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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Dec 20. 2022

나의 큰누나

큰 누나에게는 딸이 둘 있었는데 두 아이 모두 유전적인 난치병이 있었다. 첫째 딸이 여섯 살 때 강화도로 가족여행을 갔는데 아이가 걷다가 자꾸 넘어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조심히 걸으라며 주의를 주었지만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진찰 결과는 뇌에 시신경이 손상되어 눈이 잘 안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안 좋은 일은 또 일어났다. 둘째 딸도 같은 병으로 뇌에 종양이 생긴 것이다. 큰 누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두 아이를 데리고 서울대학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두 딸이 같은 병동에 입원을 했고 위아래층을 오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첫째는 중증 시각장애 진단을 받았고 여러 번 수술을 했지만 호전이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둘째도 병세가 악화돼서 수술을 받았으나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수술 후유증과 부작용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큰 누나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첫째를 돌봐야 했다. 큰 누나의 소원은 첫째 딸 보다 하루 나중에 죽는 것이라고 했다. 큰누나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본인 손으로 딸을 케어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큰누나의 마음도 조금씩 평온을 찾아갈 무렵 또다시 날벼락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매형이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었다.


매형은 응급실로 실려 갔고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전신에 마비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늘도 정말 무심했다. 어떻게 한 사람도 아니고 온 가족에게 그렇게 혹독한 시련을 주시는지..... 벌써 사고가 발생 한지 2년이 지났다. 다행히 매형의 건강은 아주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다. 2년 간의 재활 끝에 지금은 휠체어에 앉아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회복이 되었다.






지난봄, 어머님이 하늘나라로 가셨다. 나의 40년 지기 친구 K가 가장 먼저 문상을 왔다. 그의 삶은 어렸을 때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머니는 가출을 하셨고 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막일을 하시다가 실종이 되어 생사 여부도 알 수가 없다. 늙으신 할머니의 손에 자라며 주위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았다.


당연히 자라온 환경이 좋을 수가 없다. 아마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한 번은 시험기간에 그의 집에서 공부를 하려고 잠을 잔 적이 있는데 방에서 바퀴벌레와 쥐가 나왔다. 방이라고 하지만 부엌과 방이 구분이 안 되는 곳이었다. 다행히 그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학업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지금 서울에서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재직 중이다. 개교 이래 최연소 교장선생이라고 한다.


그 당시 친구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형편이 좋지 않아서 국민학교도 입학하지 못했다. 그 여동생을 나의 큰 누나가 매일 공부를 시켜서 한글을 깨우치게 했다. 친구는 큰 누나 덕분에 동생이 한글을 읽을 수 있었다고 회상하며 큰누나를 보자 눈물을 글썽였다.


이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살면서 나쁜 일 한 번 한 적 없는 큰 누나에게 왜 하나님을 그렇게 많은 시련들을 주시는지 야속했다. 큰누나의 삶은 고단하고 힘겨웠지만 한 번도 동생들에게 힘든 표정을 지은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런 큰 누나가 우리를 걱정하고 위로한다. 큰누나를 생각하면 내가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들이 늘 미안하다.





니체가 말했던가? "인생이란 부단한 극복 아니면 굴복이다." 큰 누나는 지금 극복 중이다. 큰 누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아서 자주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워진다. 매형의 안부를 묻는 것조차 미안할 때가 있다.


우리 주위에 많은 부류의 사람이 있지만 내가 아플 때 병원에 함께 가 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메인이고 나머지는 파생이나 옵션이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가족도 필요하고 친구도 필요하고 사회적인 호포사피엔스도 필요하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매일매일 생각하고 매일매일 감사해야 한다. 당연한 행복은 없다.


내가 구독하는 브런치의 작가님들 중에도 극복 중이신 분들이 있다. 매번 그분들께 깨달음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라면 견디고 이겨낼 수 있을까? 피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큰누나의 경우도 마찬 가지다. 이 분들께 미안해서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누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독서와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손에는 늘 책이 쥐어져 있었다. 더 배우고 싶었던 욕망이 컸었나 보다. 큰 누나는 밤에 책을 읽으며 카세트테이프를 틀어 놓고 이 노래를 자주 들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 큰 누나가 생각난다. 큰 누나에게 지금부터라도 신의 은총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한다.

https://youtu.be/TfhqKA3 xL8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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