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28
첫째도 그랬지만 둘째도 아침 8시부터 일어나 부스스한 눈을 간신히 뜬다. 잠도 깨지 않은 상태에서 옷을 입히고 억지로 밥을 먹이고 가기 싫어하는 어린이집을 보내야 한다. 너무 안쓰럽다. 아내는 딸도 이제 일곱 살이 되었으니 나이에 맞게 가르칠 것은 가르치고 혼낼 것은 혼내라고 한다.
알고 있지만 가급적 딸, 아들의 어리광을 받아주고 싶다. 버릇이 없어질까 봐 걱정이 되는가? 아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네 살, 일곱 살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그때가 아니면 언제 엄마, 아빠한테 어리광을 피워보겠는가?
그리고 딸이 유치원에서 선행상, 모범상을 받아 온 것을 보면 아내가 걱정할 만큼 버릇없이 자라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 어리광은 아이들이 부모에게만 할 수 있는,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라고 생각한다. 커서도 어리광을 부리는 사람이 있던가?
그리고 내가 아이들의 어리광을 받아 줄 수 있는 부모라는 것이 행복하기도 하다. 누가 나에게 어리광을 부리겠는가? 어리광을 부린다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서 나를(엄마를) 가장 믿고 따르고 사랑한다는 방증이기도 한 것 아닐까? 좋게 생각하고 싶다. 머지않아 어리광을 피우라고 해도 피우지 않을 날들이 도래할 것이다.
2014. 4. 30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 292명 사망
1994년 성수대교 붕괴 : 32명 사망, 사망자 대부분 여고생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 502명 사망
1999년 씨랜드 화재 : 23명 사망, 19명 유치원생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192명 사망
2014년 세월호 침몰 : 300여 명 사망, 사망자 대부분 고등학생 세월호 침몰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세상에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014. 5. 1
모든 것이 내 책임이고, 내 잘못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실패도 아니고 실수인데 자학하지 말자. 심약해지지 말자.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라. 너무 잘 보이려고 하지 말라.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업무가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아 힘이 빠진다.
2014. 5. 3
“여보 10년 후엔 당신이 해준 오이 소박이하고 식혜 먹을 수 있는 거지?”
요사이 마트에서 사 온 오이소박이가 자주 상에 올라오길래 내가 넌지시 한마디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였다.
“오이 소박이 하는 거 쉬워. 그리고 식혜는 당신이 해 먹어”
역시 아내에게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은
“10년 후엔 꼭 오이소박이와 식혜를 밥상 위에 올려놓을게” 이런 대답이 아니었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노력해 볼게”라는 대답이었다.
“할 마음도 없다”라는 대답은 실망스럽다.
김치가 무슨 대수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단순히 김치를 담그냐 못 담그냐의 문제는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진지하게 들을 필요는 없겠지만 아내는 내 말이 장난처럼 들리는가 보다. 장난은 아니었다. 훗날 엄마가 딸에게 김치 담그는 것 정도는 전수시켜 주는 것이 좋겠다는, 잔잔한 추억거리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것도 욕심일까? 꼭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다. 아빠가 아이의 자전거를 수리해
주고 아이들의 머리를 잘라주는 것도 비슷한 경우다. 돈을 아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추억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도 요리를 좋아하고 이런저런 노력과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안다. 아이 둘 돌보느라 요리에 집중할 수 없는 것도 안다. 그래서 10년 후라고 했다. 아내도 나에게 말하지 못한 말들이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괜히 말 꺼내서 본전도 못 찾은 하루다. 실망만 커졌다.
그 로부터 12년이 지난 2025년 11월 현재.
우리 집의 김치는 항상 쿠팡로켓배송으로 받아먹는다. 한 동안 장모님한테서 받아먹었는데 이제 연로하셔서 김치를 담그지 못하신다. 지금은 쿠팡이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10년 후 오이소바 기는 예상대로 먹을 수 없었다. 서로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해야 한다. 안되는 것을 억지로 되게 하려고 용쓰지 말라. 맞는 거 위주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