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엄마

이탈리아 로마

by 호림


0007011_waifu2x_photo_noise2_scale_tta_1.png 21세기 로마 거리 위에 그려지는 라파엘로 '의자의 성모'


한 무명의 화가가 그림이 프린트되어 있는 종이 한 장을 들고 바닥에 모사하고 있는 작품은 바로 라파엘로의 <의자의 성모>라는 작품이다. 성모자의 그림은 유명 화가들의 단골 주제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고개까지 살며시 기울여 품에 안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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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의자의 성모>에서 성모 마리아가 은은하게 먼지는 미소로 보물처럼 아기 예수를 애지중지 안고 있다. 이 그림을 보며 모성애를 떠올리긴 어렵지 않다.


하루는 엄마가 통화 중에 눈물을 보였다. "우리 딸, 힘들지? 우리 딸 힘든 거 아는데, 엄마가 또 힘들게 했지?"하며 흐느꼈다. 그 눈물은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그런 눈물이었다. 미안함, 실망감, 안쓰러움 같은 감정이 한데 뭉뚱그려져 있었다. "네들을 낳았을 때 엄마는 어렸고, 뭘 알았겠어. 아빠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고, 너희들을 굶기지 않겠다고 할머니 손에 맡겨놓고 가은까지 기차 타고 가서 장날에 양말 내다팔고 그랬어. 하루종일 팔아야 몇 푼 되겠어. 양말 짐은 어찌나 무겁고, 기차역은 얼마나 먼지, 발이 부르트도록 걸으며 다녔어. 그러고 집에 오면 며칠이고 밥도 굶었어. 딴은 단식투쟁으로 시위를 한 건데 그걸 누가 알아줘. 그래도 밥 굶기지 않고 키웠어. 일구월심으로 키웠어." 엄마는 언제가부터 술을 마신 날은 전화를 쉬이 끊지 않았다. 그 동안 속으로 삼켜 온 속엣것을 모두 토해야 전화 통화도 끝났다. 엄마 얘기를 들으면 우리집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불행해야 마땅했는데, 나는 행복했다. 엄마가 행상을 나가는 일을 관둔 후 식당을 차리게 됐고, 우리는 그 식당의 단칸방에서 한가족이 살았다. 그러다가 우리가 크면서 단칸방이 비좁아지기 시작하자, 아빠는 저녁마다 가게 테이블을 밀쳐놓고 바닥에 코발트 블루의 천막과 전기장판과 이불을 두툼하게 깔았다. 어떤 날은 테이블 의자를 이어붙여서 거기서 자기도 했다. 그 위에서 우리들은 쿵쿵 뛰며 잘도 놀았다. 집이 매일 캠핑장으로 변신하는데, 아이들에게 그보다 즐거운 일을 바랄 수 있을까. 난방도 되지 않는 찬 바닥에 그대로 자리를 깔았지만, 따뜻하게 틀어놓은 전기장판과 숭늉이 김을 내는 주전자가 올려진 난로 때문인지 추위라곤 모르고 자랐다. 불행할 모든 악조건 속에서, 대체로 행복했다. 그러니, 우리 엄마는 그 세월에 대한 넋두리를 할 자격이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엄마의 끝나지 않는 전화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불만을 제기하다가도, 재빨리 사과한다. '엄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라며 꼬리를 내린다. 아이를 키우며 이전에는 몰랐던 생경한 감정과 경험을 느낄 때마다 '엄마도 나를 키울 때 이랬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엄마는 화가 나면 '저거 낳고 뭐가 좋다고 미역국을 먹었나몰라. 참기름 발라서 뱃속에 도로 주넣어야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었는데, 아무 것도 몰랐던 10대때는 그 말이 아무렇지 않았고, 배웠다는 20대때는 과학적이든 의학적이든 참기름을 발라서 뱃속에 다시 넣는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30대때는 어떨 땐 참기름을 바르든지 어떻게 하든지 정말로 엄마 품속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예전처럼 "엄마, 봐봐, 세상이 날 아프게 했어" 고자질도 하고 응석도 마음껏 부리며 말이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박시교


그리운 이름 하나 가슴에 묻고 산다

지워도 돋는 풀꽃 아련한 향기 같은


그 이름


눈물을 훔치면서 되뇌인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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