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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Mar 02. 2024

아내는 무면허

아내는 반백년동안 무면허의 삶을 살고 있다. 살면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3가지가 있는데 컴퓨터, 영어, 운전면허라고 한다. 이 세 가지 중에 아내는 하나도 없다. 면허증을 따겠다고 필기 문제집을 사놓은지가 5년이 지났는데 아직 펼쳐보지도 않았다. 이변이 없는 아내는 앞으로도 무면허의 삶을 살지 않을까 싶다. 구직을 할 때도, 육아를 할 때도 운전은 필수지만 무면허로 용케 잘 살고 있다.


지금까지 잘 버텨 온 것을 보면 앞으로도 잘 살아 것이라 믿는다. 너무 아내를 디스(diss) 한 같은데 나 보다 낳다. 명실공히 국가 자격증은 3개가 있다. 처녀 때는 대기업서 일을 했는데 사원 평가 시험에서 1위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랑 결혼하고  인생이 꼬였다고 한다. 일견 맞는 말인 것도 같다. 나도 내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내와 생각이 일치한 것이다.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무면허 아내와 살면서 가장 불편한 점은 독박 운전이다. 특히 명절 때 고속도로에서 14시간 동안 사투를 벌여가며 혈혈단신 운전을 할 때면 인생 독고다이고 무상함을 느낀다. 이마트에 당근을 하나 사러가도 함께 가야 하고 서점에 아이들 참고서 한 권을 사러가도 온 가족이 함께 가야 한다. 면허소지자가 나밖에 없으니 방법이 없다.


또 하나는 술을 마실 수가 없다.  술을 즐기지는 않지만 어쩌다 술이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주위에서는 아내가 운전을 하고 남편은 술을 먹는다는 부부들이 있는데 나도 가끔은 그런 호사를 누려 보고 싶다. 덕분에 일 년에 한 번도 술을 먹지 않은 적도 있다.






그렇다고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가는 곳은 항상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왕따를 당할 염려가 없다. 자연스럽게 가족 친화적인 아빠가 되었다. 식구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집 주변의 식당에 가서 밥 한 끼를 먹으려 해도 내가 없으면 이동이 불가능하다. 아빠의 존재감이 부각되는 순간이다. 아빠가 필요하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예전에 책에서 이런 글귀를 읽을 적이 있다.


"냉장고가 필요한 것은 알겠는데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 어렸을 때 육아서를 읽다 보니 이런 글이 있었는데 충격이었다. 엄마는 먹을 것을 사주시고, 그 먹을 것은 냉장고에 보관한다. 그런데 아빠는 왜 필요하지 모르겠다는 아이의 말이었다. 아빠는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시니 볼 시간도 마추 칠 시간도 없는 것이다. 냉장고에 먹을 것을 채우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는 아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요즘 아빠들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아이들에게  많은 정성을 쏟는다. 훌륭하고 좋은 아빠들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이들이 엄마를 찾는 것 같다. 부성애로는 범접할 수 없는 모성애라는 것이 있나 보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아내가 면허를 땄으면 좋겠다. 이러다가 면허증 따자 마자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아내가 안되면 딸이라도 빨리 커서 면허를 따면 좋겠다. 남편이, 아빠가 영원히 곁에서 운전을 해줄 수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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