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프리즘을 통해 빛을 통과시키는 놀이가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팔각모양의 프리즘 자체도 정말 예뻤지만 빛이 통과하면서 굴절되어 나타나는 색이 참 신기했다. 나중에 커서야 알았지만 그게 스넬 법칙이라고 하더라. 난 문과니까 여기까지. 여하튼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무지개색을 보여주는 게 어린 나에게도 신비로움으로 다가오고 마법처럼 느껴졌다. 아마 그때부터 나의 유리 사랑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이 눈처럼 날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자리에 연둣빛 새싹이 돋아났다. 계절이 변하는 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인 것 같다. 이러다 금방 더운 여름이 올 것 같아 무섭지만 내가 좋아하는 차를 예쁜 글라스에 마실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니 한 편으로는 행복을 예약해 둔 느낌이다.
유리라고 다 같은 유리는 아니지. 난 열에 강한 내열유리가 좋다. 자신의 정직하고 깨끗한 마음을 티끌 없이 다 보여주면서도 고온에도 급랭에도 깨지지 않고 중심을 잡아주는 그 자태가 영롱하다. 자신의 빛을 유지하며 고유성을 간직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살아본 사람들은 알 테지. 때론 별 것 아닌 사물 하나가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나는 투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타인은 그렇게 느끼지 않나 보다. 나를 보여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내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탓에 핀잔도 들었었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하는 거는 너의 이야기도 듣고 싶기 때문이야."
친구는 내게 충고를 하고 떠났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지만 '대화도 용건만 간단히', '할 만만 하라'는 부모님의 교육 때문인지 아님 기질 때문인 지는 모르겠지만 여간 내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게 쉽지 않다. 시시콜콜한 대화에서부터 관계가 시작된다는 데 내겐 그게 이상하리만큼 어렵다. 내 마음을 다 보이면 나를 쉽게 볼까 그게 두려운지도 모른다. 중심이 바로 서면 나를 보이는 게 좀 더 쉬워질 텐데 아직까지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내가 때론 한심하고 바보스럽다. 나는 투명한 상태여도 암막에 쌓여있나 보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내가 드러내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채고 내열유리그릇에 담아내어 투명한 나의 진가를 알아볼 사람이 있지 않을까.
밥상을 차릴 때도 예쁜 그릇에 담아 먹으면 더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면서 먹을 수 있다. 특히 동치미나 화채 등 시원한 육수가 베이스일 경우 내열유리의 진가는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보기에도 좋은 떡이 맛있는 건 사실이니까. 아이스 티의 계절이 돌아온다. 오는 여름에는 예쁜 내열유리 찻잔에 담아낸 차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내 보이는 연습을 좀 해야겠다.
[내열유리]
열팽창 계수가 낮고 급격한 온도 변화에도 잘 깨어지지 않는 유리.
연화 온도가 보통 유리에 비해서 높은 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