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을 받으며
2023.3.25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이제 검진을 받는 것이 약간은 두렵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약해지고 병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현실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에 더 신경 써야 한다.
검진을 마치고 환복 하려고 탈의실에 들어왔는데 발에 깁스를 한 청년이 목발을 짚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할까?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던 참에 커튼 뒤에서 병원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님 제가 더 이상은 못 도와 드리고요. 탈의실 안에 들어가셔서 도움을 받으셔야 해요"
잠시 후 커튼이 젖혀지는 소리가 들렸고 엉거주줌 한 자세로 누군가 들어오고 있다. 조금 전 커튼 뒤에서 직원과 대화를 나눈 사람인 듯 싶다.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나도 방금 검진을 마치고 내시경을 하고 난 후여서 목도 아프고 속도 메스껍고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다. 몽롱한 상태로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있는데 옆에 목발을 짚고 앉아 있던 청년이 벌떡 일어나서 시각 장애인을 돕는다.
그는 청년의 안내에 따라 옷장을 찾았고 옷을 안전하게 갈아입을 수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눈이 불편한 사람을 돕는 상황이 되었고 멀쩡한 나는 가만히 앉아있으니 졸지에 나쁜 사람이 되었다. 나도 도울 생각이 있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 잠시 후 청년은 옷을 갈아입고 검진을 받으러 갔고 이제 탈의실에는 그와 단둘이 남았다.
가만히 그를 지켜보았다. 눈이 보이 않은데 혼자서 옷을 잘 갈아입는다. 잠시 후 환복을 마친 그를 조심스럽게 부축해서 현관 입구로 안내했다. 그런데 옷을 갈아입을 때 옷장 안에서 봤던 지팡이가 없었다. 지팡이까지 챙겨 나올 생각은 못했다.
"저... 지팡이도 가져가셔야 되죠? 제가 갖다 드릴게요. 잠깐 앉아 계세요."
옷장 속에서 지팡이를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탈의실 밖으로 나와보니 아내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계셨는데 몇 번이나 허리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했다. 별 일도 아닌 것에 극진하게 인사를 하니 괜히 멋쩍어졌다.
내가 20대 때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했는데 지금은 시민 의식도 높아지고 인식도 개선이 된 것 같다. 오랜만에 남을 도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지천명이 나를 변하게 만드는가 보다. 허리 굽은 할머니를 보면 소천하신 어머니 생각이 나고, 목발을 짚고 옷을 갈아입는 청년을 보면 내 젊은 날 같고,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다니는 학생들을 보면 나의 학생 때가 생각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차이는 무엇일까?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기준은 무엇이고 경계는 무엇일까? 어머니는 6년간 요양원에 계셨고 요양원에서도 인품이 좋기로 소문이 난 분 이셨다. 장애가 없으셨지만 노후는 장애인과 똑같이 불편한 몸으로 몇 년간 요양원에서 생활을 하시다가 하늘로 가셨다.
유튜버 박위 님(위라클)과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이자 교수인 이지선 님을 존경한다. 특히 이지선 교수는 내가 힘들었던 시기에 그분의 책을 읽고 큰 힘을 얻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사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정신이 바짝 들고 내 삶을 반성한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에서도 많은 위로를 받는다. 환경에 굴하지 않는 그분들의 의지와 노력에 응원을 하고 존경을 표한다. 나라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존경한다는 것은 받들고 공경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 정도까지는 자신 없고 내 주위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라도 잘하고 베푸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수많은 글쓰기 플랫폼에 수없이 많은 글들이 있지만 종이책이 주는 아날로그 감성과는 비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