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반딧불이

태국 방콕, 코타 키나발루

by 호림

해가 뉘엿뉘엿 지고, 사위가 어두워지자 반딧불이가 맹그로브 수풀 사이를 유영하며 하나 둘 빛을 발했다. 이 나무 저 나무에 매달려 반짝반짝 옅은 빛을 내기도 했고, 연둣빛이 선명한 강렬한 빛을 뿜기도 했다. 사람들이 연신 감탄하는 동안 가이드는 반딧불이를 계속 불러 모았다. 반딧불이는 청정지역에서만 사는 생물이기 때문에 반딧불이가 서식한다는 것은 그 지역의 깨끗한 환경을 대변한다. 반딧불이(반딧불이도 좋긴 하지만 긴팔, 긴바지, 모기퇴치제는 필수)는 작지만 이곳 저곳에서 무리로 반짝이기 때문에, 실제로 본 사람들은 대개 ‘크리스마스 트리의 꼬마전구’같다고 입을 모은다. 누구나 유년시절의 소슬한 겨울 추억을 환히 밝히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추억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은가.


(중략)

그 반딧불이 밖에는

줄 것이 없었지


너무나 아름답다고,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해 줘서

그것이 고마웠지

어머니는 햇감자밖에 내놓지 못했지만

반딧불이로 별을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자란 고향에서는

반딧불이가 사람에게 날아와 앉곤 했지

그리고 당신 이마에도

그래서 지금 그 얼굴은 희미해도

그 이마만은 환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지

(류시화 <반딧불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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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타 키나발루와 달리, 태국 암퍼와 수상시장의 반딧불이 투어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다만, 해가 진 수상시장의 모습은 운치가 가득했다. 보트를 타며 길 위의 사람들을 바라보니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바로 옆에 존재하는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길 위의 사람들에게 갈 길이 있듯이, 물 위의 사람들은 물 위의 길을 가야 한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나. 분명 같은 세상인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는 각자 다른 길로 나아간다. 그래서 이따금 만나면, 반가우면서도 이미 서로가 예전과는 다름을 안다. '다음에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하며 다시 제 갈길로 떠난다. 대학교 교정에는 반딧불이들이 살아서 시험 전날 도서관에서 밤새워 공부하고 내려오다보면 미미한 반딧불이 한두 마리가 어둠 속에서 빛을 냈다. 그러면, 그 빛이 온세상을 밝게 해주는 것처럼 우리는 웃었다. 그때 우리는 좁은 취업문을 한탄했었나, 세세히 기억나진 않는다. 함께 공부하고 새벽녘에 요깃거리를 찾아서 다같이 교문을 나서던 우리는 제각각의 어른이 되었다. 누군가는 좀 더 빨리 성공가도에 들어섰고, 또 누군가는 너무 빨리 엄마가 되어 신랑을 따라 외국으로 이주를 했다. 못다 전한 안부가 수북히 쌓여 있다.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는 길 위를 걷고 누군가는 물 위를 걷고 있는 차이다. 우리는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삶들을 씩씩하게 걸어 가고, 그래야 한다. "왜 저렇게 살까?" 길 위의 삶을 물 위의 사람이 함부로 판단해서도, 물 위의 삶을 길 위의 사람이 제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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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가 완벽하게 어두운 곳에 다다랐을 때, 야행성 생물의 미세한 불빛이 반짝인다. 그 불빛은 아주 가냘퍼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제대로 찍을 수 없다. 카메라 플래시는 이 예민한 야행성 곤충을 달아나는 데 효과가 있을 뿐이다. 나뭇가지에서 이따금씩 반짝 반짝 크리스마스 트리의 꼬마전구처럼 반짝이던 반딧불이는 훅 하면 민들레처럼 멀리 멀리 퍼질 것처럼 유유하고 가볍다. 기술의 발달 속에서도 기계는 담지 못하는 모습도 아직 존재함에 약간의 안도감도 드는 건 왜일까. 배의 모터 소리가 요란했지만, 쾌속으로 달리는 배 위에서 시원한 강바람이 오후 내 바삐 돌아다니던 피로를 쓸어주고, 늦은 저녁 하나둘 문을 닫고 있는 시장의 모습도 구경하며 더위도 식히고 지친 다리도 쉴 수 있었다. 선선한 강바람이 우리를 뭍에서 물 위로, 물 위에서 다시 뭍으로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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