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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by JJ

북한산에 다녀왔다. 결혼을 한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결혼을 하면 완전한 나의 자유 시간을 갖는 것은 어렵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 사우나에 가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억지로 자유시간을 만들려면 만들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시간에 자유롭지 못하기는 아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새로고침을 해 주어야 하는가 보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셔도 좋고 좋아하는 운동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산은 정직하다. 산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부지런을 떨며 일찍 일어나서 먼저 올라가는 사람에게 명당자리를 내어 준다. 그런 사람만 좋은 경치를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땀과 노력의 대가다.


힘들 땐 쉬어가자. 굳이 꼭대기에 올라가서 쉴 필요 없다. 정상에 올라가면 그 늘도 많지 않다. 정상에 올라가서 땡볕에서 쉬지 말고 중간중간 그늘에서 쉬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정상은 오래 머무는 곳이 아니고 잠깐 스쳐 지나가는 곳이다. 산을 즐겨야 다시 산에 올 수 있다. 등산은 기록경기가 아니다. 급히 서두르지 말자. 그러나 너무 쉬지도 말자.



오늘도 북한산 상공에는 헬기가 분주히 움직인다.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아내는 설악산 울산바위에 다녀온 후로 많이 힘들었나 보다. 앞으로는 등산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자고 한다.


이제 산에 올라가는 것도 힘에 부치는가 보다. 북한산 향로봉은 아내와 연애할 때 와보고 처음이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그 시절 그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북한산 비봉


천천히 가도 된다. 천천히 가면 자세히 볼 수 있다. 멈추면 더 정확하고 확실하게 볼 수가 있다. 너무 서둘지 말자. 만약 인생에도 교과서가 있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것들을 말해주고 싶다.


원칙이 있어야 하지만 융통성도 있을 것, 대학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르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아낄 줄 알아야지만 쓸 줄도 알 것, 사랑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더 소중하다는 것. 싸우지 않는 것이 좋지만 필요할 때는 싸울 줄도 알 것, 혼자도 살아도 좋지만 결혼해도 좋다는 것, 정도를 가라는 것, 행복해지려고 너무 애쓰지 말 것.



김동인의 단편 소설 중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작품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아내의 발가락을 닮았다. 유감스럽게도 아내의 발가락은 못생겼다. 그래서인지 아내와 연애할 때 아내가 샌들을 신은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아들의 MBTI는 ISTJ나 INFP쯤 되지 않을까 싶다. 나도 비슷한 성향이라 아들은 적극적이고 외향적이길 바랐는데 내 마음 같지 않다. 나는 등산을 하면 휴식을 할 때 신발을 벗는 버릇이 있다. 신기한 건 아들과 처음 등산을 하는 날이었는데 아들도 쉴 때 신발을 벗고 쉬는 것이었다.


알려 준 적도 없고, 보여 준 적도 없는 처음 산행이었는데 말이다. DNA라는 것이 있긴 있나 보다. 좋은 DNA만 닮았으면 좋겠다. 부족한 아빠지만 찾아보면 좋은 DNA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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