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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2025.7

by JJ

남도(南道)의 섬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장모님을 모시고 함께 갈 계획이었으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셔서 함께 가지 못했다. 돌아보면 내가 어릴 적엔 가족 여행을 가는 집이 많지 않았다. 부모님들은 항상 바쁘셨고 가끔 시간이 날 때도 여행을 다닐 만큼 한가함을 누릴 여유는 없었다. 부모님과의 추억은 어머니와 시장에 가서 옷을 산다던가,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장기판으로 장기를 두는 정도였다.


그게 너무 아쉬웠던지 나는 아이들과 한 풀이하듯이 여행을 다녔다. 여유롭진 않았지만 형편에 맞게 없으면 없는 데로 여행을 다녔다. 산, 들, 강, 섬, 서해, 동해, 남해, 해외, 워터파크, 캠핑, 미술관, 동물원, 야외수영장, 실내수영장, 과학관, 고양이 카페, 놀이동산, 도서관, 스키장, 스케이트장, 썰매장, 롤라장, 노래방, 주말농장, 계곡, 인라인, 자전거, 스카이워크, 집라인, 카누, 불꽃놀이, 래프팅, ATV, 요트, 빠지, 수상레저, 박물관, 축구, 농구, 배구, 탁구, 야구.......


장모님은 87세다. 아마 앞으로 건강이 더 좋아지실 것 같지는 않다. 여행을 다니시기엔 이제 무리인가 보다. 주변에 보면 3대가 함께 여행을 다니는 집이 있다.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부모님과 그런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늘 아쉽다. 돈만 많다고 만들 수 있는 풍경이 아니기에.




직장인의 여행은 제약이 많다. 빨간 날과 휴가시즌에 여행을 가야 한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하다. 숙소 예약은 물론이고 막히는 도로를 피하기 위해 고도의 전략을 짜며 사투를 벌인다. 동트기 전 새벽이나 야밤에 이동해야 한다. 이번 여행에도 왕복 15시간의 랠리를 무사히 마쳤다.


고속도로 운전이 쉬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기술을 부릴 일은 없어 쉬워 보이지만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다. 난이도가 쉽다고 쉬운 것이 아니다. 일도 마찬가지다. 어려워서라기보다 정신을 차리지 않아서 대형 사고가 터진다. 3시간, 4시간 운전 시간이 길어질수록 집중력이 떨어진다. 졸려도 차를 멈출 수 없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여행은 나의 여행이 아니고 아이들의 여행이다. 24시간 아이들을 모니터링해야 하고 그들을 1초도 놓쳐선 안 된다.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쯤 되니 비로소 부모도 여행 기분을 느낀다. 함께 물놀이를 하며 물을 즐기고 일출과 일몰을 감상한다. 뷔페에 가면 챙겨주지 않아도 알아서 갖다 먹고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면 물과 숟가락을 챙길 줄도 안다.


국, 영, 수는 나보다 훨씬 잘하고 기술 습득도 빠르고 문명혜택도 풍족히 누린다. 똑똑해지고 아는 것도 많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서 밥벌이는 잘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몸이 약해서 직장생활은 잘할까? 걱정이 된다.


잘 살겠지.....




일종의 모멘텀(momentum)이라는 것일까? 집에 있다 보면 계속 집에 있고 싶다. 그런데 밖에 나오면 기분이 달라진다. 한 번 나가면 또 나가고 싶다. 옛날 어른들은 "남자는 놀아도 나가서 놀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아무래도 나가면 한 개라도 더 듣고 보는 것은 맞다.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서 남자도 집안이 메인 무대다. 남자들도 가사, 육아, 요리를 잘한다. 애를 낳을 순 없지만 애를 낳은 엄마보다 아빠가 더 잘 키우기도 한다.


결혼을 하고 가정에 올인을 하며 약간은 억울한(?) 감정이 있다. 가정이 항상 1순위여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 문득 쓸쓸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나의 부모님에게 나도 사랑을 받았으니, 나도 아이들에게 사랑을 돌려주어야겠지만 가끔은 나도 내 것이 있고 싶다. 좋은 차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온전히 내 것을 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마누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안다.


여름은 더워서 싫고 겨울은 추워서 싫으면 안 된다. 여름엔 계곡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어서 좋고, 겨울에는 스키장에 갈 수 있어서 좋아야 한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우울해질 수 있다. 지금 스키장에 갈 돈이 없다면 내년에는 스키장에 가려고 열심히 돈을 모으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삶이 즐거워진다.


장거리 여행은 장거리 여행만의 매력이 있다. 장점을 찾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의미를 두면 의미가 생긴다. 확실히 함께하면 즐거움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되는 것 같다. 괜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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