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들 훈육이 쉽지 않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논리를 펼치며 항변하지만 부모가 보기엔 사실무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합리(合理)보다는 본인들의 실리(實利) 때문에 얼토당토않은 논리를 들이대기도 한다. 간단히 말하면 자기가 생각대로 하고 싶어서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어렸을 때는 아빠의 말이 법전과 같이 통했는데 이제 그런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에고(ego)가 발달하고 자신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부모와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는데 가장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아이들과의 갈등이다.
사춘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많다. 좋다는 강의도 찾아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지만 절대적인 솔루션은 없는 듯싶다. 사람마다 자기만의 공부 방법이 있듯이 훈육도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모두 다른 것 같다.
아들은 게임 때문에 몇 차례 푸닥거리를 했고, 딸은 요사이 부쩍 학습보다는 놀거리에 매진하고 있어서 관찰 중이다. 아이들의 자잘한 습관들이 훗날 인생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선택과 결정은 의외로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얼마 전 딸의 태도가 불량해서 따끔하게 혼을 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어릴 때 명심보감과 삼강오륜까지 읽어주며 훈육을 했지만 소용없다. 훈육을 한다고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훈육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너무 관심을 보여도 안 되고, 너무 무관심해서도 안 되는 사춘기. 관심을 보이면 간섭한다고 싫어하고, 무관심하면 훗날 무관심했다며 서운해할 것이다. 굳이 화까지 낼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말도 안 되는 궤변을 연신 늘어놓길래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빠가 듣기에는 궤변이었지만 본인은 정당한 주장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행히 아내도 내 의견에 동의를 해서 나쁜 아빠가 될 뻔한 상황은 모면했다. 말 한마디 실수하면 집에서 역적(逆賊)으로 내몰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어릴 때는 어려서 힘든 일들이 있고 성장을 하면 성장하는 데로 소통하고 케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쉬운 일이 없고 쉬운 날이 없다. 살면 살 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쉬운 일은 한 가지도 없다. 자식이 없으면 없어서 힘들고 자식이 있으면 있는 데로 힘들다.
딸은 서럽다는 듯이 울먹이며 방으로 들어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야단은 아빠가 쳤지만 마음은 아빠가 더 많이 힘들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말만 하고 싶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미숙한 것들이 있다.
내가 가장 염려가 되고 두려운 것은 아이들과 사이가 멀어지는 것이다. 내가 사는 이유가 아이들과 가족 때문인데 그들과 사이가 좋지 않고, 그 들이 나를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 자신을 위해서 살라고 말을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게는 와닿지 않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다.
이제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도 어떤 것을 해도 예전 같은 흥은 없다. 행복해지려고 아등바등 노력하면서까지 행복 코스프레를 하고 싶지도 않다. 유일한 즐거움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인데 그 첫 번째가 가족이다. 부모는 평생 자식 앞에서는 을로 살 수밖에 없는 듯싶다. 자식이 잘못해도 부모가 더 아파야 하는 것인가 보다. 원래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더 아픈 법이다.
지난 가을 아이들과 처음 노래방에 갔었다. 아들은 숫기가 없어서 노래를 부르는 둥 마는 둥 마이크만 잡고 있었고 딸은 상상했던 것과 달리 노래를 잘했다. 곰 세 마리를 부르며 재롱을 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컸다. 딸이 부른 노래가 무슨 노래였나 인터넷을 뒤져보니 인기 드라마 주제곡이었다. 딸도 내게는 첫눈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