으시네, 코가 참 좋다. 절대 수술하지 마세요."라고 하며 은은한 미소를 보였다. 아직 젖살이 빠지기 전 볼이 통통할 때라 그냥 하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친구 어머니도 나를 보며 "복 있는 얼굴이네. 얼굴에 절대 손대지 마."라 하시며 그때의 그 스님과 같은 말을 하셨다. '복 있는 얼굴'이 뭔지는 모르지만 좋은 뜻으로 하신 말씀이라는 걸 아니까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는 스스로 주문을 넣었다. 나는 '복 있는 사람'이라고. 이십 대는 뭐든 다 처음 하는 거라 성취도 실패도 그저 재밌게만 느껴졌다. 뭐든 금방 툴툴 털고 잘 웃고 다녔다. 나는 정말 복있는 사람이었다. 그 덕에 인상이 좋게 느껴졌나 보다.


서른이 지나고 서른둘, 서른 중반을 지나 후반이 되었을 때는 이미 성취도 실패도 그저 재밌게 느껴지지 않았다. 성취에는 대가가 없었고 실패에는 지독한 우울감이 동반되었다. 툴툴 털고 일어나 손을 탁탁 털기에는 그것이 유치하다 생각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더 이상 일상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더불어 웃을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스스로 삶에 찌들어 간다고 생각하니 좋다는 그 인상도 함께 찌들어 가고 있었나 보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나에게 '"인상이 좋네요." "복스럽다"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복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얼마 전 <찬실이는 복도 많지>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번 생은 망했다며 집도 없고, 남자도 없고, 갑자기 일마저 끊겨버린 영화 프로듀서 찬실의 이야기가 내 맘에 쏙 들어왔다. 내 이야기 같았지만 찬실이와 나는 다르다는 것을 첫 장면부터 알았다. 찬실이가 복이 많다는 걸. 찬실이는 인생에 갑작스레 닥친 고난과 위기도 그녀만의 방법으로 구김살 없이 잘 헤쳐나간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써서 해."라고 지혜를 나눠주는 주인집 할머니처럼. 일상에 슬픔이 찾아온 순간에도 찬실이는 그녀만의 하루를 애써서 잘 살아낸다. 그 모습이 참 예쁘고 맑게 느껴졌다. 여전히 목표를 가지고 한 걸음씩 내딛는 그녀의 발걸음이 힘차 보였다. '그래, 찬실이는 복이 많지.'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나도 찬실이처럼 복이 많았으면 좋겠다. 복스러웠던 과거는 이미 닫혀있고 오지 않은 내일은 열려있다. 우울하다는 나의 긴 문자에 동생은 '오늘의 좋은 날이 쌓이면 그게 곧 좋은 날이 될 거야'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아직 복 있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애써서 남은 오늘 하루도 잘 보내야겠다.








[복]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행복

배당되는 몫이 많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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