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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soozin Nov 11. 2019

쌍수 안해서 다행이야

개굴개굴

1. 

처음 하와이에서 버스를 탄 날. 미리 맞춰서 준비해둔 2.5불을 내고 버스에 올랐는데 기사 아저씨가 블라블라? 하고 나를 쳐다봤다. 으잉? 나 돈 알맞게 냈는데? 딱 봐도 나 외국인 아닌가. 알아 들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왜 저렇게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묻는 거지. 어쩔지 몰라서 기사 아저씨를 빤히 쳐다봤더니 그제야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안 아저씨가 환승 종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지금은 바꼈지만 그 때까진 환승 종이가 있어야 다음 버스 환승을 할 수 있었다. 완전 아날로그 시스템) 


나는 아시안이니까 남들 보기에도 당연히 외국인 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긴 미국이니까. 한국에서 딴 피부색은 곧장 외국인이란 소리잖아. 근데 여기선 아니었다. 알고보니 하와이엔 특히나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가 많아서 심지어 백인이랑 아시안이랑 비교하면 아시안 비율이 더 높았다. 단일 민족이라는게 자랑이라고 학교에서 배운 나는 나를 망설임 없이 여기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한 기사 아저씨 덕분에 하나 배웠다. 생긴게 국적을 말해주는게 아니지. 암. 



2. 

비키니에 가벼운 끈 원피스 하나 걸치고 와이키키를 팔랑팔랑 걷는데 어떤 남자애가 따라오더니 말을 걸었다. 와. 안녕? 너 되게 이쁘다. 풉. 전형적이네. 생각하고 걷는데 그애가 첨 들어보는 질문을 했다. what is your ethnicity? 


어디서 왔어? 하는 질문은 수차례 들었지만 이런 질문은 처음이었다. 무슨 말이야? 하고 물었더니 그 애가 익숙한 where are you from? 으로 다시 물어서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답해줬다. 그랬더니 내가 한국 사람 처럼은 안보인다면서 혼혈도 아닌 거 확실하냐고 물었다. 이건 조금 창의적이었네 싶어 응. 엄마도 아빠도 한국 사람이야. 알려줬더니 내가 관심보인다 착각했는지 걔는 나를 앞질러 와서 뒤로 걸으면서 따라왔다. 너가 너무 귀여워서 그런다며 끝까지 쫑알거리는 애한테 어이구 그랬쪄? 하는 표정을 짓고 걸으면서 울엄마를 떠올렸다. 울엄마한테 내가 한국 사람처럼 안보인단 소리를 들었다 그러면 뭐라고 할까? 엄마가 어디서 온 사람인지, 아빠가 어디서 온 사람인지 물었다고 물으면 엄마는 뭐라고 했을까? 아이구. 가시나야. 이게 뭐가 이쁘노? 했겠지. (진짜 나중에 엄마가 하와이에 여행왔는데 엄마는 2년 만에 만나는 딸래미 등짝을 철썩 때리면서 아이고, 이게 뭐꼬! 했다) 


나중에 친구한테 왜 걔는 첨부터 어디서 왔냐고 안물었지? 하고 물어봤더니 어떤 상황에선 그 질문이 무례할 수도 있으니까. 라고 알려줬다. 미국에서 태어난 친구한테 누가 어디서 왔어? 해서 캘리포니아. 라고 답해주면 아니. 진짜로 어디서 왔냐고. 혹은 너네 부모님은 어디서 왔냐고 연달아묻고. 우리 부모님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는데? 하면 왜 그리 못 알아듣느냐는 표정으로 그니까. 너 조상은 어디서 왔냐고? 하고 이어지는 질문을 셀 수 없이 받았다고 했다. 와. 그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네. 이제는 교과서에서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사라졌다니 다행이야. 



3. 

맥주가 땡겨서 건물 편의점에 갔다. 한국분들이 하는 곳이라서 그런가 편의점 치고 맥주 종류가 많았다. 하와이 맥주는 맛있고 이쁜데다 종류도 많아서 볼 때마다 정복욕이 생긴다. 냉장고 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다가 오늘은 너로. 하고 초록라벨의 코나 브루잉의 와이루아를 한 병 집었다. 계산대에 가져갔더니 아줌마 사장님은 내가 내민 맥주병을 보고는 창고에 있는 아저씨한테 “얘 이거 박스들이에서 꺼낸거 아닌가?” 하고 소리쳐 물었다. 면전에서 괜한 의심을 당한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아닌데요? 이거 냉장고에 있었어요. 하고 답했다. 그랬더니 아줌마가 아이구. 하면서 한국분이셨네. 하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안보인다고 덧붙였다. 


한국 사람 같이 생긴 게 뭔지 모르겠지만. 아니라니까 기분은 좋았다. 어떤 사람인지 한 눈에 읽히면 재미없잖아. 나는 한국에서 왔지만 지구인이다. 한국에서 우리는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비교하기가 너무 쉬우니까 어쩌면 성형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닮아서 예쁜 카테고리가 하나 뿐인지도 몰라. 한국 밖에는 너무 다르게 생긴 애들이 제 모양으로 다 매력적인 걸. 



4. 

나랑 닮은 배우가 있다며 친구가 사진을 보여줬다. 봐봐. 하고 폰을 들여다 봤는데 그 사람이나 나나 동양인인거 빼고는 하나도 닮은 게 없다. 너무 닮았다며 니 사진아니냐며 묻는 친구 표정이 진지해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야. 내가 이렇게 생겼다고? 대체 어디가 닮았는데? 모든 동양인이 똑같이 생긴 줄 아냐? 내가 너한텐 이렇게 보인다고? 이 사람은 쌍커풀이 있잖아. 완전 다르게 생겼는데. 내가 쌍커풀이 생기면 모를까. 어때? 하고 눈에 힘을 주고 쌍커풀을 만들었다. 예쁘다고 하면 어쩌지. 근데 친구는 갸우뚱 하더니 뭐가 다른 거냐고 묻는다. 그새 만들어 놓은 쌍커풀이 풀렸다. 에잇. 잘 봐. 다시 눈을 휙 뜨면서 쌍커풀을 만들었는데 친구가 그만 하란다. 뭘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징그럽다고. 뭘 모르겠다는 거야. 여기 눈 위에 라인이 생겼잖아. 하고 다시 눈을 뜨려는데 친구가 갑자기 눈을 희번뜩 뒤집더니 수진. 너 이러고 있어. 눈에 힘을 주고 희번뜩 희번뜩 흰자를 보여주는 친구가 웃겨서 또 배꼽 빠지게 웃었다. 


나는 무쌍이다. 나는 내 눈이 좋은데 사람들은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수진인 쌍커풀만 하면 되겠네. 하고 꼭 한마디씩 붙였다. 엄마도 고딩 때 수능 끝나면 쌍수할래? 하고 한번 물었다. 또 누구는 수진인 무쌍이라서 외국가면 인기 많겠네. 했는데 아이고 사람들아. 이 세상 절반 넘는 사람들은 쌍커풀이 뭔지도 모르네요. 쌍커풀이 뭔지도 모르는 친구랑 아사이볼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쌍수 안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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