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에 처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때도 나름 진지하게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는데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그때는 막연한 진지함이라고 했다면 지금은 더 구체적이다.
남자아이들은 중, 고등학교 때 한 번쯤 군대에 대하여 생각을 한다. 가고 싶어 하는 아이도 있고 가기 싫어하는 아이도 있다. 대체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스무 살이 되면 가고 싶던, 가고 싶지 않던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군대는 가끔 빽으로 빼는 사람도 있지만 죽음은 누구도 예외가 없다.
그동안 잘 사는 것만 생각했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데 먼지로 돌아간다는 게 억울하고 허무하고 무섭다. 열심히 살지나 말 걸 그랬나? 보람되고 가치 있는 있는 일을 했어야 했나? 은행나무는 짪게는 수백 년, 길게는 천 년을 넘게 산다. 인간은 길거리의 은행나무보다 훨씬 짧게 살다 간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순재 배우가 엇그제 91세 나이로 별세했다. 아주 친숙한 배우님이었다. 순리대로 하늘나라로 가는 것도 어찌 보면 행복이다. 올해도 이렇게 작년처럼 지나간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계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