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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Jul 24. 2022

보이는 이름 <오늘의 시>

비 오는 날 서울 지하철에서 읽는 시

보이는 것이 다

일리 없다


비가 오는 전철역

에스켈레이터 앞에 쪼그려 얹아

물기를 닦는 이의 이름은 김명(明)자이다


재활용품 일반쓰레기

사이에 쪼그려 앉아

남은 생을 찾는 이의 이름은

이형복(亨福)이다


피로로 휘둘리는 전철 칸

겨우 난 한 자리를

내어놓는 이의 이름은

당신이다


보려고 하면 다

보일 것이다

그 이름들


-


• 출근길부터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종종걸음으로 내려간 지하철 입구 에스켈레이터. 없는 자리를 찾아 쪼그려 앉아 있는 분이 보였다. 역사를 청소해 주시는 분 같았는데(우리 사회의 유니폼은 대게 그런 기능을 하니까) 왜 내가 흘린 물기를 그리고 필연적으로 몇 시간 동안 흘러내릴 물기들을 닦는 것은 저 무릎의 몫인가 싶었다.

전철 문이 닫히고 움직이고. 멈춤과 진행 사이 찰나에  사람을 보았다. 그의  생애가 담긴 손수레 하나를 옆에 두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 내릴 수도 내려서도  되는 출근길에 나는 무엇을 망설이는 걸까. 마음껏 무기력해지고 만다.

• 이래저래 피곤한 마음이 어깨를 타고 내려왔다. 한 정거장을 남기고서야 앞자리가 비었고 멀뚱히 서 있는 내게 어서 앉으라고 손짓을 해주시는 분이 계셨다. 드디어 오늘의 첫 웃음이 났다. “저는 바로 내려서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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