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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Mar 10. 2024

 1002번째 부부싸움 2

주정차 위반으로 범칙금 고지서가 날아들어서야 아내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내가 백번을 넘게 얘기를 할 때는 허투루 듣더니 5만 원짜리 범칙금 고지서를 보니 정신이 번뜩 드는가 보다. 내가 한 소리를 했더니만 엉뚱한 얘기를 며 본질을 흐린다.


마누라가 추워서 마중 좀 나와달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냐? 복잡해도 주차장안으로 들어와서 주차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냐? 그거 마중 좀 나왔다고 유세 떠는 거냐? 면허증 없다고 무시하는 거냐? 딱지 뗀 돈이 아까와서 그러냐?


대화가 이렇게 진행이 되면 감정싸움으로 변하는 것이다.


김한봉다리 사 오면서 무슨 대형 마트까지 가느냐? 기름값이 더 든다. 추우면 얼마나 춥다고 김 한 봉지 사면서 차로 픽업까지 하라고 하느냐? 거리가 먼 것도 아니고.


"사건의 본질은 마트 앞은 매우 혼잡하니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 본질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열심히 픽업하던 나간 남편을 순식간에 못된 인간으로 몰아가는 재주가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이번 한 번이 아니라 자주 그렇다는 것은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내가 앞으로 당신한테 다시는 마트로 마중 나와 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이것이었다. 똥 싼 놈이 성낸다고 나는 나오라고 해서 제시간에 나간 죄밖에 없는데 졸지에 역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얼마나 무지몽매하고 안타까운 에너지 소모인가? 결혼해서 이런 일들로 감정을 소모하며 싸우면서 인생을 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차 오자마자 바로 탈 수 있게 기다리고 있을게"


이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다음은 마누라의 이의에 대한 반론이다. 억울하다.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게 그렇게 어렵냐?

(결혼하고 1000번을 마트에 갔다고 하면 970번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고 30번 정도 픽업을 했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귀찮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김 한 봉지를 사면서 그 혼잡한 주차장을 들어가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이다.)


면허증 없다고 무시하냐?

(무시한 적 없다. 오히려 격려하고 독려했다. 면허증 따면 도로주행 연습할 곳까지 물색해 놓고 함께 가주겠다고 약속도 했다. 심지어 내 용돈으로 학원비도 대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거 잠깐 나오면서 유세 떠냐?

(유세 떨거나 아부하는 성격이 아니다. 눈치 보는 성격도 아니다. 진심으로 행동하는 사람에게 유세를 떤다는 망언을 삼가라)


딱지 뗀 돈이 아까와서 그러냐?

(생활비에서 빠져나가는 이니 내 알바 아니다.)


이렇게 한 바탕 다투고 나면 아내는 2-3일 동안 말을 하지 않는다. 신혼 때는 그 시간들이 너무 답답하고  스트레스였다. 지금은 그 시간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아무 말도 걸어 주시 않는 아내가 고맙다. 예전에 후배가 마누라한테 했던 말이 기억난다.


"형... 도와주지 않아도 돼. 방해만 안 하면 돼"


그래도 부부이니 수위 조절은 해야 한다. 무언의 시간이 길어지면 안 되므로 적당한 시점에 딸기 한 팩을 사서 집으로 들어가는 융통성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결혼생활의 명맥이 유지된다. 주의할 점은 딸기를 사는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딸기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솔로일 때는 더블을 꿈꾸고 더블이 되면 솔로를 꿈꾼다. 외로운 솔로 생활을 충분히 경험했으므로 지금 곁에 아내와 이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그러나 때론 혼자 있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안 된다. 또 극도의 외로움이 밀려올 수 있다.


아마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부부싸움을 또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지지고 볶고 사는 것이 부부다. 열 가지 중에 다섯 가지면 좋으면 사는 것이다. 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다가도 내가 죽을 때 옆에 있어 줄 사람은 마누라와 자식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 그 쯤이야., 하며 수그러지기도 한다.


고급 새단 타고 다니며 고상한 척해봐야 별거 없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이불 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 이것이 현실부부다. 뜬구름 잡는 로맨스 생각하면 큰 코다 친다. 그래도 살 만하니까 사는 것이다. 지지고 볶으면서 아등바등 살아도 마지막 사랑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사랑, 귀찮아서 두 번은 못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왕으로 태어나고 싶다. 대통령 말고 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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