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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Aug 25. 2021

세상에서 소리가 사라진다면?


1962년 세상이 이후 나아갈 방향에 영향을 미친 책 한 권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Silent Spring)』입니다. 이 책에서 카슨은 합성 살충제를 비롯한 독성물질로 인해 생태계 먹이사슬이 끊어지고 수많은 생물들의 멸종이 가까워진 순간을 우리는 눈이 아닌 귀로 먼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상 모든 생명체가 절멸하는 순간일지라도 우리 눈에 비치는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대지는 변함없을 테지만 변화는 눈이 아니라 귀로 먼저 느껴질 겁니다. 찌르르 울어대는 풀벌레들과 와글거리는 개구리들의 소리가 사라진 공간, 매미의 시끄러운 합창과 카나리아의 감미로운 지저귐이 들리지 않는 곳, 까르륵 웃어대는 아이들의 소리 대신 무거운 적막만 가득한 고요함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확연히 느끼게 만들 겁니다. 




‘소리’는 삶에서 언제나 디폴트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깜짝 놀랍니다. 반면 갑자기 사방이 고요해지면 공포감이 들죠. 사람은 시각의존성이 큰 동물이기에 평소에는 청각의 중요성을 쉽게 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리는 사방을 가득 채울 때보다 완전히 사라졌을 때 더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그건 우리 삶에서 소리는 늘 디폴트이기 때문입니다. 소리는 ‘물이나 공기 같은 매질의 진동을 통해 전달되는 파동’이라 정의되므로 진공에서 살 수 없는 생명체들은 소리 속에서 태어나 소리에 둘러싸여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인지 소리를 감지하는 청각기관인 귀는, 눈꺼풀이 있어 언제든 인위적으로 시각적 정보를 차단할 수 있는 눈과는 달리 스스로는 감각을 차단할 수 없고, 눈을 돌려 시선을 맞춰야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방향성에 제한을 받지도 않습니다. 1/24초 이하인 경우 연속적인 동작으로 인식하는 눈과는 달리 귀는 몇 밀리초(1초의 100만분의 1)의 차이도 인식할 정도로 예민하며, 심지어 잠을 잘 때조차도 귀는 열려 있을 정도입니다. 잠을 자다가 모기의 작은 날갯짓 소리에 깨어날 정도니까요.





소리, 존재의 표현 수단


생물들은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로 인해 소리를 내지만, 때로는 그 소리에 다양한 의미를 담곤 합니다. 또한 자신들의 존재감을 소리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방울뱀은 꼬리를 흔들어 차르륵거리는 소리를 냅니다. 방울뱀의 꼬리에는 안쪽이 텅 빈 딸랑이 같은 조직이 있는데, 이는 허물을 벗을 때 남은 케라틴 조각들입니다. 이것이 꼬리 근육의 떨림에 의해 서로 부딪치고, 텅 빈 내부 공간에서 증폭되어 특유의 차르륵거리는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방울뱀 꼬리 근육은 1초에 평균 50회 진동하며, 최대 3시간 동안이나 끊임없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방울뱀의 소리 듣기


방울뱀 by Tigerhawkvo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이들이 소리를 내는 이유는 늘 땅에 붙어 기어 다니기 때문에 커다란 짐승들에게 밟히지 않기 위해 경고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평소 쉴 새 없이 소리를 내는 방울뱀도 사냥을 할 때는 꼬리를 흔들지 않습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먹잇감들이 도망가버릴 테니까요.








눈에 띄거나, 잡아 먹히거나


특별히 집중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의 특성은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이성에게 자신을 어필하는데 매우 유용합니다. 소리로 이성에게 존재감을 뽐내는 동물들은 한여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매미, 가을이 온 것을 알려주는 귀뚜라미, 연못을 소리로 가득 채우는 개구리, 아름답게 노래하는 카나리아 등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짝을 찾는 이들의 울음소리는 간절하고도 우렁차서 사람들의 귀에도 잘 들립니다. 또한 그들을 잡아먹는 천적들의 주의를 끌 수도 있습니다. 


많은 동물들은 천적을 피하기 위해 주변과 자신을 비슷하게 맞춰 눈이 띄지 않도록 하는 보호색 전략을 갖도록 진화되어 왔습니다. 물가 풀 속에서 사는 청개구리가 푸른색인인 것도 이 때문이죠. 보호색은 천적을 피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짝짓기 상대에게 자신을 어필하는 데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개구리들은 짝짓기 철이 되면 큰 소리로 울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하지만 짝짓기도 목숨이 붙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이들은 포식자의 눈길은 피하면서 이성에게 어필하는 전략을 발전시켰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한꺼번에 우는 것입니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라는 동요 가사처럼 말이죠. 



실제로 짝짓기 철의 개구리는 맨 처음 한 마리가 노래를 시작하면 즉시 연못가의 모든 개구리들이 일제히 합창을 시작합니다. 이럴 경우 천적인 백로나 왜가리같은 새들의 귀에는 제일 처음 울기 시작한 개구리의 소리만 들리고 나머지는 잘 들리지 않는 ‘선행음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니 가장 먼저 울기 시작한 개구리는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어 위험해지겠지만, 나머지 개구리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기에 마음 놓고 한꺼번에 합창을 시작하는 것이죠. 흥미로운 점은 이성 개체들은 선행음 효과를 무시하고, 그 시끄러운 합창 속에서도 자신이 선호하는 짝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맨 처음 울기 시작한 개구리는 많이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짝짓기 철이 되면 개구리들 사이에는 눈치싸움이 이어집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눈치만 보게되면 이성 개체들이 흥미를 잃고 다른 연못으로 떠날 수도 있으니 누구든 먼저 나서야만 합니다. 그래서 개구리들은 주로 천적인 새들이 쉬는 밤 시간대를 노려 합창을 시작합니다. 여름밤 연못가 개구리들의 합창은 이런 다양한 생존 전략의 결과입니다. 선행음 효과를 이용한 합창은 개구리뿐만 아니라 매미도 흔히 사용하는 전략입니다. 





매번 새로운 노래를 들려줘


개구리와 매미의 떼창과 달리 카나리아는 매번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카나리아는 사람과 달리 발성기관이 두 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발성기관은 서로 다른 소리를 냅니다. 카나리아 수컷들은 두 개의 발성기관을 초당 16번이나 교차하는 기교를 통해 섬세한 노랫소리를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우는 방법은 쉽지 않아서, 대개 카나리아는 나이 든 ‘스승새’가 어린 ‘제자새’에게 노랫가락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카나리아 간 사제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 스승새가 암컷에게 세레나데를 불러주며 유혹할 때 제자새가 끼어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스승새에게 노래를 배운 제자새는 스승이 가르쳐 준 가락을 이리저리 편곡하여 자신만의 가락을 만들어냅니다. 이 과정에서 카나리아에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카나리아의 뇌에는 노랫가락을 만들어내고 저장하는 특수한 부위인 HVC(higher vocal center)가 있는데, 이렇게 새롭게 편곡된 곡조를 기억하기 위해 새로운 신경세포(뉴런)가 자라나는 것입니다. 카나리아 수컷의 노랫소리 중에는 암컷이 매우 흥미를 보이는 ‘포인트 가락’이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암컷에게 확실히 어필하기 위해서는 기본 가락에 자신만의 개성을 더해 새롭게 편곡을 해야 합니다. 카나리아 수컷은 처음에는 노래를 스승에게 배우지만, 결국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노래를 저장하는 새로운 신경세포가 자라나며, 그의 개성으로 자리잡습니다. 그리고 암컷들은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노래에 훨씬 더 흥미를 보입니다. 그러고 보면 주제와 변주는 인간이 즐기는 문학과 예술만의 전유물은 아닌 셈입니다.




사람, 말을 하는 동물


동물들이 소리를 내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근본은 ‘의사소통’을 위해서입니다. 그건 ‘나 여기 있어!’를 외치는 방울뱀이나 ‘내 노래 멋지지?’라고 뽐내는 카나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말’을 하기 때문에 단연코 두드러져 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성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줄 아는 능력을 타고나며, 78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구사할 줄 아는 언어의 개수는 7,102개에 달합니다. 각각의 언어마다 포함된 단어를 감안해보면 인간의 언어 구사 능력은 정말로 놀라울 정도입니다. 인간의 아기는 언어 구사능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하지만 곧바로 말을 하지는 못합니다. 아기가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수년의 시간이 필요한데 이는 지능의 문제라기보다는 몸의 문제입니다. 몸에서 공기가 통하는 길은 기도(氣道)입니다. 기도의 윗부분을 후두(喉頭)라고 하는데, 후두 안쪽에 두 개의 근육으로 이루어진 성대가 있습니다. 오른쪽 성대와 왼쪽 성대는 평소에는 서로 떨어져 있어서 공기가 자유롭게 드나들기에 평소 숨을 쉴 때는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식 발작으로 인해 기도가 부어오르면 성대 근육 사이의 공간이 좁아져 쌕쌕거리는 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말을 한다는 것은 성대의 근육을 움직여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두염에 걸리면 성대를 제대로 조절할 수가 없어 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성대를 제대로 조절하기 위해서는 혀와 근육과 설골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갓 태어난 아기는 목이 굉장히 짧습니다. 그래서 혀와 설골, 후두가 거의 같은 선상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성대를 제대로 조절할 수가 없습니다. 성장하면서 목이 길어지면 혀-설골-성대가 위쪽부터 차례로 위치하게 되어 이들을 세밀하게 조절하기 수월해집니다. 이에 따라 말도 유창해지고 발음도 섬세해지지요. 성대 역시도 일종의 근육이기에 훈련에 따라서 조절하는 능력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사람과 유전체의 대부분을 공유하는 침팬지가 아무리 훈련을 해도 인간처럼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애초에 해부학적 구조상 목이 짧아 설골과 후두가 거의 같은 위치에 있어 정밀한 조절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너와 소통하고 싶어 


그럼 동물들은 사람처럼 자유자재로 성대를 움직여 말을 하지 못하니 의사소통을 못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꼭 성대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낼 수 있고, 이를 조절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소리를 통한 의사소통은 가능합니다. 대표적인 동물이 돌고래입니다. 돌고래는 호흡공과 멜론을 이용해 의사소통을 합니다. 호흡공은 돌고래가 숨을 쉴 때 사용하는 기관이며, 멜론(Melon)은 돌고래 이마 쪽에 위치한 지방이 가득 찬 말랑말랑한 주머니입니다. 돌고래는 호흡공을 조절해 소리를 발생시키고, 이 소리를 멜론을 이용해 증폭시켜 멀리 보냅니다. 돌고래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2,000~20,000Hz에 이르는 높은 음역대여서 사람의 귀로는 대부분 들을 수 없고 기껏해야 휘파람 소리같은 높은 소리로 들릴 뿐이지만, 돌고래는 초음파를 통해 단어뿐 아니라 간단한 문장구조까지 만들어내 주변의 동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돌고래가 내는 초음파 휘파람의 가짓수는 아기였을 때는 53개였다가 성체가 되면 102개로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는 돌고래가 성장하면서 말을 배워 나간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서로 다른 지역에 사는 돌고래들은 약간씩 다른 휘파람 소리를 내는 등 지역에 따라 언어에도 차이가 있으며, 심지어 양쪽의 휘파람 소리를 모두 낼 줄 아는 일종의 바이링구얼(bilingual) 돌고래도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 정도로 정교한 의사소통을 할 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인지발달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돌고래들을 ‘비인간 인격체(non-human person)’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생물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갑니다. 그건 청각이 제어할 수 없는 감각이라는 특징과도 맞물립니다. 귀는 눈처럼 감을 수 없고, 청각은 후각처럼 쉽게 무감각해지지도 않습니다. 청각은 늘 열려 있고, 늘 지각되는 감각이기에 소리는 세상에 자신을 어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됩니다. 그렇기에 소리는 곧잘 한데 뭉쳐 소음이 되기 쉽습니다. 세상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존재들은 소리를 냅니다. 그 다양한 소리들이 시끄러운 소음이 아니라 멋지게 어우러진 하모니로 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소리의 과학-청각은 어떻게 마음을 만드는가?』, 세스 호로비치 지음/노태복 옮김, 에이도스, 2017

・「청개구리가 큰소리로 짝 찾으며 천적 피하는 비밀」, 조홍섭, 한겨레, 2020/05/13

・「Prey Exploits the Auditory Illusions of Eavesdropping Predators」, Henry Legett, Clair Hemingway, Ximena Bernal, The American Naturalist, vol 195 No 5. 2020

・「Birth of projection neurons in the higher vocal center of canary forebrain before, during, and after song learning」, Arturo Alverz-Buylla, Marga Theelen, Fernando Nottebohm, PNAS, vol 85, 1988

・「The world’s languages, in 7 maps and charts」, Rick Noack, Lazaro Gamio, The Washington Post, 2015-04-23

・「돌고래는 휘파람으로 말한다?」, 이정아, 수학동아, 2016년 7월호

・「Dolphins deserve same rights as humans, say scientists」, BBC, 202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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