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디브, 괌
괌의 아산 전망대(Asan Beach)에서 탁 트인 전망이 펼쳐진다. 괌 바다는 뚜렷한 구분이 있다. 어느 화가의 캔버스 위에서 철저히 계산적으로 물감을 양분해서 풀어놓은 것처럼 인공적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앞쪽은 에메랄드빛, 먼 바다는 짙푸른 색으로 색이 구분되어 있다. 위대한 자연이 괌 바다에 빗금을 그어놓은 것처럼. 나팔꽃이 점점이 피어 있고, 상쾌한 바람이 면 원피스의 자락을 펄럭이며 소리를 낸다. 돌틈 사이로 게딱지를 입은 조그만 소라게들과 조그만 생명체들이 오고간다. 바다 내음은 짙다.
밥을 굶는 일이 허다해지고, 바닷가의 해초와 게를 잡아 끼니를 연명하는 날이 많았다. 두 명 겨우 들어갈 수 있을마한 비좁은 방에서 네 식구가 함께 살아야 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중섭은 생계가 어렵자 바닷가의 해초, 게를 잡아 반찬으로 먹어야 했다. 이중섭은 이때 너무 많은 게들을 잡아먹은 미안함 때문에 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잘 있었니? 오늘 엄마한테 온 편지에는 요즘 태현이가 운동회 연습으로 새까매져서 집에 온다고?… 태현이의 건강한 모습을 그려보며 아빠는 기쁜 마음으로 꽉 차 있다. 지든 이기든 상관 없으니 용감하게 싸워라. 아빠는 오늘도 태현이와 태성이가 물고기와 게하고 놀고 있는 그림을 그렸단다. <이중섭의 편지> 中”
어느 날 태현, 태성 두 아들이 세발 자전거를 갖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이중섭은 세발 자전거를 그려 편지를 보내거나 꼭 자전거를 사주겠노라 약속의 말을 몇 번이고 편지에 담았지만, 그 소망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이중섭은 1952년, 사랑하는 가족을 일본에 보낸지 4년 만에 간암으로 사망하게 된다. 이중섭의 '두 아이'라는 작품에서는 '절대 헤어지지 말자'며 서로의 등을, 머리를 꼬옥 안고 있는 두 아이의 모습에 이중섭의 사무치는 그리움이 고스란히 투영된다.
“나의 태현아, 건강하겠지, 너의 친구들도 모두 건강하니? 아빠도 건강하다… 아빠가 엄마, 태성이, 태현이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아빠가 앞에서 황소를 끌고 따뜻한 남쪽나라로 함께 가는 그림을 그렸단다. 그만 몸 성해라.
<이중섭의 편지> 中”
<해와 아이들>을 보노라면 마음 속에도 밝은 해가 뜨는 기분이 든다. 밝게 웃는 둥글고 큰 해와 그 해 앞에서 재롱을 부리듯, 각기 한껏 장난스러운 몸짓으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따뜻한 그림이다. 아이들은 밥을 배불리, 든든히 밥을 먹었는지 배에 살집이 있고 표정과 손발은 졸린지 나른해보인다.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기 힘들 만큼 가난하여 화가는 유독 배 부분이 살집이 있는 모습으로 아이들을 그리지 않았을까. 이중섭은 서신을 통해 아내 두 아들과의 각별한 사랑을 주고 받지만 가난 때문에 떨어져 살아야 했다. 가난해서 담배갑의 은지에 그릴 수밖에 없었던 그림이 이렇게 따뜻하다니.
문득 궁금하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생이별 속에서 그린 은지화의 그림 속에는 어찌하여 가난과 이별의 절망 대신, 이토록 따스하고 행복한 '포옹'만이 가득한가. 그림을 그릴 때만은 아내나 아들들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되살아나 언제고 곁에 있는 것 같은 충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