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누워서 꼼짝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디 아프냐고 물어봐도 괜찮다고, 그저 몸이 피곤하고 졸려서 그렇다고 합니다. 정말 그런 것인지, 제가 모르는 다른 고민이 있는 것이지 알 수가 없네요. 친구 집에 간다는 아들에게 외투를 입고 나가지 않는다며 샤우팅이 시작됩니다. 집안 공기가 좋지 않음을 인지하고 저는 반사적으로 고무장갑을 끼고 신들린 듯이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설거지는 진입장벽이 낮아서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집안일 중에 하나입니다. 주로 방청소나 쓰레기 버리기, 멸치 대가리 따기 등 허드렛일은 제가 하는 편이고, 빨래나 요리 등 기술이 들어가는 것들은 주로 아내가 합니다. 예전에 빨래를 도와주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있거든요. 그 후로 아내는 저에게 빨래를 해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한 번은 아내 생일 때 미역국을 끓인 적이 있었는데 대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마트에 가서 미역을 한 봉지 사서 큰 냄비에 넣고 끓였는데 한참 끓이고 보니 미역죽이 되어 있더군요. 미역의 양이 너무 많았던 모양입니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맛있다고 말하는 아내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후로 아내는 저에게 요리를 부탁하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싱크대 고친다고 방안을 물바다를 만든 사건, 두꺼비집 내리지 않고 형광등 갈다가 감전된 사건, 분갈이 잘못해서 식물들이 모조리 죽은 사건 등 쓰기 시작하면 책 한 권은 나올 것 같습니다.
볕이 좋아 차를 마시러 나왔다. 동네카페
그래도 힘쓰는 일은 제가 맡아서 합니다. 쌀자루를 드는 일이라던가 주말 농장 가서 삽질을 한다던가 이런 일은 제가 하죠. 아, 운전도 제가 하네요. 아내는 15년째 운전면허를 따려고 준비 중입니다. 준비기간만 15년이죠. 드디어 지난달에는 운전면허 필기 문제집을 샀답니다. 이 정도 페이스면 칠순쯤에 면허를 취득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요리를 잘하지는 않지만 저만의 필살기가 있습니다. 바로 스크램블 에그와 볶음밥입니다. 10년째 변하지 않는 레시피와 손맛. 아이들은 감동하며 아직도 잘 먹고 있습니다. 원래 명장은 여러 가지 요리를 하지 않죠. 맛집도 진정한 맛집은 메뉴가 하나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장맛비처럼 비가 휘몰아치더니 오늘은 환한 햇살과 맑은 하늘을 주시네요. 신도 밀땅을 하시나 봅니다. 우울해지기 전에 햇볕 한 번 주시고, 교만해질 만하면 태풍이나 집중호후 한 번씩 주시고요. 자연앞에 겸손해 집니다.
겨울이 임박했습니다. 회사도 월동용 점퍼를 구입했고 핫팩을 찾는 사람도 있네요. 내일은 염색도 하고, 세차도 하고, 손톱도 자르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 위에 평온하게 떠있는 오리가 물아래서 무수히 많은 발길질을 하는 것처럼, 저도 소리 없는 발길질을 계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별함을 찾기보다는 잔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고 즐기는 법을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피어나는 새순을 보면서, 나풀거리는 함박눈을 보면서, 집 앞에 있는 카페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면서 행복을 찾아야 하고, 그것이 진짜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같이 가면 멀리 간다"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외롭게 혼자 쓰다 보면 한 두 번 쓰다가 뜸해지고, 뜸해지다 보면 멈춰지는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아이도 사랑을 먹고 자라지만 어른도 비슷한 거 같아요. 부족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