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자이살메르
누구나 반복적으로 따라다니는 꼬리표 같은 말이 있다. “너는 사막에 떨어트려 놓아도 살아남을 사람이다” 같은 말. 그 말대로 사막을 걸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막에 떨어트려 놓았을 때 도무지 살아남을 부류가 아님을 발견했을 뿐이다. 문제는 신기루였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목마름으로 탈진하기 전에, 보다 먼저 신기루에 홀렸고, 신기루에 이끌린 대가는 혹독히 치러야 했다. 그게 인생이었다. 낙타가 사막 위를 걷는 걸음이 한가롭게 보이는 것은 멀리서 볼 때뿐이다. 사막의 모래야말로 걸어보기 전엔 고통을 알 수 없다. 발이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고 한발 내딛기도 힘들다.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모래바람에는 숨이 턱턱 막혔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오아시스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말한 생텍쥐페리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나는 사막에서 허덕이는데, 당신 때문에 사람들은 이게 개코 엄살인 줄 알지 않느냐. 오아시스가 있긴 어딨어?”라고 말이다. 인생을 향해 반항하고 싶었다.
인도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 중의 하나는 자이살메르 사막에서의 낙타 사파리였다. 그곳에서 오아시스를 찾았지만, 오아시스는 정착점이 아니라 '교차로'라는 걸 알았다. 오아시스는 또 다시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들러 가는 곳인 것이다. 인생 역시 고등학교 졸업, 결혼, 입사 등을 '불행 끝, 행복 시작', 즉 종착점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임을 깨닫게 된다.
1박 2일 사막 사파리투어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밥을 먹을 땐 일단 미세한 모래알이 씹히기까지! 낙타몰이꾼들은 식기를 모래로 박박 문질러 설거지를 하니 모래 알갱이를 그대로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먹는 것부터, 불쌍한 엉덩이와, 잠자리까지 불편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낙타 등에 올라 유유히 여행하는 기분은, 즐겁다. 오랜 시간 낙타를 타다 보니 둔부의 통증은 피할 수 없다. 저녁밥으로는 자신이 이빨이 건치인지 아닌지 알게 되는, 질긴 염소 고기 바비큐를 먹었다. 염소고기를 나무에 매어 놓고 손질하는 적나라한 모습도 슬쩍슬쩍 볼 수 있었다. 장작에 불을 붙여 놓고 둥글게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르고, 불을 쬘 때까지만 해도 참 낭만적이었는데 염소 고기를 우물거리는 순간 '생존'이 되었다. 1박 2일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었던 '람'. 헤어질 땐 눈물이 났다. '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르던 소년은 지금쯤 성년이 되었겠지. 람과 꼭 닮은 람의 아버지.
사막에서 지는 해를 본 적 있는가?
낙타몰이꾼들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사막 위로 해가 지기 시작했다. 생애 처음으로 사막을 밟아보는데다, 사막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보는 건 더더욱 처음. 처음에는 신이 나서 사막 위를 뛰어 다니다가 푹푹 빠지는 모래 사막을 걷는 게 금세 지쳐 갔다. 모래사막 위에 척 누워 보기도 했다. 부끄러울 게 뭐가 있으랴. 바짓속에 모래는 까끌거리지만, 누가 뭐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막 위로 지는 해를 0.00001초 정도 잡은 척 해봤다.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테니까.
해가 진 후 모래 위에 이부자리를 펴고,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을 이불 삼아 누운 잠자리는 극심한 일교차로 추웠지만 낙타몰이꾼의 노랫소리, 멀리 매어 놓은 낙타들의 방귀 소리를 자장가 삼아 별이 빛나는 하늘을 이불 삼아 잠이 들었다. 생애 처음으로 별똥별 하나가 재빠르게 지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낭만을 빙자한 무한도전 정신.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어느 미래에 영화 <매드맥스> 시리즈처럼 살아남은 인류들이 척박한 사막에서 적자생존의 삶을 이어갈 날이 올 수도 있겠단 걱정이 순간 들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더없이, 낭만적인, 사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