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비안 Dec 22. 2020

수와 세계를 비유하다.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0. 번득이는 생각이 주체를 못하고 뇌 안에서 떠돌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이것으로 글을 써야겠다 생각하지만 그게 참 쉽지가 않더라. 언젠가 일신홀에서 현대음악 연주를 보는 날 음악학자 이희경 선생님과 마주쳤는데, (기억이 조금 문장을 덧붙였을 수도 단어를 바꿨을지도 모르지만)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건네주셨다.

글은 자꾸 써야 해요. 블로그를 해서 완성도가 어떻든 계속 쓰는 훈련을 해야 해. 머리 속에서 번득이는 생각들은 많겠지만 그게 실제로 연필로, 타자로 출력되고 문장들이 이어져서 글이 되는 건 생각하는 것(생각에 머무는 것)보다는 정말 어렵거든요. 밖으로 꺼내지 못하면 똑똑하다고 해도 나누질 못 하니 얼마나 아쉽겠어요?

얼마 전 을지로의 어느 작은 와인 바에서 친구들과 얘기했던 화두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내 대답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멋지고 자리에 있던 친구들도 감탄시켰다고 생각했다.


1. 우리는 아름다움을 어떨 때 느끼는가?

내 대답은 미술이든 음악이든, 정수비로서 느낄 수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다. 내 대답 이전에 황금비율에 대한 얘기를 다른 누군가가 했는데, 그 아름답다는 황금비율의 기초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쉽게 떠올릴 수 있었던 답이다.


2. 황금비의 극한 값

이 세계는 정수로 이루어져 있고, 정수가 아니고서는 세상을 인지할 수 없다. 황금비율이란 피보나치 수열의 인접한 두 수를 비로 삼았을 때 나타나는 값들의 극한이다. 황금비라는 주제에 대해 얘기하려면 대비가 필요하고, 대비는 음과 양, 빛과 그림자, 여성과 남성 등 아주 기본적인 양 극단을 전제로서 얘기해야 한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여 인지되려면 날 인지할 타인이 필요하다. 삶을 부여받은 하나의 개체로서 이를 영위하고 보존하려면 후대의 개체가 필요하고, 그것은 오직 성이 다른 타인과의 생식으로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 다음 하나, 그것이 합하여 둘이 되고 둘에서 비롯된 셋이 이어지고, 이 규칙만을 가지고 수를 나열하는 것이 그 유명한 피보나치 수열이다.

우리가 보통 보편성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수많은 특수가 한데 뭉친 것, 또는 수많은 특수를 설명할 하나의 개념이다. 그러므로 피보나치 수열의 인접한 두 수의 비를 극한을 취하는 것이, 바로 임의의 세상에서 통하는 보편성이라는 것이고 그 값이 바로 1.618...로 이어지는 극한값이다. 이 값 안에는 보편과 특수가 공존하고, 수많은 대칭이 존재하여 조화롭게 느껴지면서, 결국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으로 귀결된다.

르네상스의 미술까지는 이 극한값과 정수의 대칭으로 수많은 작품을 설명할 수 있다고, 짧은 지식의 미술사지만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중세부터 르네상스의 미술은 성경의 장면들을 정말 많이 그려냈고, 그런 그림들 안에는 사람이 한 명에서 셀 수 있는만큼까지 등장한다. 예외적으로 거대한 군상화도 있지만, 그 안에 작가의 특정한 수에 대한 해석이 없을 수가 없다고, 감히 얘기해 본다.



3. 아름다운 소리 : 자연스러운 울림, 함께 울림

소리의 기본이 떨림이라는 것을 알고 진동을 숫자로 표현했을 때, 즉 역시 정수화 한 것인데, 각각의 음이 1초 동안 몇 번을 떨리는 지 확인한 후 두 음간의 관계에서 어떠한 정수비가 나타나는 지 체계화한 것이 두 음 사이의 '음정'을 말하는 것이다. 울림이 하나 일어났을 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함께 울리는 음(공명음)이 가진 비율이 정수비라는 것, 그것이 바로 협화음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옥타브의 진동수 비는 1:2, 완전 5도인 도 - 솔은 2:3, 완전 4도인 솔 - 도는 3:4, 등등... 피아노에서 낮은 건반의 도를 누르면 '배음' 이라고 하는 위의 음들이 모두 동시에 울리는 게 자연공명음이다.

현대음악으로 오면서 정수비로 표현하기 힘든 음과 음 사이의 연속음-미분음들도 등장한다. 지금까지 철저한 계산에 의해서 이성적으로 쌓아온 질서를 기반으로 하여, 정수비로 설명하기 힘든 비합리성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는 방향이 조금 더 현대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4. 의무교육을 통해 알게 된 수 체계는 그런 면에서 상당히 선구적이지 않을까?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인지하기 위해 자연수를 만들고, 존재와 비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0과 음수를 만들어 이것을 정수라고 표현했다. 영어로 integer인 정수는 라틴어에서 '전체'를 의미한다고 한다. 두 정수의 비율을 분수로 나타내고 이 수를 가리켜 유리수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rational number라고 하는 것과 그로 표현하지 못하는 수를 무리수, irrational number라고 하는데까지 생각이 다다랐다.

이런 수 체계의 정립을 어떤 수학자들이 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논의를 통해 이름을 붙였는지도 모르지만 정말 놀라운 발상인 것 같다.


5. 아름다움은 결국 수 체계라는 훌륭한 발명품 안에서 논의할 수 있는 것

황금비 극한값, 원주율 파이, 자연로그 수 e 등 굉장히 특징적인 무리수로 설명할 수 있는 자연현상도 많고, 모든 분야의 지표를 해석할 때 로그 그래프를 사용하기도 하는 등, 상징적인 현상들은 충분히 정수와 정수로 만들어진 유리수의 세계 밖에서 설명되어 왔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붙이기만 한다면 무리수는 만들어낼 수 있다. 소수점이 무한해야 한다는 단점 때문에 우리 수명이 그를 완성시키지는 못하겠지만... 성소수자도 사회취약계층도, 이런 예를 떠나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빛을 못 받는 수많은 사람들도 하나의 완전한 개체로 나타나는 날이, 아주 느리지만 오게 될 것 같다.



이런 관점을 이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으로 확장시켜 보자.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형태의 삶과 사랑이 있고, 그들의 감정과 그들 사이의 관계가 있다. 우리에겐 인간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사람들의 범주가 여전히 넓지만 그들을 받아들일 인권적인 논의는 '과연' 충분할까? 수많은 개인을 한데 묶어 특정화한 후, 비합리적인 시선과 증오가 만연한 상황이다. 목소리를 못 내고 빛을 받지 못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완전한 개체로 나타나는 날이, 아주 느리지만 오게 될 것이다. 인류의 가장 큰 차별점인, 지금까지 쌓아온 기존의 지식과 지혜의 부피를 늘려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고 상생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현대로 오면서 황금비율로 설명하기 힘든 인상주의와 해체주의의 미술들, 정수비로 얘기할 수 없는 연속음-미분음과 불협화음은 지금까지 쌓아온 체계성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접근하여 비합리성을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테넷 1회차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