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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Mar 10. 2024

 1002번째 부부싸움 1

개구리가 동면을 마치고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났지만 날씨는 여전히 춥다. 50년을 무면허로 살고 있는 아내는 김 한 봉지를 사러가도 대형마트의 세일 기간을 이용한다. 무거운 생활용품이나 식재료를 살 때는 나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지만 간단한 물건을 살 때는 장바구니를 들고 혼자 간다. 오늘도 아내는 김 한 봉지를 사러 마트에 갔다.


오랜만에 게으름을 피우며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날씨가 추우니 마트로 데리러 오라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서울시내 대형마트의 주차는 전쟁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주차장은 물론이고 마트 정문부터 주차장 입구까지 늘어선 차들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한다. 20년 동안 마트에 다녔으면 그 정도는 인지하고 있을 텐데 오늘도 아내는 나를 기다리게 한다.


"마트 앞은 매우 혼잡하니 정문 앞에 서있다가 내가 오면 신속하게 차에 탑승하시오"


오늘도 아내는 보이지 않는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약속시간 10분이 지나서야 나왔다. 전화를 몇 차례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급기하 주정차 위반구역에 정차를 해서 범칙금까지 납부해야 했다.






연애 시절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약속시간을 무려 1시간이나 늦었는데 이유가 가관이다. 친한 언니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늦었다는 것이다. 헉~ 그것이 내가 길에서 한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는 이유였다니. 짜증이 쓰나미처럼 밀려왔지만 참았다. 한 번이면 "그럴 수도 있지"하며 넘어가겠 비슷한 상황의 일들은 종종 벌어졌다. 늦는 이유도 다양했다. 결혼을 하고 난 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외출하는 것은 어느 부부에게나 난제다. 남편은 외출을 서두르고 아내는 아이들 준비와 본인 준비를 함께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런 이유로 남편은 서두르고 아내는 늦장을 피운다는 이유로 부부가 티격태격하는 것은 어느 집이나 다반사다. 흔하고 자연스러운 풍경이 된 지 오래다. 그럼 아이가 큰 지금은 달라졌을까? 똑같다.


얼핏 보면 남편이 그 정도도 이해 못 해주나? 너그럽게 이해해 주고 포용해 주면 안 되나? 하며 잘못도 없는 내가 나쁜 남자로 둔갑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외출 시간만 늦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시간이 다 늦는다는 것이다. 저녁밥도 늦고, 취침시간도 늦고, 본가에 때도 늦고, 처가에 갈 때도 늦는다. 나는 아침형 인간인데 아내는 저녁형 인간이다. 완전히 상반되는 두 인간형이 한 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바이오 리듬이 완전히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두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이 기적이다.


회사에서 내 별명은 칸트다. 철학자 칸트가 항상 산책하는 시간이 오후 3시였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칸트가 지나가면 시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나도 칸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시간개념은  철저한 사람이다.  그런데 언니와 수다 떠느라 약속시간 1시간을 늦은 아내와 살고 있다. 충격적인 건 아내가 직장 생활할 때는 단 한 번도 지각을 한 적이 없고 근태도 훌륭한 모범사원이었다고 한다. 그럼 난 뭐지? 내 약속은 안 중요하고 출근시간만 중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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