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7 비
감기는 많이 나았다. 치과치료는 여러 번 더 해야 한다. 충무로 약속이 있어서 나갔는데 시간이 남아서 남산 산책을 했다.
오늘 만난 K.
싱글일 때 자유분방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무척 좋아했는데 지금은 180도 바뀌었다. 현재 사실혼 관계의 여성과 15년 동안 알콩달콩 살고 있다. 노련한 조련사에게 길들여진 물개처럼 잘 훈련되어있었고 잘 습득이 되어 있었다.
한 마리의 야생마는 꼬리를 흔들며 주인에게 달려가는 유순한 강아지처럼 변했다. 잘 살고 있는 사람한테 가스라이팅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진 않다. 측은지심이 생기지만 괜찮다. 조련사가 만족하고 물개가 만족하면 되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렇게 산다.
비가 계속 내려서 남산타워 플라자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바디프랜드 안마의자가 있어서 돈을 넣고 안마를 받았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했다. 2,000원으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니.... 나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안마를 훨씬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젊을 때는 안마의자가 왜 있는지 이해를 못 했는데 나이가 드니 행복의 기준도 바뀐다.
퇴근길에 지하철을 타면 노인이 참 많다. 노약자석이 만석이다. 서서 가는 노인들이 종종 보인다. 내가 젊었을 때는 퇴근길에 노약자석이 항상 비어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조금씩 늙어가고 있지만 노령화 문제는 사회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하철 지하상가 밴치에도 죄다 노인들이 앉아 있다. 나도 늙으면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 미리 생각해 두어야겠다. 빈곤한자와 노인들은 겨울을 잘 나야 한다.
겨울의 신호탄을 알리는 비가 내렸다.
November Rain 노멤버레인.
11월의 비는 유난히 쓸쓸하다.
돌아오는 길에 집 앞의 근린공원 정자에 한 참을 앉아 있었다. 너무 평온하고 좋았다. 머리를 감지 않고, 옷매무새를 굳이 고쳐 매지 않고, 슬리퍼나 운동화를 구겨 신고 나가도 되는 숲이 집 앞에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계절을 코 앞에서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