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번째 부부싸움

feat. 파자마 파티

by JJ

우리 부부는 15년간 치열하게 싸운 것 같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우기도 하는데, 자세히 들어다 보면 중요한 문제 일수도 있는 것이다.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로 싸우는 일은 없다. 거창하게 말하면 부부싸움은 세계관, 가치관, 자아관, 도덕관, 자라온 환경, 각자의 개성과 인성, MBTI 등 모든 것들이 포괄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것 같다.


배우자가 치명적인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부부싸움의 배경에는 이런 복합적 요소가 작용하는 것 같다. 아내도 나도 큰 잘못을 해서 다툰 적은 한 번도 없다. 대부분 소소한 일이 불씨가 되어 감정 대립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여당과 야당이 끊임없이 싸우듯이 우리 가정도 최상의 합의점을 만들기 위해, 최적화를 위해 격하게 토론하고 다투는 시간들이 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빈도나 강도는 적어지고 약해지겠지만 앞으로도 가끔 티격태격하는 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다툼이라기보다는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긍정적 자극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극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자극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자극을 통해 약간의 긴장감은 삶에 활력이 되는 것 같다.






아내와의 101번째 부부싸움은 딸의 파자마 파티 때문이었다. 딸이 파자마 파티를 하러 친구네 집에 가는데 아내는 걱정이 많다. 고심 끝에 딸에게 친구의 어머니 전화번호 알려달라는 것이었고, 딸은 왜 친구의 엄마 전화번호까지 알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것으로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내가 딸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다는 이유로 아내의 융단 폭격을 맞았다.


두 사람의 말을 모두 이해한다. 관점의 차이다. 내가 딸이라면 친구 엄마 전화번호를 아내에게 알려주면 되는 것이고, 내가 아내라면 친구 엄마 전화번호까지는 알려 달라고 하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아빠다 보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중간자로써 아주 난감했다.


아내는 세상도 험하고 별일이 다 일어나기 때문에 노파심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만 딸은 아내의 걱정을 의심이라고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딸의 입장으로는 친구에게 엄마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는 것도 불편했을 것이고, 아내는 의당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니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공을 내게 넘기니 그야말로 "어쩌라고"다. 난감할 따름이다.


딸아이가 크면서 아내는 나에게 많은 질문을 해댄다.

여보, 노래방을 간다는 데 보내도 되는 거야?

여보, 홍대 간다는데 보내도 되는 거야?

여보, 캐리비언베이 간다는데 너무 이르지 않아?

이번에는 파자마 파티다.


격론 끝에 딸에게 우리의 마음을 설명하고 설득시켰으나 딸의 생각은 어떤지 알 수 없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아닐 수 없다. "파자마 파티"라고는 하나 본디 취지와는 다르게 그냥 친구집에서 하룻밤 먹고 자고 놀고 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외박을 하니 혹시나 하는 걱정이 또 생기는가 보다. 약속 당일날 아침에도 꿈이 좋지 않다며 딸을 보내지 않는 게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이런 상황이 되면 남편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내의 말대로 딸을 보내지 않는다면 딸에게는 평생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아빠로 낙인찍힐 것이고, 딸을 파티에 보낸 후 만약 사소한 문제라도 생기게 되면 아내에게도 평생 원망을 받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결정에는 당사자들끼리 해결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개입을 하지 않는데 아내가 이런 결정에는 꼭 나를 끼어들게 한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둘 다 불만스럽게 때문이다. 보내고 나서 아무 일도 없어야 하고 그럴 것이라고 믿고 보내지만, 옆에서 자꾸 불안하다고 얘기하면 나도 불안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멘털이 강한 사람도 흔들릴 수 있다. 확고한 마음으로 믿었던 것도 옆에서 계속 아닌데, 아닌 데를 반복하면 정말 아닌 것 같고, 그게 맞아? 정말 맞아? 계속 물어보면 내가 틀린 것일까? 하며 나를 의심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실제로 내가 확신을 갖았다고 해도 틀릴 수도 있다. 그렇면 나도 함께 불안해져서 살 수가 없다. 어떤 문제가 되었던 살면서 힘든 상황은 발생하게 되어 있다. 겪지 않으면 가장 좋지만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해져나갈 수 있는 맷집과 용기, 그리고 믿음과 신뢰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다 보호하려고 하지 말자.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보호할 수 있어야 하고 조금씩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 줘야 한다. 다해주는 게 부모가 아니고 혼자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이다. 지금은 물론 케어가 필요하지만 스스로 케어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를 시켜주어야 한다. 부담을 줄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전부를 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남자가 캐치하지 못하는 부분을 엄마가 섬세하게 챙기는 부분도 있겠지만 과도한 불안감은 본인에게도, 나에게도, 딸에게도 모두 좋지 않다.


자녀, 육아의 3대 원칙이 있다고 한다.

1. 믿어라.

2. 또 믿어라.

3. 끝까지 믿어라.


이태원 참사 같은 일도 있었고, 세월호 사건도 있었고, 뉴스를 보면 인면수심의 악마 같은 아빠가 딸을 성폭행하기도 하고,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경우도 있고, 별의 별일이 다 일어나는 세상이다. 걱정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아내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 너무 과민하게 반응을 하는 것은 본인게도 좋지 않다.


딸에게는 "이번 파자마 파티를 마지막으로 성년이 될 때까지 외박은 없다."라고 말했다. 변수가 생겨서 못 지켜질 수도 있겠지만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는 것은 필요한 것 같다. 부부 싸움이라면 도망가면 되지만 자식문제라 피할 수도 없다. 굳이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아빠노릇한다는 것이 어렵다. 집에서 공공의 적이나 왕따 안 당하면 다행이다.


아마 앞으로도 비슷한 질문과 논쟁은 계속될 수 있다. 아이들의 진로에 관해, 연애에 관해, 결혼에 관해. 어떠한 주제로 논쟁이 될지는 모르지만 완전한 엄마도 완전한 아빠도 없다. 서로 의견을 존중하고 조율하는 것이다. 양들이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게 울타리만 쳐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울타리 문을 열어 주면 된다. 그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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