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의 추억

by JJ

얼마 전 가족 여행을 갔다가 노래방에 갔다. 가족노래방은 나의 오랜 숙원 사업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갔으면 덜 민망했을 텐데 크고 나니 함께 노래를 부른 다는 것이 약간 쑥스럽다. 가족하고 가는 노래방이라고 해서 마냥 살갑고 화목한 분위기를 상상하면 곤란하다. 우리는 까칠한 가족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난 후 지하에 있는 노래방에 갔다. 여행을 오면 맛있는 것도 먹고 기분도 내야 하는데 아내는 여행지에서도 비용절감을 위해서 궁리 중이다. 본디 노래방 입장 시 음료를 주문하여 먹는 것이 상도의인데, 아내는 숙소에서 음료수 몇 개를 챙겨서 주머니에 넣고 들어왔다.


의도는 갸륵하나 내심 "놀러 와서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하는 마음이 있던 찰나, 아들이 탁자 위에 있는 음료수 캔을 손으로 건드려서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사달이 발생한다. 캔에서 음료수가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전광석화와 같은 손놀림으로 두 개의 캔을 붙잡고 쏟아지는 음료수를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미 바닥은 오렌지 주스로 낭자하다. 음료수를 노래방에서 산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 바닥 청소를 해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난감했다. 우리는 그렇게 지저분한 분위기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렸지만 마이크를 잡는 사람이 없다. 할 수 없이 내가 먼저 마이크를 잡고 선곡을 했다. 곡명은 박미경의 "민들레 홀씨 되어". 중학교 때 처음 들었던 노래인데 가사 말이 좋아서 노래방에 가면 가끔 부르는 노래다. 내가 스타트를 끊으니 딸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딸은 예상했던 대로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선택했고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아들은 숫기가 없어서 노래를 할까 걱정을 했는데 어리바리한 완창을 했다. 아내도 노래를 불렀는데 곡명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내는 찬송가 말고는 기억나는 노래가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와 연애 때 노래방에 가고 처음이다.


한 사이클이 지나고 다시 나의 차례가 왔는데 부를 노래가 없었다. 아이들 앞에서 애절한 사랑 노래를 부르기도 그렇고 꼰대처럼 가곡을 부를 수도 없다. 아이들이 어리면 동요라도 불러주겠는데 애매한 시절이라 부를 노래가 마땅치 않다.


고심 끝에 선택한 곡이 다섯 손가락의 "풍선"이었다. "풍선"은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해서 불렀는데 가사가 쉽고 순수해서 좋아하는 노래다. 술도 한 잔 했겠다 자아도취되어 나 홀로 열창을 하던 중에 뜬금없이 격한 감정이 올라왔다.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엔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도 꾸었지~

노란 풍선이 하늘을 날면 내 마음에도 아름다운 기억들이 생각나~

랄라 라라라 랄라 라라라 랄라라 라라 라랄라라 랄랄랄라 라라라~


"랄라 라라라"이 부분에서 갑자기 훅~ 하고 치고 올라오는 감정이 생긴 것이다. 내 생전에 다시 랄랄라를 외쳐보다니. 대부분의 어른들이 어릴 적에 랄랄라 한 번쯤은 흥얼거려보았을 텐데 어른이 되고는 그렇게 천진스럽게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 노래도 비즈니스적으로 전략적으로 불렀던 것 같다. 즐거움이 극에 다 달았을 때 나오는 허밍 랄랄라.


혹시라도 감정이 더 격해지면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아서 탬버린을 격하게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아들은 신이 나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딸이 다시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 딸은 생각보다 노래를 잘했다. 선곡도 나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근거 없는 자신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딸도 샌님 스타일이라 어디 가서 노래라도 한 곡조 부를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예상을 뒤엎고 샤우팅이 시작되었다. 딸은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와 탑현의 "호랑 수월가"를 불렀다.






일생의 숙원사업이었던 가족 노래방은 그렇게 무탈하게 지나갔다. 아이들과의 추억은 워터파크와 애버랜드가 끝이 아니다. 어릴 때 케어가 필요하다면 성장하면서는 공감이 필요하다. 차세대 리더들에게는 "공감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도 한다.


벌써부터 옛날 일만 회상하지 말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오래된 연인도 오래된 부부도 마찬가지다. 추억도 업그레이드 되어야 한다. 오늘 일어난 일도 내일이 되면 추억이다. 함께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만큼 좋은 추억도 없는 듯하다.


아이들과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서 기분이 좋다. 의외였던 것은 아들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즐거웠던 것이 노래방 간 것이었다고 한다. 게임 외에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정작 아들은 제대로 부른 노래가 한 곡이 한 곡도 없었는데 즐거웠다니 다행이다. 나의 직관에 의하면 이번 노래방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우리가 원하는 "한 번 더"는 생각처럼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았던가? 고로 아쉬울 때가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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